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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지 Aug 10. 2024

좋아하는 색을 따라가시오.

내가 파란색을 좋아했던가?

어느 여름, 나는 길을 잃었다.


내 앞에 놓인 길은 파란색 길 하나뿐이었다. 

나는 문득 멈춰 섰고, 고민에 빠졌다.

계속 걸어오던 길인데 왜인지 낯설게 느껴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더니 다행히 표지판이 있었다.

표지판이 말하기를, "좋아하는 색을 따라가시오."


나는 내가 딛고 있는 길을 바라보았다.

그 길은 깊은 바다처럼 어둡고 깊고 침묵하고 있는 파란색이었다.

내가 파란색을 좋아했었나?

지금까지 계속 걷고 있었으니까 좋아했겠지?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그렇게 나는 좀 더 걸었다.


조금 더 걷다가 나는 또 멈춰 섰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잃었다.


표지판에는 여전히 "좋아하는 색을 따라가시오."라고 쓰여있다.


좋아하는 색을 따라가고 있는데 왜 자꾸 길을 잃지?

표지판이 틀린 걸까? 아니면...

이게 내가 좋아하는 색이 아닌 걸까?


나는 다시 내가 딛고 있는 길을 바라보았다.

내가 파란색을 좋아했던가?


나는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길을 지긋이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은 깊은 바다처럼 어둡고 깊고 침묵하고 있는 파란색이었다.

꽤 멋진 파란색이네? 나에겐 조금 어둡고 차갑지만.


나는 조금 더 걸었다. 

걸으면서 찬찬히 길을 살펴보니 그냥 '파란색 길'이 아니었다.


바다를 닮은 파란색은 많은 생명을 품은 것처럼 생동감 있었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려. 설레는 걸까?'


여전히 파란색의 어둠은 나를 잡아 삼킬 만큼 어두웠다. 

'아 이건 나랑은 안 맞는 것 같네. 저 어둠은 불편해.'


깊은 파란색은 차분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따뜻한 품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위안이 느껴져.'


파란색의 침묵은 모든 공간을 비워내고 나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내 존재만으로 이 시공간을 온전히 채우고 있는 느낌이야'


그 외에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산뜻한 파란색, 얼음장처럼 차가울 것 같은 겨울 하늘의 파란색, 청량하고 시원한 가을 하늘의 파란색, 우울함이 느껴지는 잿빛 파란색.. 

길을 걷는 동안 파란색 안의 파란색들이 다양하게 보였고, 그 파란색마다 내가 느끼는 것도 달랐다.


내가 파란색을 좋아했던가?

글쎄, 이 길을 따라가면서 내가 어떤 파란색을 좋아하는지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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