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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지 Feb 05. 2024

09. 시간을 삼키는 아이

“반가워. 그리고 고마워.”

✨ 당신의 반짝이는 시간을 되찾아드립니다. ✨

탐정 사무소 앞에 걸려있는 문구를 보니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알아낸 것도 건진 것도 없이 시작점으로 돌아오다니 이대로 괜찮은 건지 걱정이 됐다.


탐정은 사무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하아-’하고 안도감이 섞인 숨을 내쉬며 모자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 촌스러운 탐정 옷을 벗어내자 탐정처럼 보이는 사람은 온 데 간 데 없고 귀여운 10대 여자 아이 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그대로 탐정은 본인 몸보다 큰 1인용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긴 여행 끝에 그리웠던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한 모습이었다.


반면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과 걱정이 섞인 표정을 하고서 문 앞에서 엉거주춤 서있을 뿐이었다. 이곳은 내 집이 아니니 탐정처럼 긴장을 놓아줘도 되는지 고민이 되었다. 아마 그동안 꽤나 쌓여서 내 품을 벗어나면 통제할 수 없이 흘러넘치게 될 것이다. 그럼 언제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될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한층 더 간절해졌다. 일 때문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갈망이었다.

그렇게 탐정과 나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잠시 자신 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잠시 후, 탐정은 소파에 폭 파묻혀서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복잡하게 변해가는 내 표정을 실시간으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재밌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장난기 가득한 입꼬리와 다르게 눈빛은 포근했다.

“진짜 재밌는 여행이었죠?”

탐정이 말문을 열며 서로 분리되어 있던 시공간이 합쳐졌다.

“에? 음.. 그런가요?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시간의 흔적을 따라서 왔는데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다니… 설마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건가요?”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면 시간을 삼키는 아이를 만날 수 있어요.”

“따라왔잖아요?”

“네!! 맞아요!”

난 고개를 갸웃했다. 탐정은 눈을 반짝이며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 머릿속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

“당신이 시간을 삼키는 아이예요?”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탐정, 아니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제가 바로 그 아이랍니다.”


처음에 내가 꿈속에 갇히게 된 것이 시간을 삼키는 아이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아이를 만나면 왜 나를 이런 곳에 가둔 거냐고 따질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여러 일을 겪고 정말로 아이를 마주하자, 처음 나온 행동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 그리고 고마워.”


아이는 내 품에 안기자 순간 깜짝 놀란 듯 움찔했지만, 이내 얇은 두 팔로 나를 감싸 안고 내 등을 토닥였다.

나는 그 작은 토닥임을 느끼며 마지막까지 붙들어왔던 긴장을 마침내 내려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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