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인 딸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매일이 새로움의 연속이다. 하루가 빠르게 변화하고, 우리는 나이 들어가니 그 빈도와 강도가 갈수록 커지는 듯하다. 60년대생인 남편과 나는 딸들에게 배우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습관과 고집을 주장하기도 하며 그들과 엉켜 지내고 있다.
90년대생인 딸들은 신문물을 물어와 요즘 트렌드를 알려주고 우리가 버릇이나 장난이라고 배웠던 것들이 이제는 무례를 넘어 죄가 될 수 있음을 수시로 확인시켜 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어 스마트한 시대에 태어난 2000년대생 막내딸도 MZ 언니들과 생활차이를 느낀다 하니...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저 웃을 뿐이다.
80년 대 중, 고등, 대학을 다닌 나는 그들을 쫓아가기 바쁘거나 또는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있다. 그들이 중시하는 평등과 공정성과 여유로움이 부러워 따라가며 배우려 노력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예민함과 색다름과 개성에 고개를 절로 저을 만큼 어렵기도 하다.
어느 시대나 있었을 세대차이에 요즘 MZ 세대의 특징까지 보태지니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기성세대로서 생각이 많아진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참 자리마다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느끼며 예전 선배나 부모님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많다.
코로나 19 시절, 집집마다 늘어난 배달 음식 덕분에 딸들의 기호식품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스트레스가 쌓인다며 시킨 음식들이 죄다 빨간색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혀를 내밀고, 헉헉거리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떡볶이든 닭볶음이든 달게 먹었다. 그럴 때마다 위가 상한다, 무슨 밀가루 음식을 그렇게 비싼 돈으로 주문하느냐, 는 나의 잔소리가 깊어졌는데, 가장 목소리가 커질 때는 마라탕과 훠거를 주문할 때였다.
마라로 인한 매운 것도 불호였지만 기름기로 인해 배달 용기를 분리 배출할 때, 남은 국물 처리할 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어서 아무튼 마라탕을 주문한다 하면 나는 대부분 반대했고 아이들은 그래야 오늘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며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힘든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마라탕으로 풀 수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남편과 나는 보기만 해도 얼얼한 음식을 함께 하지는 못했다. 얼핏 본 주문서의 길이도 꽤나 길었다. 그러니 나에게 마라탕은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재료를 선택하여 주문하기도 까다로운, 맵고 기름진 음식일 뿐이었다.
딸들의 스트레스 해소제가 내게는 오히려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고 할 만큼 그 관리가 중요한 스트레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한두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본연의 정체성만을 유지한 채 생활하기에는 쌓이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기에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찾아, 다른 얼굴의 나를 찾아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한다. 운동, 여행, 관람, 취미, 쇼핑 등등의 즐거움이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쉼의 윤활유 역할을 이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좋은 거 보고, 여행 가고,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이들과 건강한 대화를 나누고... 딸들과 나의 취향이 별반 다르지 않은데, 음식 마라탕과 훠거 앞에서는 생각이 달랐다.
남편과 나의 스트레스 해소제는 배드민턴 동호회 활동이다. 건강과 웃음은 물론 이웃과 사귐의 즐거움까지 선물하는 운동,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배드민턴 게임에 열중하면 한낮의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린다. 땀 흘려 운동하고, 다양한 활동으로 정다운 인간관계를 이어오니 체육관 가는 길이 즐겁기만 하다.
이 운동의 즐거움을 누구라도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딸들이 동호회 가입 의사를 드러냈다. 학업과 취직 준비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성인이 되어 엄마, 아빠와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하고 싶다 하니 정말 반가웠다.
어느덧 딸들은 3개월째 배드민턴 레슨을 받고 있다. 아직은 배드민턴 입문 초심자로서 모든 게 서툴고 어색하지만, 레슨 후 땀 흘린 모습으로 재미있다를 연발하니 배드민턴 매력에 이미 빠진 듯하다. 배드민턴 단체복을 나란히 입고 체육관을 드나들 때, 가족이 함께 하는 기쁨까지 보태지니 그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성인이 된 후 각자의 시간, 각자의 관계 속에서 생활하다가 같은 테두리 안에서 함께 활동을 하니 그 시간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땀 흘려 운동한 어느 날, 딸들이 외식을 제안했는데 외식 메뉴가 마라탕이었다. 별로인 듯 얼굴을 찡긋했지만 못 이기는 척 따라가 보기로 했다. 넓은 식당 안에 초등학생을 비롯한 청소년들이 가득했다. 각종 채소가 놓여있는 진열대를 보니 의외로 내가 좋아하는 채소들이 많았다. 각종 채소(청경채, 팽이버섯, 목이버섯, 배추, 숙주 등)와 분모자, 중국당면, 유부, 푸주, 소시지 등등의 재료를 보니 주문서의 길이가 보통을 넘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딸들과 함께 그릇과 집게를 들고 어색하지만 마라탕에 추가할 재료를 골라 보았다.
배달이 아닌 직접 식당에서 설거지 부담 없이 먹어서일까? 요즘 마라탕이 왜 인기인지 끄덕이게 되었다. 어느새 딸들이 나를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 어때요? 맛있지요? 괜찮지요? 나는 벌게진 입술을 닦으며 쑥스러운 듯이 웃어 보였다.
딸들이 배드민턴에 첫발을 내딛듯, 나는 마라탕에 입문한 것이다. 시뻘겋게 맵기만 한 음식이라 차단한 마라탕을 누구보다 맛나게 먹은 후, 탕후루와 매운 떡볶이가 아이들만 먹는 음식이 아님을 남편과 이야기했다. 우리의 전유물 또한 MZ세대와 나눌 수 있음을 웃으며 이야기했다.
헤어숍이나 미용실이 아닌 '미장원'이라 했더니 우리 반 2009년 생들이 엄청 웃었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는 관용표현을 공부할 때, 2009년 생 우리 반 아이들은 '숭늉'이 무엇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는 '숭늉'을 모르냐며 눈을 더 둥그렇게 떴었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것!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을 느낀다. 무조건 아니다며 내 것을 고집하는 순간 우리는 절대 화해할 수 없음을, 행복할 수 없음을 경계로 삼는다. 부모 자식 간이든, 후배와 선배 사이, 젊은 세대와 중년 세대 등.... 살아온 환경, 처지와 상황, 세대만의 특징과 다름을 잘 이해하고 파악하고 받아들여야 혼란과 고립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유의해야 할 대목인 듯하다.
아주 많이 익숙한 가족이지만, 어느 때는 누구보다 멀리 있는 것 같은 가족들이 마라탕과 배드민턴, 사소한 단어와 음식을 통해 서로 겹쳐가며 찐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딸들만 가던 식당에서 우리 부부가 함께 앉아 마라탕을 먹고 있고, 엄마 아빠가 운동하던 체육관에서 딸들과 함께 운동하고 있는 장면에 이렇듯 깊은 의미를 부여해 본다.
2024 남동구협회장기 배드민턴 대회에 참여한 동호인들을 응원하고 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2024.05.07)에 '이해 안 가던 마라탕앓이, 딸따라 입문한 엄마입니다.' 제목의 메인기사로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