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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Apr 22. 2024

LA갈비가 사랑으로 전해질 때

네가 지칠 때 항상 네 옆에 있을게, 맛있는 거 같이 먹자!

 4월, 눈길 닿은 곳마다 목련이 피고, 벚꽃이 흐드러져 한참 호사를 누렸다. 이제는 봄잔치가 슬슬 마무리되려나 싶었는데 겹벚꽃까지 만개하여 꽃잔디와 함께 여전한 축제를 벌이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꽃바람 흩날리고, 햇빛 따사로운 이 좋은 계절에 둘째가 태어났다. 26년 전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자라 성인이 되어 사회인으로서 자기 몫을 해내니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꽃같이 아름다운 날, 생일을 맞이한 둘째 얼굴이 그리 밝지 않다. 워낙 유쾌하고 활달한 아이라 어느 때보다 더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태어남을 축복하는 '생일' 즈음에 아이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크다.

 

 둘째가 근무하는 곳은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이다. OECD 가입국 중, 자살률이 최고라는 국제적 오명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을 텐데, 조금이라도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함께 만든 사업의 일환으로 발족한 곳이다.

 둘째는 이곳에서 사회복지사로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기도자의 사례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병원에 자살 관련으로 응급실을 내원한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치료를 연계하고 복지팀(사례관리팀)과 의료진(응급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과의 협업을 통해 생명존중을 심화하고 자살시도의 심리 및 안정을 돕는 일을 한다고 들었다. 자살시도자에 대한 치료 서비스와 자살 재시도 예방을 위한 지역사회 자원연계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하는 가치 있는 업무를 생각하면 자랑스러운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설 때가 많다. 엄마인 나에게는 그저 20대 중반의 어린 딸이기에, 우울과 좌절을 가득 안고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을 매일 만나 상담하고 그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되기 때문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연령 대는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전 세대에 걸쳐있고, 자살 시도 이유도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일들로 다양하다.

 병원뿐만 아니라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자살위기관리위원회가 있고 안타깝게도 그 관리 대상 학생들이 있기에 늘 둘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데, 자살시도 사례자를 관리하는 일은 참 만만찮다. 상담 후 예후가 좋은 사례자들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자살 징후가 옅어진 사례자의 감사 전화에 환한 미소만 지을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끝내 목숨을 끊은 이의 마지막 소식을 듣거나 지속적인 지역관리가 체계적으로 연계되지 못할 때, 그들의 좌절과 고민 앞에서 어찌해 볼 수 없을  느끼는 무력감에 상심이 큰듯하다.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되니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고 체력적으로도 지쳐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응원하는 일이 살짝 버거워진 것 같았다.


 생일인 오늘, 둘째는 외근으로 조금 늦는다며  위촉장(위기청소년의 조기 발견 및 지역사회안전망 서비스 제공 협력을 위한 실무위원회)을 보여 주었다. 미역국을 먹고 출근하는 모습이 아침부터 지쳐 있었다.

 퇴근 후 분주한 시간이지만 아이가 좋아할 만한 음식 두어 가지를 만들기로 했다. 바로 LA갈비와 삼색꼬치 전이다. 지난 설에 갈비를 만들지 않아 못내 서운해하던 둘째를 생각하며 빠르게 손을 놀렸다.

♡ LA갈비 2Kg을 준비에 찬물에 핏물을 뺀다. 기름진 부위를 떼어내고 물을 갈아가며  맑게 만든다.
♡ 양파(1개)와 배(1/2개)를 간다.
♡ 양념(간장 200ml+ 설탕 60g+올리고당 30g+ 탄산수 1/2c+소금, 후추, 참기름)을 만든다.
♡ 핏물 뺀 갈비에 양념과 간 양파와 배를 넣고 버무려 냉장고에 하루 정도 숙성한 후 굽는다.

 단무지와 맛살,  등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삼색꼬치 전은 명절마다 둘째가 담당하는 요리다. 쪽파와 꽈리고추를 추가해 한 접시만 후다닥 만들었다.

 음식을 마주한 둘째의 표정이 환해졌다. 대단한 음식은 아니지만 LA갈비와 꼬치 전은 이미 둘째에게 진한 사랑, 그 자체가 되었다.

 일상에 지친 둘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퇴근 후 지친 몸이나 설거지거리로 어지러운 주방 같은 것은 아무 상관없었다. 


 문득, 누군가 나를 위한 먹거리 하나를 만들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충분한 용기를 얻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마침 둘째가 가져온 자살예방키트 파우치가 눈에 들어와 쓰임과 효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심신 안정(숙면)을 위한 핸드크림, 마사지볼, 아로마오일, 차가운 패치, 고무줄 , 이 작은 물건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를 간절한 마음과 안타까움을 보탰다.


 한결 밝아진 얼굴로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둘째를 꼭 안아주었다. 토닥토닥, 사랑한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특히 우리, 너와 나의 생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고 무엇보다 소중함을 절대 잊지 말자! 네가 지칠 때 항상 네 옆에 있을게, 맛있는 거 같이 먹자!


 이 글은 4/22-오마이뉴스-'생일에 '죽음'을 상담하느라 고된 딸...요리를 했습니다.'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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