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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May 15. 2016

인생에 맑음만 있을 수는 없다

비 오는 호카 곶에서

소풍 가기 전날은 비가 올 까 무섭고

왜 하필 태풍은 가을 운동회를 방해하는지

개강 날 귀찮아서 멀리 던져두었던 고데기를 오랜만에 꺼내 하고 나가면

그날은 또 바람이 왜 이렇게 많이 부는지


 평소 집에서 누워 뒹굴거릴 때면 비 오는 소리, 비가 내리면서 나뭇잎에 그리고 창가에 부딪치는 소리들, 비 온 뒤에 상쾌하면서도 알싸하게 퍼지는 흙냄새를 좋아한다.

물론 그럴 때야, 좋지. 그렇지만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날 때 보통은 비 오는 날보다는 맑은 날을 기대해왔다.

 이번 여행 기간 역시 그랬다. 매 순간 소중하지 않은 적이 있겠냐만은 여행을 하는 순간들이 좀 더 간절해지는 이유는 now or never, 여행의 제한성 때문이다. 내가 '이 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여행은 평소보다 더 밀도 있는 의미를 가진다. 교환 학생 학기를 시작하기 전 2주간의 여행에 있어서 단 한 번도 비가 오는 날을 바랐던 적은 없었다. 교환 학생을 위한 짐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보관해두었는데, 공항 캐리어에 깜빡하고 우산을 넣고 여행을 와버렸다. 변덕스러운 유럽 날씨에 따라 비가 왔다 그쳤다 하는 것을 그냥 맞거나 비닐 우비를 사서 그저 비가 오지 않기를 빌면서 2주를 우산 없이 버텼다.


수분기 가득한 먹구름과 신트라의 무어성

 당일치기로 리스본에서 한 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다녀올 수 있는 신트라를 다녀오게 되었다. 신트라는 작은 소도시였지만, 알록달록하게 색칠이 되어 귀여운 페나성과 포르투갈의 만리장성이라고 불리는 무어 성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도시였다. 무어 성과 페나성 뒤로 보이는 수분기 가득한 구름들은 앞으로 있을 호카 곶행에 대한 걱정을 안겨주었다. 생일이라서 스스로를 축하해주고자 나온 여행이었는데 비를 머금은 구름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특별히 오랜만에 사 먹은 버섯 파스타는 크림 사이에 포근하게 버섯이 담겨있는 파스타가 아니라 참으로 산뜻하게도 버섯들을 갈아서 파스타면 위에 얹어준다. 뭔가, 불길하군.


 신트라에서 호카 곶까지는 약 40분 정도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얇은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추위에 어지럽다는 생각을 하며 바라본 창가에 작은 물방울 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툭툭 소리를 내며 창문에 세차게 부딪치기 시작한다. 호카 곶은 석양으로도 유명하고, 오직 풍경만을 위해서 가는 곳이라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날씨를 확인에 확인을 하고 가는 곳이다. 그런 만큼 빗방울을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아.. 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신트라에 부는 바람은 어떠한 정상적인 사진도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오다가, 4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창 밖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비를 좀 좋아하는 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 내가 왜 비를 미워하는 거지? 비가 오면 안 좋은 점은 일단 마침 날씨가 추운 날 좀 축축해질 거고, 바람도 좀 많이 불 거고, 사진을 예쁘게 못 찍을 거 같다. 그런데 비가 오면 안 좋은 점들을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어찌나 별것도 아닌지. 나쁜 면을 알아도 어쩔 수 없을 때는 좋은 면만 보기 엔진을 가동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땅 끝, 호카 곶


 좋은 면만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귀가 닳게 들은 이런 말들에 반발심이 생긴 사람들은 왜 자꾸 좋게만 보라고 하냐며 자신의 비판력을 감소시키는 그런 말을 그만하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비판력으로 상황을 좋게 만들 수 없는 경우에는, 좋은 면만 보도록 하자. 


 호카 곶에 내리자 예상과는 다르게 우비도 없고 우산도 없었으며 차 안에서는 몰랐던 바람까지 휘몰아치며 작은 돌멩이들은 내 몸을 타닥타닥 때렸다. 우산도 없고 우비도 없구나. 상황이 완료된 순간 나에게 선택은 이대로 돌아가거나, 비바람을 맞으며 호카곶을 보는 것뿐이었다. 돌아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선택권은 비바람을 맞는 것뿐이었다.


 생각보다 비바람을 맞는 것은 상쾌했다. 이 속에서도 수많은 동지들이 땅 끝을 향해서 나아갔고 날아오는 돌멩이에 아파하며 서로 키득키득거렸다. 우산을 들고 있던 동지들은 바람 앞에서 이리저리 꺾이고 휘청거리다가 우산을 집어던졌다. 도착한 땅 끝, 비 내리는 호카 곶은 맑은 날에 볼 수 없을 웅장함을 보여주었다. 크게 철썩 이는 파도와 무엇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그리고 흐린 하늘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야릇한 기분으로 왠지 그리스 로마 신화도 떠올랐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꼭 지키고 싶은 원칙 중 하나가 바로 좋은 면을 생각하기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깊게 들이쉬고 내쉬고, 좋은 점을 딱 3개만 생각해보자.


싫어하는 친구랑 여행을 왔을 때 좋은 점,

1) 싫어하는 친구의 좋은 점을 발견하여 이 세상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한 사람 적어진다.

2) 모두가 나와 맞을 수 없는 이 세상, 싫어하는 사람과 동행하는 법을 깨닫는다.

3) 혼자 하는 여행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독일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먹을 수 없어 슬플 때,

1) 독일에서는 소시지와 치즈, 고기들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2) 내게 스테이크가 주식이 될 수 있다니!

3) 해산물 섭취를 위한 욕구가 여행에 더욱 박차를 가해준다.


 그리고 동시에 그 상황의 나쁜 점을 산발적으로 흩어진 채로 두지 말고 딱 3가지로 요약해보라. 아주 작고 사소한 일임을 깨닫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호카 곶 여행을 지나, 학기 중인 지금까지 프라하에서도 그랬고 지금 크로아티아에서도 눈과 비와 안개와 천둥번개들과 함께 여행을 했다.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하면 좋은 점이 보였다. 세상이 매일 맑을 수는 없기에, 내가 구름들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빛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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