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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ST Jun 21. 2021

4명에서 8명으로

백신접종,4인 제약해제, 코로나 이전의 세상에 대한 그리움

어느 순간부터 주말마다 매일 모이는 친구들이 생겼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세계


4명 제한이면 이놈의 바이러스의 전염력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하니 문돌이로서는 닥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4라는 숫자는 오묘하다.


동양권에서는 금기시하는 4라는 숫자


그 안에는 인간관계의 최소한이 포함되어 있다.



아들 딸 하나씩 4인 가족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구구단 2x2= 4


커플 둘이 모여서 더블데이트 4




만약 3명 제한이었다면,


혹은 5명 제한이었다면?


뭐 나쁠 것 없겠지만, 왠지 짝수에 대한 강박으로 그럴 거면 한 6명 제한하지 하고 내심 생각했을지도.



짝수에는 안정감이 있다.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구구단은 2단과 5단이었다 - 쉬워서.




고맙게도 어느 순간 일요일을 자주 함께하는 친구들과 보내면서


딱히 약속이 없어도 급으로 모일 수 있는 어떤 안정감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롭게 뭔가 모이려면 늘 4라는 숫자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거의 9개월 정도의 1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면서


내심 나는 자주 보지 못한 친구들과 사람들을 조금은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지극히 개인적인 편인 나에게도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어떤 청승이 생겨난 것일까?


아니면 나는 이렇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데 서툰 사람이 되어


4명이라는 핑계로 어떤 안정을 취한 것은 아닐까?


나이듦을 생각한다.





주말 강릉에 갔다. 


강원도는 서울보다 조금 먼저 4인 제한과 10시 제한이 풀려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정확한 정보는 모른다)


도착해서 어느 아파트 단지 내 소박하게 있는 상가에 횟감을 사러 가보니,


편의점과 가게 앞에 놓인 원형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삼삼오오... 3355


1년여 만에 낯설어진 숫자 3과 5


홀수여도 괜찮다 - 우리에게는 그런 자유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 무언가 짓눌린 것처럼


3이면 1을 추가해야 할 거 같은 강박이 있었고


정치인들이 골방에서 5명이 모였을 때도 바보같이 4명을 우직하게 지키는 소시민의 내가 있었다.


현실적이고, 실리적이고, 심지어 효과도 있었던 조치라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지...




죽어가는 생명도 중요하고, 살아있는 생명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무엇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희생 없이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을 알기에.



지난주 얀센 백신을 맞았다. 백신을 접종한다는 것을 '맞는다'라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주사에는 원초적인 공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 백신 부작용으로 죽을 확률은 비행기 추락 확률보다도 낮다.


그러므로 누군가 백신을 맞고 죽거나 부작용으로 시련을 겪는다면,


그 사람은 코로나 이후에 비행기를 타더라도 비행기가 추락할 정도로 운이 나쁜 사람이다.


그러므로 백신 맞고 죽는 정도의 운을 내가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운명이다. 자연사이다... 라는 무논리.


그런 논리로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던 나였지만


막상 접종 당일이 다가오면서 온갖 유사과학과... 뜬소문과... 유튜브를 탐독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다행히 나와 내 지인들은 부작용을 겪은 사람은 없었지만,


대개는 백신의 '작용' 자체가 대부분 고통스러웠다는 점에 공감했다.




인류가 이전에 겪어본 적 없는 재난에 맞서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백신을 개발하고,


임상을 최소화하여 일반에 접종한다.


행정적으로는 백신접종자의 숫자만이 중요하고,


돈깨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은 행여 부작용을 겪더라도 수습해 줄 의료진이 있겠지만,


당장 백신 접종 당일 조기 퇴근하여 자취방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나에게


나 이외에 나를 수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망상 반 진심 반으로 만일을 위해 방청소를 하고, 면도를 깔끔히 했다.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큰 통증이랄 것이 없었지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10시간 정도 이후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경험했다.


약하게 이 질병을 직접 앓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친구들


백신의 접종도 중요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자신의 의지와 용기로 백신을 맞고


자신의 신체로 코로나와 싸워 이겨내는 개개인이 있다.


또 이러한 백신을 만들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과 인류의 진취성이 있다.


이런 개개인들의 싸움이 인류 전체의 승리로 귀결된다는 스토리텔링


거기에는 낭만이 있다. 인간성에 대한 찬사가 있다. "우리는 길을 찾아낼 것이다" 



얼마 전 개막한 유로 2020에서 헝가리 v 프랑스의 경기를 봤다.


부다페스트에 있는 헝가리의 홈구장, 푸스카스 아레나에는


수용인원 max인 6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운집했다고 한다.


2020년 이후로 해외축구를 봐왔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멀쩡히 진행되던 국가별 리그가 중단되어 언제 재개될지 모른다는 먹먹함을 느끼고,


재개된 이후에도 텅 빈 구장에서, 어떤 방송에서는 인위적인 관중의 함성소리를 합성하여 송출하던,


심지어 챔피언스리그 결승마저도 맥 빠졌던 1년간.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백신 접종의 속도가 빠른 유럽에


운동장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운 냄새를 맡았다.


모든 것은 돌아올까? 돌아갈 수 있을까?



마스크 없이 한강에 모여 노을을 보는 사람들과


주말에 클럽에 가면 가득 차 있던 취한 사람들과


지하철 좌석 건너편에서 이상형을 보고 느꼈던 기분


코로나로 오히려 자주 뵙지 않게 된 시골의 외할머니와 할아버지


예전에는 지겹다고 느낄 때도 있었던 제사와 가족모임


결핍되었기 때문에 그립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이제는 돌아가고 싶다. 그 그리운 것들로 회귀하고 싶다. 


(202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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