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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호 Feb 18. 2024

만우절인 오늘, 아이들이 보고 싶다

#좋은샘의 수업성찰일기 3

#코로나19

#2020년 4월

#좋은샘의 수업성찰일기


4월 1일 수요일

만우절 같은 날들의 연속이다. 4월 1일에 재택근무라니? 어제 학교로 출근하기 위해 목적지에 근무하는 학교 이름을 적고 출장을 달았다. 너무 웃픈 상황이다. 근무하는 학교로 출장을 가다니? 코로나19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바 꿔 놓았다. 수업 시간에 졸거나 떠드는 학생, 지각하는 학생, 말 대답하는 학생, 복 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전력 질주하는 학생을 볼 수 없다.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학교 가는 것이 당연했던 평범한 학교의 일상이 그립다. 텅 빈 교실에서 빈 책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오늘따라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 아직 오프라 인으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이들인데도….

갑자기 연애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 여자 친구를 한 번이 라도 더 보기 위해 했던 수많은 노력이 새삼 떠오른다. 무작정 보고 싶어서 연락도 하지 않고 집 앞에 찾아갔다가 화장을 지웠다며 혼났던 기억. 여자 친구가 카페에 서 친구와 만나고 있을 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는 척하면서 꽃다발을 핑계로 한 번이라도 얼굴을 더 보고 싶어 애썼던 기억. 그땐 왜 그리도 보고 싶었을까? 조금 은 무모했던 그때의 행동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랑의 힘이 아니고서는.

오늘따라 왜 이리 아이들이 보고 싶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생각의 끝에 한 단어가 떠오른다. 사랑이다. 연애 시절의 사랑과는 좀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다. 이 사랑을 예수의 사랑과 감히 비교해 본다. 부활 후에 십자 가 사건으로 자신을 부인하거나 떠났던 제자들을 보기 위해 갈릴리로 직접 찾아갔던 그 사랑. 지난주 온라인 가정 방문을 하면서 집안 사정을 알게 된 아이의 얼 굴이 떠오른다. 맞벌이로 부모님이 모두 집을 비워야 해서 형과 함께 집을 지키고 있을 우리 반 철수(가명)가 보고 싶다. 뭘 하고 있을까? 점심은 잘 먹었을까? 걱정과 궁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제 며칠 후면 온라인 개학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온라인 개학을 위해 연 일 연수 프로그램과 운영 기준들을 쏟아내고 있다. 전시를 방불케 할 만큼 시시각 각 변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초등학교 3학 년밖에 되지 않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과 장비가 좋을까? 수업에 대한 고민이 몰려온다. 3월 초부터 많은 선생님이 온라인 수업에 대한 다양한 Tip과 교육 자료를 만들었다. 자 발적으로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영상을 찍어 올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코 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수많은 의료인이 자발적으로 대구·경북 지역으로 몰려 갔던 것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교육의 문제는, 우리 아이들의 문제는 교사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일 것이다. 이런 마음이 사랑의 마음 아닐까? 그렇다만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온라인 공간을 통해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지난주 온라인 가정 방문으로 만났던 아이 들과 부모님들을 떠올려 본다. ZOOM 앱을 이용해서 온라인으로 만났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밝은 얼굴이었다. 모두가 힘든 이 시기를 각자의 방법으로 슬기롭게 견뎌내고 있었다. 비록 제한된 화상 공간을 통해 만났지만 한 집 한 집 방문하면서 교사와 가정이 연결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너무 반갑습니다.”
“어머님께서 아이들 밥 챙겨주시고, 공부도 봐주시느라 고생이 너무 많으신 죠?”
“좀 힘들긴 하지만, 저희만 힘든가요? 모두가 힘든데 잘 버텨야죠.”


잠깐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이는 처음 보는 선생님 얼굴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지 몸을 배배 꼬면서도 눈으로는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희(가명)야,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니?”
“네…, 아침에 9시쯤 일어나서 e학습터 좀 하다가, 과제하고… 음… 집 앞에 나 가서 옆집 친구랑 잠깐 놀아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어떤 아이들은 엄마 얼굴을 쳐다보며 부 끄러워서인지 말을 하지 못해 결국 엄마가 대신 말해주기도 했다. 온라인 가정 방 문을 하다 보니 부모님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저희 아이가 요즘 학교에 너무 가고 싶어 해요. 예전엔 한 번도 학교 가고 싶다 고 한 적이 없던 아이였는데 친구들도, 선생님도 보고 싶은가 봐요. 컴퓨터로 수 업하는 것도 지겹고 힘들데요.”
 “하하하, 교사인 저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의 건강 때문에 당분간은 학교에 나 올 수는 없지만, 최대한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친구들도 만나고, 수업도 할 수 있 는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가족 모두의 건강을 바라는 인사로 방문을 마쳤다. 방문을 마치 면서 따뜻한 여운이 남았다. 교사와 학생, 부모님이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온라인 개학

​온라인 가정 방문을 통해 만난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막연했던 온라인 수업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반 아이들은 스스로 스마트 기기를 조작하는 걸 힘들어했다. e학습터의 학습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다. 컴퓨터로 EBS 라이브 특강을 듣는 것을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다만 3월 한 달 동안 주기적으로 수학 학습지를 내주었는데 그것만큼은 대부분 재미있 게 풀었다. 장비가 부족한 가정도 몇 가정 있었다. 이렇게 학생들의 상황을 좀 정 리하고 나니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온라인 개학 전에 아이들이 스마트 기기 조작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그룹별로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라이브 수업을 진행하기보다는 교과서를 활용해서 아이들이 오프라인에서 학습하는 듯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겠다. 학생들이 공부할 만한 자료를 프린트해서 오프라인으로 나눠줄 방법도 고민해 봐야겠다. 출석은 꼭 아이들과 연결됨을 느낄 수 있도록 얼굴을 볼 수 있는 ZOOM 앱을 활용해서 아침 조회로 만나야겠다.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다.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지, 학습에 대한 피드백은 어떻게 받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학년 선생님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만들어가면 될 것 같다.

텅 빈 교실

텅 빈 교실에서 4월 1일 만우절 날, 만우절과 같은 상황을 만난 오늘 아이들이 보고 싶다. 혹여나 오늘도 집에서 혼자 방치된 아이는 없는지? 앞으로 온라인 개 학을 한다는데 장비가 없거나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지 몰라서 막막한 가정은 없는 지? 학습이 느린 아이가 온라인 학습을 통해 소외되진 않을지? 걱정이다. 유홍 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썼던 말이 생각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비록 조작이 서툴고 느리지만 준 비하는 과정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다면 그 마음이 온라인 공간을 통 해서도 아이들에게 전해지리라 생각된다.

5월엔 아이들과 교실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수업할 수 있게 되기를….

성찰질문
1. 선생님은 만나지 못한 반 아이들이 보고 싶으신가요?
2. 선생님은 온라인 수업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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