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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지 Feb 23. 2024

10. 반짝이는 시간

“이건 뭐예요?” “당신의 반짝였던 시간들이요.”

긴장이 풀린 나는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굳어있었다. 그 탓에 나도 모르게 무게가 실렸는지 아이가 살짝 휘청거리며 토닥임을 멈췄다. 나는 정신이 들어 얼른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 미안해요.”

내 멋쩍은 사과에 아이는 다시 씨익 웃고는 사무소 중앙에 있는 큰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대로 여러 모양의 시계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이는 시계들을 하나씩 집어 살피더니 마지막으로 빛으로 둘러싸인 시계를 들고는 ‘후-’ 하고 바람을 불어 먼지를 털어냈다.


아이가 불어낸 바람을 타고 빛이 흩어졌다. 흩어진 빛 사이로 익숙한 풍경을 지닌 시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밤하늘?”

그 시계는 책상 위의 다른 시계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형체가 고정되어있지 않았다. 짙은 남색 바탕에 작은 빛 한 개가 박혀있는 모양이었는데,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봤던 밤하늘 같기도 했고 나를 한 번 더 절망에 빠뜨렸던 짙은 바다 같기도 했다. 아이는 골똘한 표정으로 그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무소 안을 샅샅이 훑던 아이의 시선이 멈춰 선 곳은 그 반딧불이였다.


아이가 반딧불이를 향해 손을 뻗자 반딧불이가 날아와 아이의 손 끝에 살짝 닿았다가 밤하늘을 닮은 시계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시계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그 밤하늘엔 수많은 별이 반짝였다.

“됐다!”

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그 시계를 나에게 건넸다. 나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시계를 건네받았다. 구형 같이 보이지만 완전한 구가 아닌, 물체를 들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허공을 받치고 있는 묘한 느낌이었다.


“이건 뭐예요?”

나는 시계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엉거주춤한 포즈를 한 채로 물었다.

“당신의 반짝였던 시간들이요.”

아이의 대답에 나는 다시금 건네받은 시계를 내려다봤다. 내 두 손 가득히 별이 가득 빛나는 밤하늘이 담겨있었다.

"이제 당신에게 돌려줄게요.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반짝이는 시간을 이어가주세요. 지금의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아이, 그리고 탐정과 함께한 시간들이 빠르게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고맙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단순히 변했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나 자신의 변화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헤어짐을 맞이했다.


눈을 번쩍 떴을 땐 침대에 누운 채였다.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처음 꿈에 갇혔던 때로부터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은 것 같았다.

“하아-”

드디어 돌아왔다는 안도감은 잠깐이고 뒤이어 그리움과 아쉬움이 몰려왔다.

창밖 너머로 깊은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들어야 했다. 아침이 오면 이전과는 다른 내일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시 꿈.. 꾸고 싶네.’


잠에 들면서 평소와는 달리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다시 꿈을 꾸는 일은 없었다. 대신 나는 현실에서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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