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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산 Feb 05. 2020

내가 토익을 좋아하는 세 가지 이유

원수를 사랑하라 

2008년 12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나는 약 10년을 종로에서 토익 강의하며 보냈다. 토익과 그 긴 시간을 함께 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버렸다. 나를 참 힘들게 했음에도 그가 10년 동안 나를 먹여 살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애증의 TOEIC, 다음은 내가 토익을 좋아하는 세 가지 이유다. 




1. 답이 정해져 있다. 

정답과 오답이 만무하는 인간 세상과는 달리 토익 세상에는 정답과 오답이 정해져 있다. 때때로 논란의 문제라고 하여 보기 중 A가 맞네, C가 맞네 하면서 이런저런 토익 관련 사이트에서 정답이 갈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익에는 언제나 깔끔하고 명료하게 답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깔끔하거나 명료하지가 않다. 나는 지금 침대에 누워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약간의 목마름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정답은 없지만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예: 지금 당장 물을 마신다, 글을 더 쓰고 5분 후에 마신다, 귀찮으니까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는다, 나가서 맥주를 사 온다 등) 어떤 선택지가 최선인지는 알 수 없다. 정답과 오답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더 매력적일 수 있는 거겠지만.


2. 공부를 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하게도 토익을 공부하면 영어 공부도 함께 된다. 토익은 기본적으로 비즈니스 환경에서 자주 쓰이는 영어를 기반으로 문제가 만들어진다. 일상생활에서 등장하는 표현들도 출제되지만 우리가 영화나 미드에서 보는 그런 "진짜" 일상생활 영어는 아니다. 이를 테면, "What's up?"이나 "How you doing?", 랩 가사에도 자주 등장하는 "I don't give a shit!", "You're fucking crazy!"같은 표현은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지만 토익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토익 영어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아니고) 1학년 바른생활 교과서에 등장하는 Tom과 Jane의 대화처럼 예의 바르고 평화롭기만 하다. 물론 이 자체가 좋은 건 아니지만,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예의를 갖춰야 하는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토익 영어가 아주 제격이다. 게다가 토익 RC Part 7 지문에는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세계지리, 역사와 더불어 여러 전문분야의 정보들이 많이 들어 있다. 나는 토익 공부를 하며 전에는 몰랐던 폴란드의 여러 도시 이름, 등산로의 종류, 건축자재 등에 배우게 되었고 심지어 캐서롤이나 셔벗 같은 음식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알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을 배우지 못하겠느냐만은 그럼에도 토익은 참 재미있는 정보를 많이 알려준다. 


3. 끝이 있다.

토익을 공부하기 위해 보통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토익 교재를 구입하는 것이다. 토익 교재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토익에는 정해져 있는 범위가 있다. 마치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이번 시험은 1단원부터 4단원까지다."라고 정해주는 것처럼 토익에도 그러한 범위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은 즉 그 범위만 공부하면 끝이다. 끝이 없는 인간 세상 속 과목들과는 달리 토익 세상에는 끝이 있다. 마치 게임에서처럼 끝판왕을 깨면 990점이라는 최고 점수가 뜨면서 말 그대로 정말 끝나는 것이다. 물론 강사의 입장에서는 강의라는 끝없는 판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지만 토익만 가지고 보면 정말 시원하게 끝이 있다. 그 끝에 막상 가보면 매우 만족스러우면서 허무하다. 예전에는 그렇게 "00회 연속 만점!"과 같은 타이틀을 강사 앞에 붙었었는데, 이제는 "만점"이라는 타이틀에 매력이 없는가 보다. 많은 선생님들이 "만점" 대신에 "1위"나 "마감"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붙이는 걸 보면 말이다.



내 인생의 약 1/3을 토익과 함께 했다. 하루 종일 밉다가도 막상 얼굴 보면 웃음부터 나오는 연인처럼, 걱정이 태산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고마운 가족처럼, 모두가 욕해도 내가 좋으면 상관없는 아이폰(?)처럼 토익은 나에게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존재이다. 이렇게 칭찬해줬으니 다음 글에서는 싫어하는 이유를 늘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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