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1
기요미즈데라
교토는 유명한 광관지이기 때문에 사람이 아주 아주 많다. 게다가 설/춘절 시즌이기 때문에 수많은 한국/중국인들이 교토로 오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청수사 기요미즈데라에 오픈런으로 가기로 했다. 새벽 6시에 맞춰 해가 뜨기도 전에 달려갔다. 늘 사람이 북적이고 복잡한 기요미즈데라지만 우리는 여유롭게 한적한 청수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침 7시 즈음 되자 아마테라스가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교토의 전경과 함께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오직 나무로만 만들었다는 본당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상하고 우아하다. 고요한 멋이 촉촉한 아침 공기로 느껴진다. 후쿠오카에서부터 교토까지 차를 타고 오면서 봤던 길고 쭉쭉 뻗어있는 나무들이 떠올랐다. 그 나무들로 만들었을 기요미즈데라. 역시 목조 건축물이 멋지다. 보기에도 좋고 만들기에도 좋다. 불만 나지 않는다면야.
렌게오인 산쥬산겐도
기요미즈데라보다 사람이 더 많다는 산쥬산겐도. 역시 오픈런을 해야한다. 오픈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마끄도나르도에서 맥모닝을 먹었다. 길거리에는 수십명의 여고생들이 세라복을 입고 등교하고 있었다. 아주 짧은 횡단보도에서도 절대 무단횡단 하지않고 줄지어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속을 걸으며 우리는 산쥬산겐도로 향했다. 문을 열기 전이었지만 이미 긴 줄이 서있었다. 차례대로 우리는 33간당으로 들어갔다. 당내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신발을 벗어야 했다. 신발을 벗을때에도 반드시 뒤돌아 서서 신발의 코가 밖을 향하게끔 벗어야한다.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오픈런하는 걸까?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겐도에 들어섰다. 오른쪽으로 얼핏 천수관음상이 보였다. 그런데 그 옆에도 그 옆에도 계속 정교하게 만들어진 관음상이 줄지어 서있었다. 끝도 없이 서있는 그 모습에 정말 압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천 개의 손을 가진 천수관세음보살이 천 명이다. 120미터의 기다란 목조건축물에 1000명의 보살을 줄 맞추고 각 맞춰서 그렇게 웅장하게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120미터를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머리가 띵했다. 천개의 관음상 중에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보살은 없었다. 모두가 다른 얼굴로 그 앞을 걸어가는 중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이로움에 할말을 잃은 우리는 천수관음상을 마지막으로 헤이안쿄를 떠나기로 했다.
후나즈시
오뤼자상이 여행 전부터 자주 언급했던 후나즈시를 사기위해 서울만한 호수인 비와호 옆에 있는 사카모토야로 향했다. 1869 메이지2년에 문을 연 이곳은 비와호에서 잡은 붕어를 소금과 밥으로 1년동안 삭혀서 만든 스시라고 한다. 일본의 유형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고 하니 어떤 곳일지 매우 기대가 됐다. 가게의 외관에서부터 긴 역사가 느껴졌다. 나무로 된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니폼을 갖춰입은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한국에서 후나즈시를 위해 왔다고 했더니 역시나 친절하게 응대했다. 만드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싶다고 하니 그건 안된다고 굉장히 미안해했다. 그러더니 안쪽에서 거의 다 부서진 큰 액자 하나와 먼지 쌓인 앨범을 들고 왔다. 그 안에는 후나즈시를 만드는 과정이 사진으로 전부 기록되어 있었다. 가게에서는 스시를 먹을 수 없고 포장된 제품만 살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 걸 살지 몰라 우왕좌왕했는데 일본어를 못하는 우리를 위해 아들은 스마트폰 번역을 써가며 제품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서로 미안하고 고맙다는 인사만 오십번은 넘게 한 것 같다. 우리는 가게에서 나와 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하얀 머리의 사카모토야 사장님은 우리가 떠날때까지 먼발치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창문을 열고 또 한번 인사를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포사마그나 박물관
주부지방에 들어섰다. 어마어마한 설산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본 알프스라고 하는 육중한 산맥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해질무렵, 우리는 깊은 산속에 자리한 포사마그나 박물관에 도착했다. 스가와라상이 여러 차례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바로 그 Fossa Magna Great Rift 거대한 틈, 균열. 바로 동일본과 서일본의 지질학적 경계이다. 포사마그나 박물관에는 예상대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시실에는 포사마그나에서 가져온 다양한 암석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특히 일본의 국석인 옥 Jade를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구부러진 모양의 곡옥이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었다. 포사마그나의 생성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그래픽 영상은 과학 매거진 뉴턴을 영상으로 보는 것 처럼 명료하고 깔끔했다. 박물관 마지막 코스인 기념품샵에서 곡옥을 하나 살까 해서 살며시 드려다 봤다. 새끼 손톱만한 곡옥이 35만원이라 다음을 기약했다. 밖으로 나오는 길에 박물관 외벽의 로고가 다시 한번 눈에 띄었가. 딱 포사마그나였다.
니가타 대설주의보
날은 점점 어두워져갔다.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고속도로의 차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스가와라상이 날씨 뉴스를 검색했는데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한달전 이곳에 역대급으로 눈이 많이 와서 천대가 넘는 차량이 눈에 묻혀 도로에 갇히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초긴장한 상태로 눈속을 달렸다. 그런데 저 앞에서 차를 멈추라는 표시등을 들고 있는 일본 공무원의 모습이 보였다.
고속도로 폐쇄
그는 우리 자동차의 타이어를 보더니 스노우 타이어가 아니라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했다. 일반 타이어로는 절대 고속도로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헉! 우리는 30분 거리의 나가노 호텔에 숙박을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그럼 숙소는 날라가는거고…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자야하지? 휴게소에서 자야하나? 언제까지 여기에 갇혀있어야 하는거지? 다들 패닉이었다. 하지만 구글 번역기와 친절한 공무원의 도움으로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로 가면 나가노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무원에게 인사를 열번 넘게 하고 18번 일반도로를 타고 나가노로 향했다. 도로 옆 눈은 1미터 넘게 쌓여있었지만 우리가 달리는 도로는 깨끗했다. 이미 제설차가 눈을 다 치우고 간 것 같았다. 이들에겐 이런 눈은 일상인 것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우리는 날씨 좋은 나가노에서 늦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제철차차야
오뤼자상은 나가노의 진짜배기 로컬 맛집 슌사이차차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메뉴판의 모든 메뉴를 다 시키고 싶었지만 모둠 사시미, 후라이드치킨, 텐뿌라, 그리고 청어 구이를 시켰다. 운전수를 제외한 사람들은 산토리 프리이엄 몰트 라지를 시켰는데 한잔이 1리터 정도였다.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인심 좋은 식당 주인으로 나올 것 같은 직원은 청어가 큰데 괜찮겠냐고 했다. 우리는 배가 고파서 괜찮다고 하니 잠시 후 청어를 직접 들고 와서 보여줬다. 이정도 크기 괜찮겠냐고. 우리는 또 괜찮다고 했다. 모둠 회가 나왔다. 어떤 생선인지 하나 하나 설명해주고 싶은 직원은 생선 도감을 들고 와서 생선 종류를 알려주었다. 사요리가 학꽁치라는 것을 알고 나는 직원에게 사요리가 한국어로는 “꽁치”라고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직원은 “곤치!”라고 하며 매우 즐거워했다. 엄청난 식사를 마친 후 고급 로야루호텔에서 노천탕까지 즐겼다. 다다미방에 누워 규슈에서부터 주부까지의 여정을 생각해본다.
내일은 혼슈의 끝, 아오모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