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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Feb 19. 2017

한 여름의 캄보디아 이야기

7. 반 하루(half day)

버스에서 내려 친구와 작별인사를 했다.저녁에 출발할 시엠립행 표를 예매하고선 프놈펜에서 스탑오버 하는 가장 큰 이유였던 킬링필드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알 수없는 우울감과 엄숙함에 많이 위축이 되었다.

킬링필드에서는 각나라 언어로 된 책자와 오디오를 제공한다. 덕분에 자세한 정보를 보고 들으면서 킬링필드를 둘러 볼 수 있었다.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 학살로 폴포트 정권이 농민들을 위한 정치를 가장하여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프놈펜 뿐만이 아니라 캄보디아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프놈펜이 가장 규모가 크고 발견된 이후로 보존작업과 유골발굴작업이 크게 이루어져 전 세계인들에게 그 당시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은 유골이 많은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의 피해자들이 착용하던 옷과 장신구들 당시의 사형집행장  수용소등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나무 역시 학살의 도구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오디오에서 당시의 폴포트의 사상이 얼마나 저열한지 느낄 수 가 있었다. 당시 폴포트는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것보다 숨겨진 적을 살려두는 것이 더 손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폴포트 손에 죽어간 사람들의 죄목은 '손이 하얗기 때문에''안경을 썼기 때문에''시계를 착용했기 때문에'등의 말이 되지 않는 이유들이었다.

손이 하얀사람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이 하얀것이다(부유층에 해당)

시계를 착용하였다 안경을 썼다(지식인에 해당)

그래서 캄폿에서 만난 라 아저씨는 과거 자신은 선생님이었는데 자신은 선생님으로서의 보람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직업을 포기하였다고 했다 언제나 정부가 개입하여 헛된 지식을 가르치기를 강요했고 학교내에서 부당한일이 일어나도 정부에서 입단속을 했으며 아이들 역시도 교육의 의지가 없었다고 했다.

아저씨의 말로는 지금도 달라진것이 없다고 하였다.

캄보디아의 부모들 중 이 때의 충격으로 교육을 꺼리는 이들이 많으며 이 이유가 캄보디아에서 구걸을 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면 안되는 이유인 것이다. 구걸로 돈을 버는 아이들은 절대로 펜을 들지 않을것이기 때문이다.

스산한 날씨속에 킬링필드를 둘러보다 보니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때의 희생자들의 눈물같이 느껴졌다. 오디오너머로 당시 희생자들의 비명을 숨기기 위하여 틀었던 비열한 효과음들과 음악이 흘러나왔다. 문득 나는 슬퍼졌다 비단 캄보디아 뿐만이 아니라 왜 인류는 이렇게 잔인한 일들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 현장에서 나는 자연스레 중학생시절 수학여행을 갔던 서대문형무소가 생각이 났다.

폴포트는 82세까지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 사상자 중엔 2세 미만의 영아도 있었다.

현실은 늘 영화보다 더 참혹하다 영화에서는 악이 언제나 패하고 벌받지만 현실은 대부분이 악이 선에게서 행복을 앗아간다.

그는 보이스오브아메리카를 즐겨들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선 인생을 뺏었으면서 말이다

그러고선 버스시간까지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서 센트럴마켓에 들렀다. 여러가지 생필품들과 음식재료들을 팔고 있었다. 음식재료를 파는 장소에 들어섰을땐 여러가지 냄새들이 내 코를 찔러서 무서웠다.요즘은 오직 음식을 먹으러 가는 여행자들도 많은데 난 정말 그 들이 부럽다. 난 현지식에 매우 약한 편이기 때문이다 왠만하면 현지를 다양히 경험하고 싶은데 음식은 나의 약점이다.

충전할 만한 장소를 찾다가 들른 시티몰

시티몰찾는다고 센트럴마켓 근처를 삥삥돌다시피 했는데, 이 날은 여러 상황이 나에게 너무 힘들게 느껴져서 기분이 여간 우울한게 아니였다. 더군다나 도착했을땐 충전을 할만한 카페도 없어서 얼마나 서럽던지 그래도 입맛은 없었지만 꾸역꾸역 햄버거를 먹으며 핸드폰 충전을 했다. 그리고선 시티몰 내의 마켓에서 몇가지 빵과 요거트등을 구입했다. 씻지 못할것을 대비하여 껌도 샀다.

시티몰을 나와서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구글맵에서 찾은 카페를 가기로 결정했다.

꽤 먼거리에 있어서 툭툭을 타는것도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돈도 아낄겸 걸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찾아가는 길은 꽤나 어두웠고 여행객들은 전혀없고 현지인들만 있어서 무서웠다.

해가 떠있는 시간이라면 내가 내 발로 현지인들만 있는 곳을 찾아갔을테지만 해가 지고나면 여행객들이 그리워진다. 말안통하는 타지에선 어느때나 조심해야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힘들게 찾아간 가게는 마감시간이 한시간도 채 남지않아 도망치듯 음료를 마시고 충전을 하고 가게를 나섰다.


아까 낮에 나한테 사기친 툭툭기사가 데려다준 버스회사에 앉아 티비감상을 했다. 정말 짜증났지만 나한테 사기친거 보다 그 툭툭기사의 뻔뻔한 태도 때문에 더 짜증났지만 그래도 잊자하고선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여긴 불교의 국가니까...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속으로 되뇌었다. 친구들한테 메시지를 보내며 캄보디아는 정말 불교의 나라가 맞다며 나를 부처로 만드려고 하는 것같다고 했다. 물론 누군가에겐 프놈펜이 좋은 추억으로 남는 곳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모든환경이 싱크가 맞지않았다. 사기도 어느곳에서든 당할 수 있는것이고 위험한 상황은 어느 곳에서나 겪을 수 있지만

모든 여행지가 좋기만 하고 아름다울 순 없는거니까 싫은 곳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거니까 그곳이 나에겐 프놈펜이다.

문제의 슬리핑버스 아무래도 혼자였고 "위험은 남녀차별이 없어"하는 사상을 가졌다고 해도 아직까지 여자기에 위험한 상황은 존재하는거니까 잔뜩 위축되어있었다. 하필이면 승객모두가 현지인들이어서 더 긴장의 연속이었다.가뜩이나 사기를 당해 이 버스를 타게 된것이었고 이 승객모두가 한편일지도 모른다는 다소 피해망상적인 상상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뒤이어 외국인한명이 올라타서 왜인지 모를 안도감을 얻었다. 슬리핑버스는 20분가량을 달리고선 차내의 모든 조명을 꺼버렸다. 잠이오지 않았던 나는 핸드폰을 하고있었는데 창가 쪽 틈새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한 세네번까지는 나의 착각인줄 알았으나 잠시 내 가방을 정리하려 몸을 앉혔을때 밑에서 올라온 손을 보았다. 그 손을 무언가를 찾는것처럼 내 자리위를 더듬어댔다. 난 너무 놀라서 소름이 끼쳤다. 어둠속에서 그광경이 매우 기괴했기 때문이다 지옥같이 보였다.

그 손은 아무것도 만져지는 것이 없자 다시 내려갔고 나는 위험을 감지하고선 내 여권과 지갑을 더 꽁꽁 나에게 싸매었다. 다시 그러지 않겠지 하며 불안해하던 찰나 또 그 손이 올라왔다. 나는 갑자기 프놈펜에서 쌓였던 감정이 폭발했다. 평소였으면 울며겨자먹기로 아무말 못하고 참았을텐데,뜬눈으로 밤을 지새었을텐데.

핸드폰으로 라이트를 켜 밑의 층의 그 손의 주인에게 "what!!!" 을 외쳤다.

별달리 할 말은 떠올르지 않았다 그저 내가 화가 났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 손의 주인이 머리를 빼꼼하고 내밀었다 다시 한번 "what!!"이라고 하니 쑥 하곤 들어갔다. 정말 화가났다 뭐야 도대체 뭔데 내가 왜 이런상황을 겪어야 하는지 화가났다. 저사람은 분명 나에게서 무언갈 훔치고 싶었던 것일거라고 내가 여자기때문에 여행객이기 때문에 돈을 뺏기 쉬운 표적이 된 것이라고 자격지심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난 나름대로 억울했다

'당신들을 이해하려고 했잖아요 나에게 돈을 구걸하며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햇을때에도 그대들은 나보다 힘든 삶을 살아왔으니 이러는걸 이해한다고 내가 비록 돈을 줄 순없지만 이런식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하지 않을것이라고 나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바가지를 씌어도 웃으며 가격흥정을 했지 당신들이 나에게 바가지 씌운것에 대한 불만을 토하지 않았잖아요'

어쩌면 이해라는 이름으로 내 자신을 보살피지 않은것이 화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쌓인 것이  펑 하고 터져선 너무 서러웠다 그렇게 소리를 질렀어도 여전히 무서운건 무서운것이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었다. 그 이후로는 그 손이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난 그날을 기억하며 여행길에서 슬리핑버스를 탈때면 내가방을 꼭 부여잡곤 무언가 날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때면 움찔한다.이 날 반 하루의 일로써 프놈펜은 나에게 최악의 도시가 되어버리고 만것이다.

도착하기 거의 직전 한숨도 자지 않은 나를 위해 일단은 싼 도미토리를 예약하고선 잠시동안 그곳에서 쉬기로 했다.원랜 아침까지 정류장에서 기다릴 예정이었는데 말이다.

씨엠립의 새벽공기는 꽤 찼다.

툭툭을 타고 달리며 이미 열려있는 시장을 보며 한국이던 외국이던 언제나 시장은 부지런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때인가 선생님이 '의욕이 없어지고 무력감이 찾아오면 아침 일찍 수산시장을 가렴'이라고 말하신적이 있다. 아침일찍 그곳을 찾아가면 어디서부터 오는 느낌인진 모르겠지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이 툭툭위에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 전까진 그런 삶의 동기보다는 잠이 우선이었었는데 말이다. 조금은 성장한걸지도 모르겠다.

어젯밤 버스안에서 먹으려고 산 빵을 게스트하우스에서 꺼내었다. 입술은 피곤해서인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부어올랐고 발목은 걸음을 내딛을때마다 찌릿하고 입은 텁텁하고 찝찝했지만 꾸역꾸역 빵을 먹으며 다른 숙소 예약을 했다. 쾌적한 환경을 기대하며 여태까진 선택하지 않았을 비싼방의 예약을 마쳤다. 더이상 나쁜 기억은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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