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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호 Feb 13. 2024

불가항력

#좋은샘의 수업 성찰일기 1

#좋은샘

#수업성찰일기

#코로나19


3월 2일

3월 2일 월요일 3월 2일 첫날 교실은 텅 비었다.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멈춰 세웠다. 확진자가 다녀간 식당, 카페, 공장, 응급실. 심지어 사스(2002), 메르스(2015) 때도 멈춰 서지 않았던 학교도 멈췄다. 자고 일어나면 확진자 수가 몇백 명씩 늘어나 있었다. 정 부와 의료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 다. 사망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심 끝에 유은혜 교육부 장관 은 3월 23일로 3주 개학을 연기했다. 학교는 혼란에 빠졌다. 미리 짜놓았던 학사 일정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해졌다. 경력이 많은 선배 교사도, 학교 관리자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도 수업 성찰 일기를 써야 하는데 굉장히 당혹스럽다. 학교에 아이들이 없고 수업도 없는 데 수업 성찰 일기를 쓰자니 막막하다.


개학해서 아이들로 북적이고 시끄러워야 할 교실이 조용하다. 운동장도 조용 하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교사와 아이들이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고, 서로를 파악하기 위한 탐색전을 벌이는 그런 일상적인 개학 첫날의 풍경을 올해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은 아이들이 없는 교실을 혼자 지킨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서 먼지가 앉은 교실 이곳저곳을 쓸고 닦았다. 책상 줄을 맞추고 아이들 이름이 적 혀있는 환영 문구를 크게 뽑아 교실 뒤 게시판에 붙였다. 교실을 정리하는 내내 뭔 가 허전했다. 교사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왜 허전한 마음이 밀려오 좋은샘의 수업 성찰 일기 1 불가항력 박승호 는 것일까? 교사란 어떤 존재일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2년 동 안 학교를 떠나있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복직을 준비했는데 교실에 아이들이 없는 이런 상황이 마음을 어렵게 한다.

  

2008년에 2학년을 맡았다. 지호(가명)라는 아이를 만났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당시 교직 경력 4년 차에 밖에 되지 않은 초임 교사였기 에 이런 아이를 지도한다는 것은 버거웠다. ADHD가 뭔지도 몰랐던 나로서는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 지호는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유 없이 연필심으로 친 구들을 찌르거나 책상을 던졌다.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제압하는 나에게 “죽어 버릴 거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 순 간은 아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진짜 죽으면 어쩌지?’하는 섬 뜩한 기분이 들었다. 지호를 지도하느라 나머지 삼십여 명의 아이들이 방치되었 다. 교사로서 무기력했다. 동료 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혀를 내두르고 물러 섰다. 오히려 나머지 아이들이 교사를 위로하고 격려해주었다. 그저 지호가 오늘 도 무사히 넘어가 주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 버텼던 것 같다. 지호는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존재였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지금 다시 그 아 이를 만난다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 해에 그 아이를 맡았던 선생 님도 굉장히 힘들어하셨다. 그러다가 아이의 부모가 결국 시골에 가서 아이와 시 간을 많이 보내야겠다면서 전학을 가게 되면서 지호에 대한 소식은 더는 들을 수 없었다.


 2014년 4학년을 맡았다. 2008년에 만났던 지호와 비슷한 동건(가명)이라는 아이 를 만났다. 동건이는 정식으로 ADHD 판정을 받지는 않았었다. 과거의 경험이 있 어 이번에는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동건이는 하루에 한 번 이 상은 분노를 폭발시켰다. 자신의 분을 주체할 수 없어서 아이들을 때렸다. 책상 을 밀치고, 소리를 질렀다. 분을 내는 순간에 동건이의 눈빛은 살기로 가득 차 있 었다. 손을 잡고 한참을 실랑이를 벌여야만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흥분을 가라앉힌 후에 아이에게 물어보면 온갖 억울함과 친구에 대한 비난을 쏟아놓았 다. “제발 그만 좀 하자. 선생님이 너의 그런 행동 때문에 너무 힘들다.”라고 수십번이야기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시 아이는 엄마의 직장 문제로 엄마와 떨어져 지 내야 했고, 아빠는 엄하셔서 자주 집에서 혼난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번 부모님 을 불러서 함께 아이를 돕기 위해 상담을 했었다. 상담도 크게 소용이 없었다. 쉬 는 시간에 교무실에서 잠깐 커피를 타고 있으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달려와서 “선 생님, 동건이가 또 친구를 때렸어요”라고 알려왔다. 그러면 커피 타다 말고 교실 로 달려가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수업 시간에도 갑자기 뒤에 있는 친구가 자 신을 이유 없이 욕했다면서 싸우기도 했다. 나에게 동건이는 6년 전에 만났던 지 호와 마찬가지로 불가항력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전이 있다. 2년 후 6 학년이 된 동건이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나에게 미안하 다고 했다. 다른 어떤 학생보다 의젓한 학생이 되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동건 이가 수업 시간에 얼마나 차분하고 열심인지 모른다면서 칭찬하셨다. 이게 어떻 게 된 일인가?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좀 더 알아보니 이듬해에 직장 때 문에 떨어져 지내던 엄마가 다시 돌아오셨고, 아빠가 육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 나면서부터는 조금씩 아이가 안정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두 아이를 경험하면서 교사로서 많이 무너졌었다. 교사를 계속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계속해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교사란 어떤 존재일까?’ 이 질문과 마주할 때면 한없이 초라해졌다. 한동안 이 고민을 놓 고 치열하게 고민했었던 것 같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아이가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1년 혹은 그 이상 함께 그 길을 걸어가 주는 게 교사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친구 관계로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고, 공부가 힘들어할 때 옆에 서 말없이 힘이 되어주는 게 교사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무너졌던 곳에서 존재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되었다.


3월 2일. 개학 첫날이어야 하는 오늘, 학교는 조용하다. 두 아이와 만났을 때의 경험과는 약간 다르지만 다시 이 질문이 떠오른다. ‘교사란 어떤 존재일까?’ 감염 병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고, 대다수 국민이 불확실한 상황 앞에서 두려워하는 이 시점에 교사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학교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개학연기에 따른 가정 학습 운영 계획을 세웠다. 어떤 학교는 온라인으로 개학을 하고 아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4차 산 업 혁명과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서 교사는 어떤 존재로서 살아야 할까? 아마도 코로나19가 앞으로의 학교 풍경을 많이 바꿔 놓을 것 같다. 4차 산업 혁명과 맞물 려 교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 같은 시간에 등교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기존의 시 간 개념들의 변화가 가속화될 것 같다. 이찬승 대표가 최근 2030년 학교 교육에 관 해서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사는 이제 교단의 현자 자리에서 내려와 학생의 곁으로 가 함께 배우는 관계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이 텅 빈 교실에 앉아 서 언제 올지 모르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나에게 울림 있게 다가온다.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두 아이를 만났던 경험 그리고 한국 전쟁 당시에도 피난길에 천막 학교로 이어지면서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던 학교가 코로나19라는 예측할 수 없는 감염병 때문에 멈춰버린 이 상황 앞에서 잠잠히 교사 존재에 대해 다시 묻게 된다. 올 한해 나에게 또 어떤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생길까? 그때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혼자 한없이 초라해져서 교사를 그만둬야 하는 고민을 하 게 되지 않을까? 이찬승 대표의 말처럼 현자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늘 학생 곁에서 삶으로 가르치는 교사로 존재 이유를 설정하고 교단에 버티고 있는 삶을 살아간 다면 그 불가항력적인 상황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3월 2일 오늘,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서 시끄럽게 떠드는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성찰질문

1. 선생님이 교사로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힘들었던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나 학생이 있으셨나요?
2. 선생님은 교사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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