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그립다면 즐겨라
갑자기 좀 전까진 없던 지하철 표시가 확 들어온다.
노선 한가운데서 빈 지하철이 합류하는 역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지하철이 와도 빈차가 아니면 타지 않는다. 경기도에서부터 꽉꽉 채워진 발디딜곳조차 없어보이는 지하철에서 오히려 내려서는 같이 지하철을 기다린다. 나도 가급적 내린다. 전국민이 압사 트라우마가 패딩까지 입고나니 더 강하게 밀려온다. 5분 늦게 가는 대신 호흡의 편안함을 선택하련다.
기다리는 순간은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마치 중고생때 점심시간에 책상에서 다리 한쪽 빼고 기다렸던 순간을 떠올리며 경력직같은 느낌이 난다.
일렬로 서기 좁은 공간덕에 꺾여진 줄에서 어떻게 하면 인라인을 타서 전동차에 빠르게 진입할지 소리없는 자리 싸움이 치열하다. 뒤 사람이 인라인으로 꺾여서 서있으면 줄을 무시하고 중간으로 강제 진입의 가능성도 있기때문에 자리 잡기는 중요하다.
이 중요한 순간에 잡담하며 앞에 안보고 뒤돌아서 있는 사람이나 본인은 여유있는 척 느슨하게 서있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짜증난다.
지하철 들어온다는 음악소리가 나면 이제 준비 시간이다. 전략을 결정해야한다.
맞은 편의 의자에 앉을 것인가 아니면 타자마자 빠르게 커브 돌아서 앉을 것인가. 남자가 앞에 있다면 차라리 임산부석 근처도 괜찮다. 딱 커브 돌고 임산부석에 앉지 못해 주춤거릴 때 그 옆자리를 미리 노리면 앉을 수 있다.
빈차가 들어오면 줄은 앞쪽으로 타이트하게 붙는다. 이 순간에 스마트폰 보느라 느슨한 앞사람이 있다면 소리치고 싶다.
"그런 느슨한 자세로는 앉아서 갈 수 없어!!"
입구가 열렸고 줄은 지켜지듯 무너지며 4번째 순서 사람이 중앙진출하며 속도를 내고 어깨빵을 치며 다다닥 소리내며 자리를 차지한다. 모든 자리가 차는데 체감 1초. 순간 초속 5미터. 재본적이 없지만 1.5초가 되기전에 임산부석과 노약자석을 제외한 모든 자리가 찬다. 그 순간동안 숨조차 쉴 수 없다.
자리 차지에 실패한 일부 사람들은 그냥 내려버리거나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이미 꽉찬 좌석들 앞을 서성인다. 여자들은 비어있는 임산부석에서 살짝 망설이듯 고민하다가 털썩 앉기도 한다. 임산부가 오면 일어나야지 생각하지만 사실 몇 정거장 지나가면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임산부도 이 좌석앞에서 분홍딱지를 보여주기 어렵고 앉은 사람도 스마트폰에 파묻혀 임산부를 못 볼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지만 출근시간 자리는 아주 유혹적이라 소도둑이 될까 겁날 뿐이다.
전략을 떠올리며 동동거리던 나는 승자의 기쁨이 찾아온다. 여유럽게 스마트폰을 꺼내서 들여다본다. 서있으나 앉아있으나 스마트폰 보는 것은 똑같지만 오늘 하루 판교까지 출퇴근할 에너지를 조금은 비축했다는 사실에 어깨가 아주 조금은 가벼워진다.
아침 출근시간, 비어있는 전동차에 타본 적이 있나?
도파민 터지는 경쟁이 매일 아침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