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다리필름 Feb 10. 2020

P턴 아이덴티티

당신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당신의 회사를 한 마디로 설명하라'


1분 스피치도, 1시간 강의도, 200페이지 짜리 논문도, 불세출 석학의 베개만큼 두꺼운 명저도 모두 논지는 한 줄 요약이다. 그 한 줄을 위해서 해설하고, 근거 들고, 실험하고, 반론에 반론한다. 아무리 길고 복잡한 이야기도 돋보기로 햇빛 모으듯 하나의 초점으로 귀결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일부러 초점을 흐리고 있거나다.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내가 타는 차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A creative solutions for brighter urban life. 도시와 근교에서 재미있게 요리조리 몰고 다니라는 한 줄 정체성이다. 출퇴근용 이상의 차지만 그렇다고 명품도 스포츠카도 아니라는 행간이 읽힌다. 

당신의 회사는, 당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무엇으로 정의될 것인가. 

한 줄로 표현 못 한다면, 사실 당신의 회사나 제품은 정체성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누가 그걸 모르나. 그게 쉽질 않다는 말이다.





'가성비죠' ?


거의 대부분의 자영업, 스타트업, 중소기업은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성비'로 설명한다. 중요한 점이다. 문제는 말 그대로 대부분 그렇다는 점이다. 상품의 본질적 우수성을 말하는 저가격, 가성비, 신기술, 고품질, 고 명성은 세상의 필요한 제품이 거의 모두 공급되어 있는 상향 평준화의 초공급 시장에서는 더 이상 차별화의 포인트가 되지 못한지 오래다. 다 잘 만들고, 다 품질이 좋다. (뭐 우리 회사는 특별히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상은 고만고만 다 잘한다) 여기서 대두되는 것이 좁히고 좁힌 '나만의 우물'인데 세상 모두에게 펼쳐 모두를 이롭게 할 홍익인간적 제품을 꿈꾼다면 일단 망한거나 마찬가지인 롱테일 (대기업, 대자본이 앞에서 한 번 싹쓸이하고 남은 나머지 시장을 특성을 가진 업체들이 소꼬리가 아니라 자기만의 영역에서 닭대가리가 되는 현상) 환경에서 자신만의 정체성 잡기는 사실 논리 라기보다는 철저한 성찰적 자기 축소가 필요한 인고의 심리적 영역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책상에 앉아서 생각한다고 결론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개인의 '적성'이 시도해 본 모든 것 중, 못하는 것을 다 빼고 남는 것과 같다. 뺄셈의 기나긴 시행착오 끝에, 뭘 할 수 있는가 하는 잠재를 발견했을 때가 아닌, 뭘 못하는가 하는 한계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풀무를 통과 한 정금 같은 결론. 

그게 '회사의 한 줄 정체성'이다.




'좌회전'아니고, P 턴


한강 방향에서 북향하는 차는 공덕 로터리에서 신촌으로 좌회전할 수 없는걸 알고 당황한다. 그쪽이 맞는 것 같은데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럼 일단 직진이다. 현실적으로 차가 갈 데가 없지 않은가. 그러다가 (현실적으로) 우회전 길을 발견한다. 그리고 (또 현실적으로) 두 번의 우회전을 거쳐서 결국 P 턴이란 걸 하게 된다. 원래 가려던 좌회전 방향으로 한참을 돌아 결국 접어든다. 기업의 정체성은 보통 이런 식의 혼란과 시행착오와 현실 적응을 거쳐 가까스로 탄생한다. 사다리는 원래 '지식 기반 영상'에 천착해 왔다. 어려운 걸 쉽게 풀어 낸다. 나름 아주 전문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한 줄 정체성인 '꼭 전하고 싶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을 땐, 지식 기반 영상 전문 사다리 필름'으로 정리되기까지 '좌회전 금지 당황:시장이 무르익지 않음.' , '일단 돈 되는 SNS로 우회전', '대세 트렌드인 유튜브 영상으로 우회전', '그리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얻은 기술과 노하우를 업고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전문적인 지식 영상 회사로 다시 우회전하면서 원래 가려던 코스를 P 턴을 통해 들어섰다.






쉽지 않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스몰 비즈니스를 위한 '홍보 격차 해소 세미나'를 1년 반 이상 개최해 오면서 '한 줄의 정체성'을 누누이 강조하는 나지만 가슴 깊이 난 알고 있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은 돈을 쏟으며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한 회사는 '한 줄로 표현된 자기 자신'을 가지게 되는지. 마치 인생의 사적 영역에서, '내가 누군가'의 인생 질문이 시작될 때, 독서로도, 여행으로도, 묵상으로도 발견되지 않던 그 '자아'가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게 되면서 '너에게' 내가 누구인가'의 교정된 질문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과 같다. 공통점은 P 턴의 여정이다. 결국 원했던 그 길로 가더라도, 우리는 현실이라는 시장통을 생존이라는 채널을 통해서만 가는 거리라.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P 턴이 기다리고 있을지...







매거진의 이전글 노안 수술을 결심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