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진로의 날 행사로 '미래의 명함 만들기 활동'이 각 반에서 펼쳐졌다. 16살, 중3 아이들이 그리는 '30살 미래의 모습'은 어떤 얼굴일까? 사뭇 진지한 아이들 틈에서 아이들이 그려내는 미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 짐작 가능한 평범한 직업들 속에서, 다가올 미래 사회에 걸맞은 획기적이고 색다른 직업도 눈에 띄었다. 건물주나 재벌, 복권 당첨을 그린 아이들과 편의점 알바, 피시방 사장, 일타학원강사를 희망한다는 아이들을 보며 요즘 세태와 어른의 사고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투영되어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지 그 결과를 확인하기도 했다.
진로탐색 중인 아이들 옆에서 그 직업이 좋아 보인 이유를 묻기도 하고, 꼭 꿈을 이루라며 격려도 하며 나름의 진로시간을 이어가고 있는데 문득 한 아이가 질문을 했다.
"샘은 왜 교사가 되었어요?"
특별할 것 없는 이 사소한 질문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는 왜 교사가 되었는가? 만 4세부터 교사의 꿈을 꾸고 어릴 적 소꿉놀이도 안 하고 선생님 놀이만 했다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해 왔었는데, 정말 난 왜 교사를 꿈꾸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미래의 명함을 만드는 동안 나는 이미 만든 내 명함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왜 교사가 되었는가? 그리고 왜 교직을 좋아하게 되었는가?
교직경력 30년 이상을 꽉 채워 원로교사가 된 이 마당에, 명퇴와 정퇴 사이를 하루에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이 시점에 새삼스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라니! 어쩜 마지막일지 모르는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이어서 그럴까? 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교사로서 무게감을 감당하기 버거워서일까? 한 없이 떨어지는 시력과 기억력에 자신감이 때때로 사라지기 때문일까? 토론의 지식을 전달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그 방법을 실행하기는 어려운 토론 수업을 진행하며 한계를 느껴서일까?
마침 6월부터는 40호봉을 끝내고 근 1호봉으로 시작하는 월급명세표를 받는다. 내 나름의 전환기를 맞이하며 교사로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퇴근 후까지 이어졌다.
30여 년 전 임용고시 합격은 내 인생의 결핍과 상실을 메꿔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어려움 속에서 나를 키워낸 엄마의 자랑이 되었으며,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경제적 안정을 이룰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미는 교사라는 자부심으로 나의 자존감을 지키고 키울 수 있었던 점이다.
돌아보니 그대로인 듯한 학교와 교육현장도 세월 따라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체벌이 존재하던 때, 아이들에게 소소한 선물을 받았던 시절, 방학 때 아이들의 손 편지가 집주소로 오가던 기억, 아이들 머리 길이와 바지통까지 지도하던 때 등등, 부끄러움과 아쉬움 때로는 그리움과 자랑스러움으로 떠올리는 기억들이 두서없이 펼쳐진다.
이번 진로 수업 중, 반드시 Y의대를 가겠다고 다짐하는 학생 B를 떠올리며, 마침 그 대학을 다니는 조카에게 그 대학 문구가 새겨진 학용품을 부탁해 B에게 건네주고, 점심시간에 깃털이 다 떨어진 셔틀콕으로 배드민턴을 치는 1학년 아이에게 쓸 만한 셔틀콕을 줄 테니 다음날 5층 교무실로 찾아와라 약속하는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 만족감에 젖어 웃는다. 그리 친절한 교사는 아닐지라도 아이들에게 관심 있는 교사라며 스스로 위안과 위로를 삼으며 버텨온 듯하다.
'교사가 행복해야 교실의 아이들이 웃을 수 있다'.라는 문장을 진심으로 내면화하며 지내온 교직 생활인 듯하다. 나를 지키며,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의 관심과 내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으며 아이들과 지내온, 그래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고, 웬만하면 행복했고 스스로 적성에 맞는다 여기며 학교에서의 기쁨을 찾았던 것 같다.
올해 신규교사로 발령받은 큰딸은 지난 6월 7일 교육청으로부터 발령 100일 축하 기념 케이크를 전달받았다. 신규교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로 축하와 격려의 의미가 담겨있지만 그만큼 요즘 교사의 생활이 만만찮음을 반증한 것이다. 저경력 교사들이 학교현장을 떠나고 있다. 과도한 민원과 감당할 수 없는 교육환경으로 시달리는 교사의 기사가 오늘도 오르내리고 있다.
교감선생님의 뺨을 수차례 때리는 초3 아이의 영상을 보고 기겁을 하며, 그 아이의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짐작하면 걱정이 한가득이다. 학교와 교사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 내야 하는가! 교육의 틀을 벗어나 배움이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비상식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의 행동 앞에서 학력은 배부른 걱정일 뿐이다. 내가 늘 농담조로 학교에서 제발 수업만 하고 싶어요!라고 외치는 씁쓸한 이유일 것이다.
같은 교무실 10년 차 동료교사는 교사로서 앞날을 고민한다. 장학사나 관리자의 길을 택할 것인지 평교사로 남을 것인지! 앞자리 영어교사는 이대로 계속 수업을 할 것인지, 상담이나 진로교사로 방향을 전환할 것인지! 평생직장의 개념이 확고하게 자리했던 교직에도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그들의 고민을 존중한다. 나도 그러한 시기를 지나왔고,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도 굳건히 교사의 길을 향하는 그들의 진정성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다정하고, 세심하게 챙기는 그들의 수고가 감동적일 때가 많다.
교사의 꽃은 담임이라는 생각으로 평생을 걸어왔다.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교육과 관심과 소통의 연결고리를 맺을 수 있는 교사 본연의 자리라 여겼다. 교육환경이 바뀌어 차라리 부장을 하느니 담임을 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온 지 꽤 되었으나 가장 수고로운 자리는 그래도 담임의 자리라 여긴다.
꽃피는 계절, 아이들과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참 좋다. 국어교사로서 얻는 기쁨이다.
내가 마주하는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예뻐한다. 가르치는 일에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다정한 웃음을 짓는다. 설혹 방학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심신이 파김치가 되어 퇴근을 서두를지라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울 때 가장 교사다운 진심이 드러남을 안다.
점심시간 피구 경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 멀리 유리창을 통해 내려봐도 예쁘다.
그래, 나는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교사가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며 교실에서 행복했기에 이 길을 걷고 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나의 명함 그리기를 마저 마무리해야겠다. 무탈하게, 평안하게, 상식적인 교실을 꿈꾸는 것이 욕심이 아니길 바라면서 나의 명함을 완성해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