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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ST Jul 31. 2021

영혼이 있는 승부

안철수 지지자는 아니다, 제목만 빌려 옴

살다 보면 악인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더러 보게 된다.


회사에서 성질머리 더럽고 타인을 이용하는 자가 승승장구하고,


성질 나쁜 남친때문에 싸움과 불평불만을 계속하면서도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법망의 틈새를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부를 축적하는 수많은 사례


그리고 착함을 연기했던 사람들이 그 위선의 치부를 드러냈을 때의


어떤 일반적인 감정 이상의 실망감.




분명히 부모와 학교는 선하게, 타인과 융화하고 살아가라 가르치지만


우리의 사회, 아니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그저 인간관계만 보더라도 그렇다.




오히려 선하게, 지켜야 할 룰을 모두 지키고 살아갔을 때


한번 삐끗해서 나의 어떤 기준들이 꺾이고 무너진다면,


내 주위 사람들, 타인, 지인, 친구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에 대하여


엄청나게 실망을 주게 되지 않을까?




애초에 악하게, 꼭 나쁘지 않더라도 그냥 그렇게 원래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살아간다면 없었을 문제들을,


쓸데없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두터운 기준들로


막아서고 있는 것이 아닐까?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이 부분에 대한 정립이 어려웠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라면,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정글과 약육강식 그 자체이더라도


스스로의 신념이 강하다면 가치관이 흔들리는 일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예로 들자면, (교회는 군대에서밖에 가보지 않았다) 


어차피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일종의 심판을 받게 된다.




천국 / 지옥, 권선징악, 신자와 불신자에 따라서 나뉘는 단순한 결과


단순한 신념으로 단순 명쾌한 가치관을 가지고, 그들은 경쾌하게 살아가게 된다.




나 같은 무신론자의 경우는 어떤가?


어릴 적 부모, 학교가 주었던 가르침에는 동의를 하지 못한 지 오래이며,


어릴 적 나를 사랑으로 길러주셨던 조부모님이 돌아가시며 인간적으로 의지할 곳을 잃었고,


종교를 믿지 않기에 그분들이 사후세계의 어딘가에서 나를 살펴보고 있을 것이라는


어떤 상상으로 스스로를 북돋지도 못한다.


결국 나는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스스로의 철학과 판단으로, 종교가 없다면 종교에 준하는


종교의 창시자들과 같은 존재가 스스로 되어야 한다.



어쩌면 세상이라는 것이 비겁한지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이 세상 속에서 나의 존재를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타인이 아닌 오직 나, 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에...


결국 나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파편이며, 그들은 타인을 이해한다고 지레짐작할 뿐이다


결국 세상의 비겁함, 이기심, 약육강식, 


타인을 이용하는 방식, 타인을 이용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필요 없는 보험을 파는 것, 필요 없는 어장을 치는 것,


그런 것들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전혀 모른다. 사실은 관심조차 없다.


적어도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스스로를 챙기기 바쁘다 - 어떻게든 살아남아, 나의 생존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기 위하여.


- 변하지 않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이 그렇다고 하여


실망만 하고 있어야 할까?


이런 현실에 대한 대응방식을 몇 가지 생각해보았다.




방식 1. 다른 존재보다 내가 우월한 점을 생각해보기


어제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나갔다가,


바닥에 파르르 떨며 죽어가는 매미를 보았다.


매미가 몇 년인가를 지하에서 보내던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매미를 보면서 한 생명의 죽음을 무심하게 응시하는


거대한 인간이라는 내가 있었다.


심지어 꽤 감상적으로 매미의 죽음을 지켜보다가도,


인스타그램에 찍어 올리고 싶다는 내 안의 냉혈함 / 무심한듯한 잔인성이 있었다.


나는 매미보다 오래 산다. 나는 매미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매미의 죽음에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확장해본다면,


내가 더 큰 부와 권력을 가지고,


더 아름답고 멋진 외모를 가지고,


사람들의 우위에 설 수 있다면


이런 문제들은 해결된다.


적어도, 상대적인 우위에 서서


끊임없이 나와 '끕이 낮은' 타인들을 비교한다면


나의 멘탈을 수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방식 2. 실망하지 않는 힘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에 관심이 없이 모두가 이기적으로 활동하는 세상이라면


타인에 관심 가질 것 없이 내 내면의 힘을 단단히 하면 되지 않을까?


끊임없이 세상에 실망하는 것이 문제라면,


실망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왈츠처럼 경쾌하게 살아가는 법을 연마하는 것


그것 역시도 필요하다.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며, 실수도 엄청나게 할 것이다.


그만큼 타인들 역시 실수를 범하게 되고,


어떤 도덕적인 일괄적인 판단으로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재단하는 것 역시


극심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그저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는 단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 나 자신


유일하게 바꿀 수 있고,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죽음 직전까지도 나와 함께하는 것


그것은 의식 / 무의식이라는 나의 자아이다.




철학이 없는 자는 철학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기록을 통해서 다른 선배들이 이 문제에 고민해둔 기록이 있고,


또한 수많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승리와 패배를 기록해두기도 했다.


실망하지 않되, 겸손해져야 한다.


모든 것이 완성된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실망하게 된다.


더 이상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나와 타인들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불완전한 만큼 더욱 완전해지려 노력해볼 여지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비범함을 모두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순서 상 방식 1은 나쁘고, 피지컬하고, 현실적이고


방식 2는 이상적이고, 사변적인 대응으로 서술이 되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극단적으로 단순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무게중심을 두고, 실제 사례에서는 유연하게 대응해나갈 뿐.




나의 경우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INFP라는 나의 저주가 있어


방식 2에 더 공감이 가게 된다.




나의 승리는,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승리여야 한다


비겁과, 사람들의 내 야심에 대한 비웃음까지 


더욱 강한 내면으로 거듭난 내가 보기 좋게 한방 먹이고


내 진짜 친구들과 샴페인을 터뜨리고, 터진 샴페인의 거품이 패브릭 소파를 더럽히는


범죄영화에서 완전범죄를 성공했을 때, 최종에 느끼는 환희


결말에 가서 사람들이 찝찝하지 않고


기분 좋게 인정하고 박수칠 수 있는 결말


그런 결말이 되고 싶다.




비인간성이 난무하는 시대에 누구보다 더 뜨겁게 인간성을 과시하고 싶다.


낯 뜨거운 말들에 진심으로 때로 공감하고 감정적이고 싶다.


실망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세상에는 일어난다.


나는 누구보다 충실한 내면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더운 새벽에 눈떠져 이 글을 쓴다.



(2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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