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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있지만 대구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출판사 사월의눈은 어느 날 이 도시에 흘러들어 자신들의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그렇게 만든 22권의 책은 전국에서 주목받는다. 이를 통해 대구에도 책을 ‘잘’ 만드는 창작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구입 시기
2019년, 지금의 한옥 사무실에 입주하며 구입했다. 작업대나 식탁은 있었지만 온전히 일만 하는 공간이 되어주는 책상을 구입한 건 처음이다.
책상과의 시간
전가경 하루 종일 앉아 있는다. 건강을 위해서 잠깐씩 일어나야 하지만 쉽지 않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깊게 몰입하는 편이다.
정재완 본업이 대학교수이기에 학교에서의 일정이 없을 때만 사월의눈 사무실에 나온다. 작업실 책상에 앉아 있기도 하지만 서재에 있는 큰 테이블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책상 앞 루틴
전가경 한옥의 특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천장 마감을 따로 하지 않았다. 기온에 따라 흙으로 덮인 천장이 팽창하고 수축하며 먼지를 떨구기에 매일 아침마다 책상 청소를 한다.
몰입하는 주제
텍스트, 이미지, 디자인. 세 가지 요소가 사월의눈에게는 중요한 키워드다.
성장의 원동력
일상의 많은 것에서 책을 떠올린다. 특히 영화나 전시를 보면 이걸 지면에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를 먼저 생각한다. 이런 집요함이 책을 꾸준히 펴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동대구역에 도착하자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구 사진 비엔날레’ 포스터가 나부꼈다. 과거 대구는 사진 예술로 유명했다. 진취적인 예술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이 도시만의 예술 신(scene)을 만들었다. 지역에 자리한 크고 작은 사보 회사들과 사진 전문 인쇄소도 한몫을 했다. 한편, 이 도시엔 새로운 세대의 창작자들도 있다. 그들은 수준급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출판사 ‘사월의눈’도 그중 하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진과 소설을 엮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상실에 관한 영화 <희수>를 종이 위에 담아낸 <스틸 컷, 희수>, 1세대 북 디자이너 정병규의 작업을 정리한 <정병규 사진 책> 등 의미 있는 책을 펴내고 있다. “부산 같은 큰 도시에도 없는 인쇄소가 대구에는 아직 남아 있어요. 훌륭한 품질의 인쇄를 하는 곳인데, 서울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책을 만들 수 있죠.” 사월의눈 대표이자 기획자인 전가경과 디자이너 정재완은 대구에 산 지 10년이 넘었다.
“남편인 정재완 씨가 영남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연고도 없는 대구에 이사 왔어요. 서울에서 살 때부터 막연히 출판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게 되었어요.” 전가경 대표는 수도권보다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사무실을 구해 본격적인 출판사의 꼴을 갖췄다고 말했다. 사진 위주의 도서를 만들기 위해선 이미지를 넓게 펼쳐 놓고 볼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야 했는데, 대구에서는 원하는 규모의 사무실을 수월하게 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상가 주택의 1층, 두 번째는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썼는데 우리만의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싶어 단독 주택을 알아보게 되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대봉동의 오래된 한옥을 발견했죠.” 1950년대 지어진 한옥을 건축사무소 오피스아키텍톤의 손을 빌려 개조를 하며 공간을 3곳으로 나눴다. 업무에 집중하는 작업실과 신간을 전시하는 보이드 공간, 외부 행사를 열거나 회의를 진행하곤 하는 서재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있을 때가 많아요. 코로나19 기간엔 옴짝달싹할 수 없어 아주 답답했는데, 마당 있는 작업실 덕분에 숨통이 트이더라고요.” 2019년에 입주를 한 이들은 한옥 사무실이 대구가 준 선물이라 말한다. 특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업실의 책상에 앉아 있는 전가경 대표에게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책상에는 제 온갖 속마음이 있죠. 책 만드는 일부터 오늘 저녁엔 뭘 먹지 같은 일상적인 고민까지 모두 이 안에서 이뤄지니까요.”
전가경 대표와 달리 영남대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정재완 디자이너는 수업이 없는 날이나 주말에 사무실을 찾는다. 작업실에 있는 책상뿐만 아니라 종이를 고르고 자르는 작업대와 서재의 큰 테이블을 오가며 일을 한다. “서재에 있는 테이블은 처음 사무실을 구했을 때 제작한 거예요. 원목을 구입해 직접 재단을 하고 다리를 붙여 지금까지 쓰고 있어요. 나무도 가죽처럼 사용할수록 멋스럽게 변해요.” 필요에 의해 급히 만들었다는 테이블 2개는 세로로 붙이면 북 토크를 할 때 쓰기 좋고, 가로로 배치하면 책을 마음껏 펼쳐 놓을 수 있다. 유명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것은 아니지만 출판사의 시작점부터 함께하며 정이 깊이 들었다.
중요한 건 잘하는 것
“요즘은 10월에 출간할 책에 완전 빠져 있어요. ‘리듬총서’라고 사월의눈에서 처음으로 지역을 이야기하는 시리즈를 낼 예정이거든요. 사진가가 본 지역을 담는 시리즈로, 첫 책의 제목은 <대구는 거대한 못이었다>예요.” 울산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엄도현 작가가 대구 풍경을 담아낸 책이다. 작가는 대구를 조사하다가 이 지역이 과거에는 거대한 연못이었다는 가설을 듣고 카메라를 들고 그 흔적을 찾아나섰다. 아파트나 가게, 공사장 등이 담긴 사진은 묘하게 물을 연상시킨다. 대구에서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다.
“지역마다 일종의 프레임이 씌어져 있잖아요. 편견 너머의 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지역에서 활동한다고 그 도시 이야기만 해선 안 되어요. 무작정 대구가 좋다는 말만 한다고 해서 타 지역 사람들이 관심을 갖진 않을 테니까요. 중요한 건 잘하는 거예요.” 두 사람은 양질의 콘텐츠가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일이 결국 지역을 드높이는 일이라 생각한다. “독립 출판 페어 같은 데 참여하면 대구에서 온 창작자가 많아요. 사진 책을 만드는 사진가이자 디자이너 서민규 님의 마르시안스토리, 사진작가 장혜진 님이 운영하는 책방 낫온리북스, 사진가 이준석 님의 독립 사진 출판, 사진가 곽범석 님의 모리 디자인, 그리고 사진책을 종종 발행하는 고스트북스, 더폴락과 사진 중심 갤러리인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등은 각자의 자리에서 사진 기반 출판물을 선보이는 곳이에요.” 각자 일이 바빠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로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다.
“책은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도구잖아요. 사진만 가지고도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고, 사진에 텍스트를 더해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어요. 사진과 텍스트의 비중을 동등하게 두고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죠.” 전가경 대표는 ‘이미지, 텍스트, 디자인’을 두고 사월의눈만의 시선이 담긴 구성, 형식을 지닌 책을 꾸준히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만든 책을 해외에도 소개하는 게 그의 목표다. 언젠가 이룰 목표를 향해 한 계단씩 차근차근 오르고 있는 두 사람 곁을 항상 지키는 도구를 꼽았다.
[On the Desk]
1. 전가경의 메모지. 페이퍼프레스 박신우 디자이너가 제작해 선물로 주었다. 옆으로 기울이면 메모지 옆면의 글자가 왜곡되는 모습이 재밌다.
2. 전가경의 오일과 오일 스톤. 대구에 있는 비건 식당 ‘더커먼’ 강경민 대표님이 선물로 준 오일과 물물교환에서 얻은 아로마티카 오일 스톤이다. 일하는 중간중간 뿌려 기분 전환을 한다.
3. 전가경의 미니 청소기. 흙으로 마감된 천장에서 떨어진 먼지를 출근하자마자 치우는 데 쓴다.
4, 5. 정재완의 노트와 펜. 스케치를 할 때 사용하는 노트와 펜은 항상 손에 들고 있다. 노트는 소금까치의 곽지현 디자이너가 24절기를 테마로 해 제작한 것이다.
Editor Kwon Areum
Photographer Lee Woo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