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지박약이고, 내 특기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다.
(2019.03.27. '주말, 글 쓰는 농장'에서 쓴 글)
나는 의지박약이다. 내 특기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다. 마무리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어떤 일을 꾸준히 할 거야!’라고 다짐하면서도 동시에 '삼일만 하면 선빵이다!!’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삼일천하가 되는 일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적이 없었다. 그게 바로 내가 예상한 결과였으니까.
작년 9월 페이스북 커뮤니티에서 매일 아침 필사를 하는 모임을 연다고 해서 참여하기로 했다.
앞에서 썼듯이 내 특기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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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앉아서 첫 번째 미션으로 주어진 문구를 따라 썼다. 문구를 쓰고 사진 찍어서 카톡방에 올리는데 5분도 채 안 걸렸다. 진짜 별거 아니었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일주일, 한 달, 세 달, 다섯 달…. 5개월째 하고 있다.
매일 5분이 안 되는 시간을 들이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 달치 필사의 흔적이 나에게 준 자신감이 공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다.
자신감이 붙어서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 최근의 나는 4-5개의 작은 습관을 갖게 되었다.
매일 아침 필사를 하고, 저녁에는 15분 동안 책을 읽고, 오늘의 내 기분을 체크한다.
'의지박약인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니!!’ 하고 놀랐던 적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의지박약이라서 이렇게 할 수 있구나…'
개중에는 실패한 것도 물론 있다. 30일 글쓰기 모임이었나. 어느 곳에라도, 짧게라도, 뭐든, 쓰면 되는 거였는데, 한 달 동안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글쓰기는 나에게 너무 난이도가 높아서 다른 장치를 추가해야 했다. 그래서 올해에는 2주에 한 번씩 모여서 2시간 동안 글을 쓰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건 좀 더 효과가 있어 보인다.
이런 작은 습관 프로젝트가 요즘 유행인가 보다. 작은 습관이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거나 인생을 바꾼다고 하던데.. 글쎄, 그렇게까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느낀 건 오히려 이런 거다.
일단 작은 습관이 생기면 기분이 좋다.
공짜로 얻은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면 아마 큰 변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조금 높아질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큰 단위로 습관을 키우거나, 내 일과 관련된 습관을 만든다면 내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 난 그럴 생각은 없지만. 데일리 루틴을 갖고 있다고 얘기하면 다들 나를 대단하게 쳐다보는데, 누구나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말해주고 싶다.
(* 하고 싶다는 동기는 전제조건이다. “난 그런 거 못해”라고 말하기 전에 정말 본인이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생각해 보자. 할 수 없는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구분할 것.)
'진짜 저거 해서 뭐가 달라지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즉, 저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단위의 일이어야 한다. 아니면 큰 습관이지 그게 작은 습관인가? 나처럼 하루 5분, 3일 동안 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 일상의 시간 중 딱 맞는 곳에 끼워 넣으면 더 쉽게 루틴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이걸 했는지도 모르게 하자. 나 같은 경우는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필사를 한다. 10시에 출근하면 10시 20분에 스크럼을 하기까지 시간이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포스트잇에 필사 문구를 따라 쓰고 사진 찍어서 인증한다. 이걸 출근하면 자동으로(?) 한다.
인증은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임에 참여하는 게 좋다. 대학 때 그런 거 해본 적 있는지? [매일 아침 9시에 열람실 앞에서 사진 찍고 단톡 방에 인증하실 분 모집합니다!] 이런 거. 물론 난 해본 적 없다. 아무튼 이런 느슨한 연대가 딱이다. 캡처하거나 사진 찍어서 카톡방에 올리는 거 요즘 진짜 쉽다. 사진은 내가 한 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끼게 해 준다. 혼자서 할 경우엔 좋아하는 스티커나 도장으로 스스로 인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유치해도 나에게 주는 나름의 훈장이다.
칭찬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근데 왜 안 해?
사람은 한 번에 5-9개 정도만 기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는지? 그래서 비슷한 내용을 묶어서 그 묶음을 5-9개로 만들면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작은 습관도 마찬가지다. 나는 매일 아침 두 가지 작은 일을 한다. 필사 모임에서 미션으로 받은 문구를 따라 쓰는 것과 배민 일력*에 쓰인 문구를 읽고 아침 일기처럼 짧게 코멘트를 적는 것. 난 포스트잇에 필사를 하고 그걸 일력 포스트잇 뒤에 붙여서 보관하는 방식으로 둘을 묶었다. 역시 별거 아닌데 그렇게 하면 필사 문구를 잘 보관할 수 있고 배민 일력에 코멘트 다는 일을 잊어버리지 않아서 더 쉽고 빠르게 습관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 (*배민 일력: 배달의 민족에서 포스트잇 형태로 발행한 일력으로, 매일 재밌는 문구가 쓰여있다.)
어떤 일을 매일 한다는 것의 단점은, 가끔 까먹거나 다른 일이 생겨서 빼먹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날은 분명히 생긴다. 그래서 완벽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리고 어떤 일을 매일 한다는 것의 장점은, 가끔 까먹거나 다른 일이 생겨서 빼먹는 날이 있어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못할 수도 있지. 지나간 것에 미련 갖지 말고 오늘 거나 잘하자.
'별거 아니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효과를 발휘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별거 아닌데 그것도 못해내다니ㅠㅠ'가 될 수 있다. 괜히 사서 괴로워하지 말자. 적응할 때까지는 여유를 가지고 할 것. 적응된 후에는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24.07.20. 5년 전의 글을 보고 더하는 글)
지금은 감정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이때의 습관을 나만의 방식대로 발전시켜서 몇 개의 루틴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그 덕분에 6개월의 갭먼스도 아주 야무지게 보낼 수 있었지. 그리고 단순히 행동을 정교화한 것뿐만 아니라 작은 습관의 힘의 의미를 깨달은 덕분에 현재는 매달 작성하는 나만의 OKR에 리추얼을 유지하는 것을 빠지지 않는 목표가 되었다.
이 글은 '주말, 글 쓰는 농장'에서 작성한 첫 번째 글이었다. '주말, 글 쓰는 농장'은 내가 뭔가 글 쓰는 행위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어떻게든 행동해 보고자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얼마 없지만 그때 썼던 글을 보니 그 모임을 경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4년이 지나서야 나는 글을 쓰는 재미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나는 느리다. 참고: 갭 먼스(Gap Months)에 몸을 맡겨). 그 당시의 생각과 그 기록이 5년이 지나 현재의 나에게 위안과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 경험은 새롭고 짜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