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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지 Feb 01. 2024

08. 푸른 새벽

“저한테는 파라솔이 없어요.” “정말요?”

그대로 해변까지 걸어 나오니 짙은 어둠이 걷히고, 탐정 사무소를 나설 때 맡았던 바다의 짠 내음이 강하게 느껴졌다.

“바다 좋아해요?”

탐정의 물음에 고개를 뒤로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내가 갇혀있던 곳은 짙고 어둡기만 한 바다였는데, 눈앞에 펼쳐진 건 푸르스름한 청록색의 잔잔한 바다였다.


“너무 예쁘죠? 제가 사는 곳과도 가까워서 종종 들르는 곳이에요.”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탐정 사무소가 보였다.

“그게 진짜 바다였다니.”

“네?”

“아니에요. 진짜 예쁘네요. 예쁘다기보다는 뭔가 오묘한 느낌?”

날이 완전히 환하지 않고 새벽녘처럼 푸르스름해서 바다색이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거기에 바닷바람답지 않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 고독하면서도 포근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 바다는 평온함의 상징이다.

“여기는 항상 이렇게 푸르스름한 새벽이에요. 파도가 높아지거나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일도 없어요. 왜 그럴까요?”

탐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며 물었다.

“저야 모르죠?”

“여기는 당신의 꿈속 세계니까 이유가 있을 거예요.”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첫 번째 번아웃을 경험하고 혼자 떠난 여행에서 바다에게 위안을 많이 얻었어요. 그때부터 바다에 대한 이미지가 평온함, 고요함, 뭐 그런 것이었는데, 그것 때문일까요?”

탐정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쓸쓸함이 아니고요?”

탐정의 말에 난 바다를 다시 바라보았다. 쓸쓸함이라.. 모두가 잠든 새벽의 바다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평온함, 고요함, 그리고 거기서 오는 자유로움.

“아뇨. 쓸쓸함보다는 자유로움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내 대답에 탐정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래서 자유로워졌나요?”

난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바다 앞에서 만요.”

“왜요?”

“일상에서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잖아요. 내 존재를 깨닫거나 자유롭게 행동하기 어려워요. 일상은 마치 여름 성수기 때의 해수욕장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 같은 바다가 아니라.”


내 말을 들은 탐정은 어디론가 나를 끌고 갔다. 그곳에는 파라솔이 하나 꽂혀있었다. 탐정과 나는 파라솔 밑에 나란히 앉았다.

“해수욕장에서도 파라솔 안에서는 내 존재를 느낄 수 있어요. 이 공간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잖아요. 내 존재와 자유로움은 조건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에요. 항상 거기에 있고, 내가 찾으려고만 하면 찾을 수 있어요.”

“저한테는 파라솔이 없어요.”

“정말요?”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물어오는 탐정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서 나만의 파라솔을 찾고 있었다. 그간 탐정과 함께 걸어오며 떠올렸던 것들이 다시 한번 내 머릿속을 울렸다. 첫 영화를 보고 흥분해서 반짝이던 나, 그런 나를 응원해 주신 아빠, 꿈을 위해 노력했던 시간, 그 꿈을 함께 했던 친구, 변화를 두려워하던 나와 그럼에도 한 발짝 내딛을 수 있게 된 나, 그리고 이런 시간을 돌아보게 해 준 탐정까지. 그 어떤 파라솔보다도 크고 튼튼하며, 다채로운 색깔의 파라솔이었다.


“있는 것 같기도…?”

작게 얼버무리는 나를 보더니 탐정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멍한 표정을 짓는 나를 무시하고 한참을 웃다가 촉촉해진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자 이제 사건을 마무리 지으러 가볼까요?”


탐정은 내 손을 잡아끌어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탐정 사무소로 향했다. 늘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온 반딧불이는 이번엔 우리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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