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챗GPT 때문에 내가 곧 잘리겠어.
‘잡다한 Ai 연구소’는 이 작은 질문 하나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기자’라는 직함에 따라붙는 거국적인 이미지보다 다분히 생활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이 질문. 농담처럼 주고받기에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합니다. 신입 기자든, 10년 차 안팎의 경력이 있는 기자들이든 챗GPT 등 업무를 할 때 AI를 활용하는 정도가 그 몸집을 나날이 키워 가고 있습니다. AI도 프롬프트만 잘 입력하면 웬만한 기자만큼 글도 잘 쓴다는 평가들도 많죠.
이런 걱정은 비단 언론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기자로서 일하며 만난 다양한 분야 직장인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AI가 화두에 오르지 않은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여러 AI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AI로의 대체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AI를 좋은 업무 파트너로 삼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잡다한 Ai 연구소’를 기획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AI와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하지만 막상 내 일에, 내 업무 분야에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또 어떤 분야를 믿고 맡길지, 어떤 분야는 되도록 사용을 지양하는 것이 좋을지 구체적인 시도를 해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밤낮없이 쏟아지는 업무를 해내는 것만으로도 숨 가쁜 것이 대부분의 직장인이니까요. 그래서 호기심 많고 오지랖 넓은 기자 8명이 모여 여러 직업군에서의 AI 활용 가능성을 다 같이 점검해 보았습니다.
지난 몇 개월간 기자를 시작으로 변호사, MD, 작가, 여론조사, 개발자부터 결혼정보회사 매칭 매니저, 점성술사, 상담가 등 비교적 대체 가능성이 적다고 여겨지는 직업군까지 폭넓게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협업의 방향성과 AI의 작동 범위는 제각기 달랐지만, 적어도 큰 틀에서의 결론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직업이든, 어떤 업무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직관과 상상력, 그리고 타인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위하는 마음만은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직관과 이른바 ‘촉’, 생각보다 대단하고 예민해서 나날이 발전하는 AI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큰 간극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자의 경우를 볼까요. 흔히 기자들이 보도자료를 ‘베껴 쓴다’고 말하지만, 기자가 직접 작성한 기사와 AI의 결과물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AI가 임의로 특정 부분을 과도하게 강조하거나 보도자료에 없는 다른 내용을 덧붙이거나, 핵심이 아닌 내용을 부각하기도 하고 말이죠. AI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기사를 써달라고 ‘청부’하는 일은 더욱 고됩니다. 사실이 아닌 정보가 사실처럼 섞여 들어가 있고, AI가 가치판단을 하는 도구는 아니니 기자들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도 담기지 않거든요.
가장 흥미로웠던 직업 중 하나는 결혼정보회사 매칭 매니저였습니다. 일부 회사에서는 매칭 성공률을 부각하기 위해 AI 활용을 적극 홍보하기도 하는데요. 결혼정보회사는 회원들의 재산, 직업, 이상형 등 정량적인 정보를 통해 매칭하는 시스템이라면 감정을 뺀 AI가 가장 ‘자신 있어할’ 부분이겠죠. 그런데 실제 커플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결혼까지 성사되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건 의외로 정량적인 조건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스펙’으로 환산되지 않는 인간성, 그리고 ‘느낌’. 제 3자의 눈으로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은 회원들을 매칭해 주면 조건이 완벽히 맞지 않아도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결혼까지 가는 길에서 “괜찮다”라고 다독이고 응원하는 것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흔히들 결혼정보회사는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을 배제하고 결혼을 성사시키는 곳이라고 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인간적인 시선이 개입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소설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해 전 AI가 소설과 그림, 절대 대체할 수 없다고 믿던 창작의 영역에서 훌륭한 결과물을 내놨다고 해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일이 있었죠. 인간의 감성을 건드는 소설 창작까지 AI가 가능하다면 어떤 직업도 결국 대체되고 말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나왔고요. 하지만 우리가 만난 소설가는 “AI가 내놓는 결과물은 그럴듯하지만 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글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직접 AI로 소설을 창작하면서 AI가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읽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흔히 예술의 가치는 인간의 감정을 얼마나 건드리는지에 달려있다고 하는데, AI가 창작해 낸 소설들은 논리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어딘가 2%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청예 작가는 “인간만이 가진 ‘애매모호함’이 있고, 독자의 상상력과 배경지식에 의해 해석되는 모호함에서 매력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자에게 상상과 해석을 어느 정도로 남겨둬야 하는지, 그 균형은 AI도 감히 계산을 할 수 없거든요.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AI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기우’로 단정 짓는 것은 아닙니다. AI는 인간이 오랜 시간을 투자해 어렵게 산출하는 결과물들을 빠른 시간 내 뚝딱 내놓곤 하니까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들을 AI가 다 대체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은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AI를 능숙하게 일하게 하는 것도 결국 인간이고 그 결과물의 질을 평가하고 책임지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대신 AI가 가져온 이 과도기적인 시기를 마음껏 즐기고, AI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1년 동안 총 10개의 각기 다양한 직업군을 만나고 내린 결론입니다. 그러니 우리, 위기감은 갖되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고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가장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추신> AI의 이미지 생성 능력을 볼 겸, 매 스터디를 진행할 때마다 주제의식을 담은 썸네일 그림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처음엔 자잘한 실수도 많고, 만들어낸 이미지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4번, 5번에 걸쳐 수정하곤 했었습니다. 최근엔 ‘잡다한 Ai 연구소’가 추구하는 바를 챗GPT가 어느 정도 잘 습득을 했는지 바로바로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서 참 뿌듯하더라고요. 1년간 열심히 함께 스터디에 참여해 준 모든 멤버들, 그리고 알음알음 섭외한 연사들도 많았지만 일면식도 없는 기자의 강의 요청을 단박에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준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