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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Jun 17. 2022

“실패할 권리, 72시간”

『로케웨이, 이토록 멋진 일상』 서평

- 작성자, '단단'



  1초면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실제로 실행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세계적인 성공학자 위르겐 휠러는 생각한 걸 72시간, 즉 3일 안에 하지 않으면 그 일을 실제로 실행할 확률은 1%도 안 된다고 했다. 한 번 놓친 일과 아이디어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평생 꿈만 꾸다가, 버킷리스트에만 적어 놓다가 간절히 기다리던 모든 ‘적당한 시기’를 놓치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로커웨이, 이토록 멋진 일상』의 저자, <뉴욕타임스>의 능력 있는 기자인 ‘다이앤 카드웰’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전한 직장에서 일하며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키우고,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모른 채 이상적인 삶만 쫓아갈 수도 있었다. 혹은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뭐지?”라는 막연한 질문을 인생의 끝에서 아주 뒤늦게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이앤은 이상적이고 안락해 보이는 꿈을 이뤄줄 것 같았던 ‘남편’의 이혼 요구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다. 다이앤은 혼자가 된 자신을 비참하고, 불안하다고 느꼈지만 결국엔 그 좌절에서 본인을 끌어올렸고 다시 일어섰다. 뭘 하고 싶은지 알아낸 후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설령 잠깐의 두려운 질문들이 다이앤의 머릿속에 떠다녀도 그녀는 그 질문에게 되물었다. “대체 몇 번이나 이랬던 거야? 낯설거나 무섭거나 내가 속해 있다고 믿는 상자 밖으로 끌려 나갈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시도조차 시도하지 않는 거.”(37쪽) 라고.     


  기자 다이앤 카드웰이 서핑이라는 스포츠에 푹 빠지게 된 계기부터 ‘서퍼’로서의 삶을 섬세하고도 실감 나게 기록한 『로커웨이, 이토록 멋진 일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17쪽)라는 암담한 질문의 첫 문장이 프롤로그의 포문을 열고, “나는 시련에서 살아남았고 큰 상처도 없었다. 적어도 몸에는. 나는 또 파도를 탈 것이고, 이 순간에는 그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24쪽)로 프롤로그는 끝난다. 바다 한가운데에 혼자 남은 인간의 절망과 그럼에도 그 시련을 이겨내고 또다시 바다에 뛰어 들겠다고 다짐하는 용기. 프롤로그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사이의 이 간극은 이 책의 전체 흐름과도 같다. 

『로커웨이, 이토록 멋진 일상』은 서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무너진 한 인간이 어떻게 우울과 슬픔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원해 내는지, 어떻게 자신에 대한 용기를 되찾는지 그 과정을 진실하게 담아낸 에세이이다.
 

취재차 우연히 들렸던 해변에서 ‘서퍼’들을 마주치고, 마침 해변 앞 빈집을 발견하고, 또 우연히 서퍼들이 사랑하는 마을 ‘로커웨이’로 이사하게 되고. 정말 “운명이야”(36쪽)라는 말이 어울리듯 온 우주가 그녀의 삶에 ‘서핑’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운 것만 같다. 물론 그녀가 마냥 운이 좋았다는 말은 아니다. 아무리 눈앞에 멋진 해변이 펼쳐져 있어도 그곳에 뛰어드는 사람은 아주 소수이며,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모두 투자해 용감하게 선택하는 사람은 더욱더 소수이다. 수없이 넘어졌음에도 매번 다시 일어나 서핑보드 위로 엎드리는 사람은 정말, 정말로 드물다. 그러니까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에 빠졌던 ‘다이앤’이 ‘서핑’이라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하게 되기까지, 다음의 운명적인 우연을 불러온 것은 “혼자 뭘 하려고?”라는 괴로운 질문을 향해 “ 나도 할 수 있을지 몰라.”라는 새로운 다짐으로 대답한 다이앤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스스로 다음 운명을 불러왔다.   

   

  “너는 너 좋은 거만 하려 그러지.”(32쪽)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이 ‘진짜’ 좋아하는 일만을 하며 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버지로부터 지독한 성과주의를 강요당하며 그 무엇도 쉽게 도전할 수 없었던 ‘다이앤’은 일평생 “진짜 삶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지지부진한 느낌”(32쪽)으로 살아왔다. 언젠가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될 삶, 남편으로부터도, 직장으로부터도, 부모님으로부터도 강요받지 않고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들 삶을 말이다. 다이앤은 본격적으로 서핑을 타기 위해 뉴욕 끄트머리에 자리한 마을 로커웨이로 이주해 진정한 ‘서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 ‘파도’라는 거대한 존재가 흘러들어왔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할 시간이” (118p) 그녀에게 주어졌다.     


  ‘위기를 기회로’라는 흔한 말처럼, 상황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바닥을 치던 그녀의 삶이 나아갈 수 있었던 건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없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매번 서핑 보드에 다시 올라탔고, 도움을 요청했고, 파도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넘어질 권리, ‘실패할 권리’를 되찾은 그녀는 더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샌디’라는 허리케인이 그녀가 사랑하는 마을, 로커웨이를 휩쓸고 지나갔을 때에도 아직 집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무너진 집을 먼저 보지 않고,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과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을 생각했다. 설령 모든 것이 폭풍처럼 휩쓸렸더라도 다이앤은 아직 ‘다이앤’이라는 자기 자신이 남아 있음을 되뇌었을 것이다. 

  사람이 넘어지면 아픈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픔을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아픔을 아는 것에서 그치는 사람은 넘어지기를 두려워하고 아픔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픔을 뛰어넘는다. 만약 당신이 정말 아픔을 겪고 싶지 않다면, 그 유일한 방법은 고통이 예상되는 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얼른 받아들이고 툭 툭 털고 일어나, 걸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다이앤은 수없이 넘어지며 ‘실패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삶’에서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삶’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10년의 연애 끝에 남편에게서 이혼을 요구받고 경제적 상황도, 안락한 가정이라는 이상적인 삶의 계획도 이루지 못할 위기에 처한 중년 여성이 어느 날 ‘서핑’에 빠져 ‘로커웨이’라는 시골로 이주해 서핑에 푹 빠진 다정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서퍼’로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 시시하고 사소한가? 물론 이런 단순한 요약은 위험하고, 섣부를 수 있으며 누군가는 전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약 400페이지 걸쳐 펼쳐지는 ‘다이앤 카드웰’의 ‘새로운 삶’은 짧은 문장 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아슬아슬하고, 용감하며, 기막히고, 따뜻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간결한 줄거리로 이 책을 요약한 이유는 가장 쉬워 보이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눈에 저 문장이 너무나도 시시하고, 쉽게 보였다면 당신은 반드시 『로커웨이, 이토록 멋진 일상』을 읽어야 한다. 


지금이 어렵다면 잠시 후라도, 내일이라도, 안 된다면 72시간 안에라도.



*  본사와 제휴한 외부 필자에 의해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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