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대학을 정신없이 다니다가 어느 날 졸업하게 된 나는 큰 병원의 시스템이 답답했고, 졸업 후 독립적으로 빨리 진료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인턴은 나이가 들수록 하기 어려운 경험이고, 이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해보고 싶은 마음도, 해볼 수도 없다는 생각에 많은 고민을 했다.
치과대학을 졸업하는 순간부터 경로는 크게 로컬병원을 가거나 치과병원에서 인턴을 하거나 거의 두 가지 선택지로 나누어진다는 생각.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정해진 경로에서만 고민하는 사고에 대한 반발감으로 꼭 이 안에서 고르려고 하지 말자는 결심이 대립되고 있었다.
인턴 지원기간은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국가고시가 끝나고 바로 동시다발적으로 인턴 지원이 시작되었다.
며칠정도에 걸쳐서 서류를 제출하는데, 나는 인턴에 대한 마음도 제대로 정하지 못했고, 어떤 병원에서 수련하고 싶은지에 대한 마음도 분명하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인턴지원은 국가고시부터 일주일이내에 다 마감이 되는 일정이었다.
매일을 답이 없는 고민 속에 어느덧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음이 정말 급해졌고, 결국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병원에서의 생활은 원내생 생활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더 배우는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지막 날 급하게 지원을 하게 되었다. 닥쳐서 인턴 지원서류들을 읽어보는데, 당장 서류는 마감날에 인터넷으로 내는 것도 아니라 그날까지 직접 서류가 도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턴 지원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경남에서부터 서울까지 직접 가거나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 했다.
급하게 한 시간 만에 지원서류들을 부랴부랴 준비해서 오토바이 퀵을 이용해 마지막 날에 겨우 제출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정말 긴장하면서도 간신히 제출했던 그 순간, 마음 한 구석에서 뿌듯함과 안도감이 솟아올랐다. 인턴을 지원할지 여부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해 왔으면서 시간이 초과되어 지원을 못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 사이에 간절해졌던 것이다.
약 한 달 정도 후에 바로 면접이었고 면접 이틀 전 날에는 오랜만에 학교 동기들과 식사도 하고 즐겁게 보냈다.
하지만, 아찔한 일이 벌어졌다. 먹었던 새우 타코에 어이없게도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설사와 구토로 고생하게 되었다. 당장 면접은 월요일이었고, 일요일 저녁에는 출발해야 했는데 일요일 아침에는 정말 끔찍하게 아팠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렇게 엉망이 되어가니 오기로 꼭 면접을 보고 싶었다.
다행히 주변의 소아과들은 일요일에도 진료를 했고, 링거를 맞고 약을 받고 나니 그래도 급한 불은 끈 느낌이었다. 이미 예약했던 교통편의 시간은 한참 지나있었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남은 교통편은 무궁화호뿐이었다. 6시간을 서울까지 이동해 면접을 보러 갔다. 어떻게든 면접에 참석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났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한 끼도 못 먹은 난 손가락 움직일 기운도 없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이 면접을 통해 내가 어떤 성장을 이루고자 했는지,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보내준 동영상 생각보다 재밌고 힘이 됐다
면접 전날은 2월 5일, 마침 정월 대보름이라 고향 진주에서는 달집 태우기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달집 태우는 동영상을 보내주며 응원을 해주셨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너무 웃겨서 힘이 났다. 생각보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는데 원시인들이 장작에서 느꼈을 아늑함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인턴생활이 힘들 때면 차라리 엄청 힘들어서 면접을 보러 안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다가도, 인턴 지원을 위해서 우당탕탕 거렸던 4개월 전의 나를 위해서라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다. 인턴 생활을 기록하며 평생에 일 년뿐일 이 날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