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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ST Jun 27. 2021

비 오는날, 나의 3가지 기억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날씨에 얽힌 가장 행복했던 3가지 기억들

나는 비가 싫다.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 중 진지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100%로 비 오는 날씨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축축하고, 어둡고, 집돌이 집순이를 양산하는 날씨.


머나먼 옛날 옛적이면 기우제까지 지내가며 비를 기원했겠지마는,


성인이 된 나에게 어느 순간 비는, 


특히나 황금 같은 휴일에 내리는 비는 나를 막는 장막 같이 느껴진다.


날씨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나에게는 비와 한겨울의 맹추위만큼 서운한 것이 없다.


'왜 나는 1년 내내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미국 서부나 지중해에 태어나지 못했는가...'


여름 장마철마다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집 앞에서, 외국인 도촬



그리고 비 오는 날의 루틴으로서, 나트륨 가득한 빨간 국물을 식사로 하고, 


편의점에 어슬렁어슬렁 가서 평소 사지도 않던 작은 사이즈 위스키도 사보고,


집에 와서는 불도 안 킨 채로, 음악도 틀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멀뚱멀뚱 보는 내가 있다.


다운되는 기분 덕에 바닥에 점점 가라앉아 흡수되어가는 나를 느낀다





내가 느끼는 이 비 오는 날씨의 외로움과, 뜬금없는 우울은 인류 보편적인 것인가.


아니면 나라는 사람의 자의식 과잉일까?


문득 비 오는 날의 이 암울한 기분에 지지 않기 위해서, 


비 오는 날의 기억들에 뭔가 추억할 것들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1. 92년 초여름, 수원시 매탄동



92년인지 93년인지는 모르겠다. 


당시에는 산성비가 굉장한 사회문제였다.


산성비를 맞고 훼손된 고대 유적들과


인체에 맞으면 병에 걸린다는 이미지...


마치 현재의 '방사능' 정도의 위험으로 어린 나에게는 각인되어 있었다.


2021년 현재 산성비를 위험하다 하는 사람들은 없다. 문제들은 더 큰 문제들로 덮어지기 때문에.



학교 오전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6월 정도의 초여름에 비가 거세게 내렸다.


지금은 매탄동 래미안이 되어있는 그 시절의 주공아파트 골목에서


나와 이제는 누구였는지, 심지어는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내 하교 파트너는


우산을 집어던지고 비를 맞으며 놀았다.


아마도 처음 비를 그렇게 맞아보고, 물장구도 쳐봤던 거 같다.


유치원 때는 할머니와 늘 함께였지만,


초등학생 (사실 당시는 국민학생) 이 된 것만으로 나에게는 매일 오후의 자유시간이 생겼다.


산성비 맞으면 안 돼!라는 이야기에 오히려 반발심이 생겼던 것일까?


그날 나는 비를 그렇게까지 흠뻑 맞아본 것은 처음이었고, 바람에 우산을 뒤집어본 것도 처음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를 부모님이 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같이 하교한 친구를 포함해 대다수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즐거웠던 기분은 기억이 난다.






2. 07년도 여름, 성남 15 비행단



입대해서 이등병이었는지, 일병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던 그 시절


그 여름에는 비가 많이 왔다.


활주로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을 것 같지만


비가 내리면 평소 안보이던 물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고는 했다.


태어나서 한번 실제로 본 적 없던 두꺼비들이


비만 내리면 초소에 있는 내 근처로 엉금엉금 기어 오고는 했다.



내 지인들은 잘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양서류를 질색한다.


특히 개구리 특유의 갑작스러운 점프 무브와... 미끌미끌할 것 같은 피부


그리고 어릴 적 외갓집 시골에 가면 가끔씩 보이던 로드킬 당한 개구리


고등학교 축제 때 과학동아리에서 했던 황소개구리 해부...


전부 정말로 싫었던 기억들이었고, 딱히 동물을 싫어하지 않는 나에게 양서류는 정말로 싫은 것 중 하나였다.



두꺼비는 달랐다.


군대에 가서 그들과 지내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두꺼비들은 느렸다. 개구리처럼 촐싹대지 않았다.


비 오는 날에 처마 밑에서 보초를 서고 있으면,


마치 군견이라도 된 것처럼 내 옆에 어슬렁어슬렁 와서 가만히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나도 딱히 위해를 끼치지 않았고, 두꺼비도 별생각 없이 나와 같은 방향을 보며 말없이 있었다.


(사실 두꺼비와 인간은 대화를 원래 나눌 수가 없다.)


아무튼... 의외로 그 여름 비 오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두꺼비들과 나의 유대는 깊어져만 갔는데,


나중에는 비 올 때 두꺼비가 없으면 조금 적적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제 갓 입대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군생활은


대부분을 그냥 시간을 죽이듯이, 버리듯이 멍 때리는 수밖에 없었다.


소득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루가 가고... 그렇게 해도 제대까지는 2년 가까이 남았던 그때


오른쪽 어깨에 M-16을 메고 있던 내 옆에 두꺼비들이 말없이 동무가 되어주었다.


너희들은 양서류이지만 내 친구다.



장갑차 소대에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장갑차에 두꺼비들이 깔려 죽은 적도 있었는데,


언젠가 나와 내 맞후임은 깔려 죽은 두꺼비의 시신을 거두어 활주로 옆 잔디밭에 묻어준 적도 있었다.



그 맞후임과 어제 근 10년 만에 만나 신사에서 술을 마셨다.


느끼한 연어 안주를 먹자하니 갑자기 담배가 당겼다.


일행 중 한 명을 꼬셔 1층으로 내려가 담배를 피자니 맞후임이 말했다. 


너 군대 때도 담배 안 피지 않았냐?


나는 작년부터 전자담배를 피운다.







3. 20년 8월, 종로구 혜화



어떤 날인지는 모른다. 비 오는 날, 바이러스 재유행으로 딱히 어디 돌아다니기도 애매한 장마철의 주말


나는 단팥빵이라도 사 먹을 생각으로 편의점으로 향했고,


평소라면 그냥 '봉투에 담아주세요' 말고 아무 말 없이 금액을 결제했을 카운터에서


우연히 일회용 전자담배를 사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담배 자체를 싫어해본 적은 없었다.


담배보다는 연기가 싫었다. 가끔 술김에 친구 담배를 뺏어 피워도 속으로 기침을 삼키곤 했다.


전자담배는 연기가 없기 때문일까? 그냥 피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취방에 돌아와도 아무도 없이 어둡게 비 내리는 창밖만이 있어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 때문에


그냥 안 하던 짓이라도 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다는 충동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빌라 현관 밑에서


포장을 뜯어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웁 하고 들이마시고 심호흡해서 머금은 다음


밖으로 내뱉는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담배에서 만들어진 수증기가 공기로 퍼져나간다.


비 오는 날씨에 비들이 빈 공간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일까?


생각보다도 증기의 크기가 거대하다.


몸에 흡수되는 니코틴의 효용보다는, 


연기를 만들어내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약 1년이 지나고,


나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끊을 수 있다'하면서 주기적으로 편의점에 가면 전자담배를 사고 있고...


원하는 맛 재고가 떨어질 거 같으면 사재기를 하기도 하니


인생은 정말 모를 일이다. 어디 가서 뒤늦게 담배를 배운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딱히 작년 그 어느 날처럼 내리는 비를 보면서 증기를 내뿜는 것이 재미있지는 않지만,


이거라도 없으면 되려 더 공허한 기분이 될까 싶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배운 지 1년 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202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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