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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r 26. 2024

남을 포용하는 마음이 스스로 나를 지키는 유일한 길!

실수와 단점을 감싸는 숨을 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인과응보, 사필귀정, 뿌린 대로 거두리라!

 

 한 치의 손해도, 이익도 취하려 하지 않고, 준 만큼 받으려 하고, 받은 만큼 주려는 자세로 살아왔다.  어찌 보면 대단히 합리적이고 문제없는, 올곧기까지 한 생활태도일 수 있으나, 여유, 기다림... 이란 없었다. 남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나를 깎는 손해도, 남을 위한 희생도 없는, 경계를 철저히 지켰다.


그래서 늘 당당하고 꿀릴 게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 사이에서도 받은 만큼 주고, 준 만큼 받았다. 친구의 실수나 바쁨을 경위 없음으로 여기고 단칼에 손절한 적도 많다. 이해하기보다는 섭섭함으로 미리 판단하고, 친구의 실수에 의미를 크게 부여했다.

 실수가 잦은 동료를 마찬가지로 포용하지 못했다. 실수에는 응당 책임이 따르니 감내하며 흘리는 눈물은 사필귀정이라 여겼다. 이번 기회로 그의 업무 능력이나 역량이 향상되기를 바랄 뿐, 그의 실수를 온정으로 품어내지 못했다.

 교실에서도 아이들이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격려했으나 나에게 대든다거나 불손한 행동이라 여기면 여지없이 훈화하고 기어코 이겨 잘못했음을 시인하게 하였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역설법의 예문으로 수없이 되뇌면서도 정작 실천하지 못했다. 한 번쯤 너그럽게 봐줄 만도 한데 절대 지려하지 않았다.

 부모로서 나의 모습은 달랐을까? 자식이 잘할 때 칭찬하고 기뻐하고, 잘못할 때 지적하고 훈계하는 일만큼 쉬운 일이 있을까? 굳이 부모가 아니라 이웃도 할 만한,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아이에게 특별한 사랑을 주는 부모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춘기 자녀와의 불화가 커지면 커질수록 오히려 품어내고 참아주는 포용력을 발휘했어야 하는데 내게는 그것이 부족했다. 다행히 늦었지만 정신 차리고 노력했기에 자식과의 관계가 완전히 어그러지는 일은 막을 있었다.

 

  어느 날, 상대방의 마음을 늘 헤아려 배려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친구가 말했다. 이제는 좀 지친다고, 상대의 감정 살피기에 주력했더니 상처 입은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고,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야겠다며 용기를 드러냈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내게 부족한 단어 '포용'을 떠올렸다. 친구가 평생 가꿔온 그 태도가 내게는 그동안 드물었으니, 이제부터라도 챙겨야 삶의 균형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으로 인해 참고 배려하느라 힘들었을 친구 같은 이들을 위해 이제는 내가 그 자리에 서는 게 맞지 않을까! 큰소리치며 밑지고는 살지 않았으니 이제는 배려와 살핌을 얹어 기다릴 줄 아는 시간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포용력'

 나의 이러한 마음이 드러나기라도 한 듯, 뜻깊은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남을 죽이면 자기를 죽이는 자를 만나고 남에게 이기면 자기를 이기는 자를 만난다. 남을 비방하는 자는 자기를 비방하는 자를 만나고 남을 괴롭히는 자는 자기를 괴롭히는 자를 만난다. 이렇게 업은 수레바퀴 같이 돌고 도는 것이다.” <잡아함경 중에서>

 

우연히 발견한 글귀지만 나의 변화를 다잡아 주는 듯,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닿았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되돌려 받는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각박한 세상에서 자신이 온전하게 서있을 수 있으려면 오직 스스로 자비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남을 포용하는 마음,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남을 사랑한다면 어찌 남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남을 미워한다면 어찌 남이 나를 미워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인(因)과 연(緣)은 자신이 만들며 그 과(果)도 자신이 만든다. 그러니 남을 항상 사랑하라.  - Daum 백과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귀한 문장들! 베푸는 마음, 헤아리는 노력, 남의 실수를 품어내는 포용력만큼 품격 있는 인간의 자세가 또 있을까! 가장 높은 인성의 경지에서 드러나는 단어들을 취하고 싶다.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니, 나이 듦에 어울리게 상대를 품어내리라. 딱딱하고 옹졸한 마음을 풀어내어 넓게 쓰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 악의적이지 않은 실수라면 때로 품어주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사회가 온전한 세상이 아닐까? 그래야 개인도 사회도 발전할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이 될 것이다. 유명인의 자잘한 실수는 물론 어린 아이돌 가수의 사소한 실수까지 너무 예민하게 과격하게 쉴 틈 없이 공격하는 사회가 안타깝다. 사소한 실수에 대해서 혹독하게 잣대를 들이대며 목청 돋아 자신만의 주장으로 상대를 멍들게 하고 고개 숙이게 하는 일들이 참 무서울 때가 있었다.


 이제라도 지는 듯 베풀며, 삶의 여유를 만들어 간다면 주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보기 좋은 얼굴이 만들어질 것이다. 한치의 틈이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각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나 같이 평범한 사람도 그동안 한몫을 해 왔다면 이제는 나부터 다른 시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나와 다름의 폭을 넓게 인정하고, 따스하게 감싸며 포용하는 세상 만들기에 나부터 시작이다.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앞에서 온화한 미소와 함께 부드러움을 창작하리라. 같은 업무를 추진하는 동료교사, 수업시간에 마주하는 2009년생 아이들에게 기다림의 눈빛을 보내며 한 박자 같이 쉬어가리라.

 내가 좋아한다고 그 사람이 반드시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를 싫어한다. 그 사람의 실수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나의 마음을 바꾸어 푸근하게 해석하는 힘을 기른다면, 나의 실수와 단점을 감싸는 고마운 그 누군가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 간다면 스스로 나를 지키는 큰 힘을 지닌 사람으로 늙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오마이뉴스에 기사(3/26)로 채택된 글입니다.

 https://omn.kr/27z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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