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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 Jul 06. 2022

제철 음료, 제철 여행, 그리고 제철 영화

경제 통찰 다섯

보통 제철(알맞은 시절)이라 함은 자연물(야채, 과일, 동물 등)이 잘 자라고 잘 여무는 시절을 일컫는다.

자연의 산물이 제철을 만나 잘 자라면, 신선하고, 맛도 좋고, 값도 싸진다.

그러면 생산자들은 상품을 저렴하게 좋은 품질로 생산할 수 있어서 좋고,

당연히 소비자들도 저렴하게 좋은 상품을 소비할 수 있어서 좋다.


1. 제철 음료

그런데 신기하게 제철이란 것이 자연물이 아닌 공산품에도 있다.

뭐, 과메기처럼 생산하는 데 날씨의 영향을 받는 제품은 제철이 있는 게 당연하겠다만, 그런 걸 설명할 거면 이야길 꺼내지도 않았다. ㅎㅎ

자, 시작해보자.


1) 비락식혜

이 제품은 '팔도'에서 생산하는 '비락식혜'다.

(내가 참 좋아한다.)

식혜의 주재료는 엿기름, 쌀, 설탕이라, 어찌 제철이라는 게 있을까 싶지만, 내가 생각하는 비락식혜의 제철은 바로 명절이다.

비락식혜는 평소 3,800원 정도(22년 7월 5일, 1.5L e마트 기준  3,780원)에 판매하는데, 설과 추석엔 항상 프로모션에 들어간다.

프로모션이 뜨면 3,780원에 판매하던 제품을 5백 원 정도 낮은 3,280원 정도에 판매한다.

항상 하는 행사가 아니냐 싶겠지만, 내가 수년간 꾸준히 확인한 바 비락식혜는 1년에 두 번, 명절에만 이러한 프로모션을 진행해왔다.(나는 공부를 하다 머리가 아플 때마다, 마트 3사를 돌아다니며 주요 상품들의 시세를 체크하는 취미가 있다.)

처음엔 그냥 그렇구나 싶었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명절엔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식혜를 사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2) 나랑드 사이다

또 다른 음료의 예를 들어보자.

이 제품은 '동아 오츠카'에서 생산하는 '나랑드 사이다'이다.

나랑드 사이다는 평소 1,480원에 판매한다.(오늘자 이마트몰 1.5L 기준)

하지만 한여름 음료 소비가 한창일 때는, 나랑드 사이다의 가격이 오히려 떨어져서 990원~1,280원에 판매된다.

유독 무더운 여름철이 될수록 가격을 낮추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한여름 시원한 사이다 한잔의 효용을 생각하면, 가격을 낮추지 않아도 잘 팔릴 것 같은데, 어째서 평소보다 더 싸게 파는 걸까?

날이 더울수록 생산단가가 유의미하게 낮아지는 것도 아닐 텐데, 이들은 마치 음료에도 제철이 있는 것처럼 굴지 않는가?




2. 짤막한 경제이론

ㅎㅎ 사실 이런 공산품들의 제철은 충분히 경제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이다.

이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전통 경제학의 '규모의 경제' 및 '가격 변화에 대한 수요 탄력도'를 알아야 한다.

뉘에겐 이미 알고 있는 기초 경제학 이론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제목만 들어도 뇌가 굳어버릴 이야기일 테니(겁먹지 마세요), 여기선 아주 간단히 이해만 가도록 설명해보겠다.


1) 규모의 경제

똑같은 물건을 '하나 만들 때 드는 수고'보다 '두 개 만들 때 드는 수고'가 딱 두 배는 아니다.

패키징만 하더라도, 하나 팔 때 만든 디자인을 두 번째부터는 그냥 가져다 쓰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경제학에선 이처럼 추가 생산에 돈이 안 드는 비용을 '고정비용'이라 하는데, 고정비가 큰 사업일수록 무조건 많이 팔아야 돈을 많이 남길 수 있다.

이처럼 상품을 대량으로 팔면 팔수록 단위당 생산단가가 낮아지고, 그 덕에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비즈니스를 '규모의 경제'라고 한다.

간단하지 않은가?


2) 가격 변화에 대한 수요 탄력도

이번엔 용어가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역시 간단히 설명하겠다.

어떤 상품 값을 천 원 낮추면, 판매당 이윤이 천 원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가격이 낮아진 덕에, 사람들이 훨씬 많이 찾아준다면?

오히려 총이익은 커질 수 있다.

이처럼 가격을 조금만 낮춰도, 수요량이 폭발적으로 반응해주는 것을 경제학에선 '탄력도가 높다'라고 표현한다.

끝!


이제 아까 음료의 사례를 적용해보자.

비락식혜나 나랑드 사이다의 가격 프로모션은 아마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탄력도를 높게 가져가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격 프로모션 전략이라도 소비자들이 아무 때나 반응해주진 않는다.

제품이 소비자들의 관심 밖에 있으면, 가격이 저렴하든 비싸든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의 기준은 항상 소비자임을 잊지 말자.

따라서 마케팅 전략도 항상 소비자의 상황에 맞춰 구사해야 한다.

그 소비자의 동향이란 대표적으로 제품의 수요가 가장 높아질 시즌이고,

그렇게 식혜의 제철은 명절이 되고, 사이다의 제철은 여름이 되는 것이다.




3. 제철 여행

이번엔 방향을 살짝 틀어서 서비스 상품의 제철을 알아보자.

과연 여행의 제철은 언제일까?

보통 여름 겨울 휴가철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다.

앞서 언급한 야채청과고기류들은 제철이 되면 보통 가격이 낮아지고 품질이 높아지는데, 여행상품은 휴가철이 되면 반대로 가격이 뛰고, 품질은 하락하기 때문이다.

(휴가철엔 어딜 놀러 가더라도 소비자가 많아서 품질 관리가 안된다. 윽, 사람 많은 곳 너무 싫다.)

고로 틀렸다.

진짜 여행의 제철은 봄가을의 비수기이다.

꽃잎과 낙엽이 공중을 수놓고, 체온보다 살짝 낮은 온도의 공기가 기분 좋게 몸을 감싸는 계절.

반팔을 입든, 긴팔을 입든 내 맘대로인 계절.

이런 계절에 여행을 즐기는 게 참맛 아니겠는가.

심지어 비수기라 모든 것들이 싸다.


봄의 제주

봄의 제주 대학교 (직접 찍음)

나는 봄의 제주를 좋아한다.

남들이 한창 일할 때 홀로 여유를 만끽하는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때는 김포-제주 왕복 항공권 가격이 저렴하게는 4만 원 대에서 비싸도 7만 원이다.

항공권만 싼 게 아니라, 숙박 업소들도 한산한 이유로 값을 저렴히 받는다.

또한 조금 유명한 맛집을 찾아가더라도 웨이팅이 거의 없다.

(진짜 유명한 곳들은 비수기건 성수기건 예외 없다.)

예쁘게 핀 유채꽃과 달콤하게 잘 익은 천혜향은 덤이다.


이렇게 봄의 제주는 여행하기 너무 좋은 시기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여행의 제철을 누리지 못한다.

놀기 좋은 계절이란 말은 곧, 일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란 말과 같기 때문이다.(서글픈 현실이다.)

다행히 나는 한동안 글쟁이 프리랜서(현실은 알바몬)로서 그런 제약을 받지 않고 살아왔다.

고로 여행의 제철이 오면 감사히 그 혜택을 누리곤 한다.

넘치는 것은 시간이요, 없는 것은 돈이니, 어쩌면 당연한 흐름일 수도 있겠다.

다만, 다른 점은 나는 여행을 가고 싶어서 가고, 남들은 일을 해야 해서 한다는 점이랄까???

(누누이 말하지만 '하고 싶은 것''해야 하는 것'의 차이는 극명하다.)

ㅎㅎ 급결론이지만, 이렇게 여행에도 제철이 있다.




4. 제철 영화

영화에도 제철이 있을까?

있다마다ㅎㅎ

먼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보자.


최근 어느새 영화 티켓 가격은 15,000원에 육박하여(CGV, 22년 7월 기준) 개봉 영화를 챙겨보는 것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최근 개봉한 영화 '브로커' 및 '헤어질 결심'을 모두 개봉하자마자 봤다.

하지만 정가에 볼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나는 약간의 꼼수를 쓴다.

그 방법을 여기 공개해드리겠다.

(몇 안 되는 구독자에게 주는 선물입니다.ㅎㅎ)


먼저 흔히 알려진 조조할인(10,000원) 또는 점심 할인(12,000원) 시간대를 고른다.

나는 이중 점심 영화를 고른다.

그리고 개봉 프로모션 이벤트(ex. 스피드 쿠폰)를 적용한다.

예매 타이밍만 잘 맞추면 가격은 -10,000원이 되어, 2,000원으로 떨어진다.

남들은 15,000원 주고 볼 영화를 단돈 2,000원에 개봉 당일에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필요한 것은 약간의 관심 및 노력과, 점심에도 영화를 보러 갈 시간적 여유다.


사실 정가를 지불할 마음만 있다면, 그냥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결제하면 된다.

돈 앞에 상품들의 조건은 당신에게 매우 친절해질 것이다.

반대로 돈이 없다면, 나처럼 제철을 기다려야 한다.

이게 평소엔 피도 눈물도 없지만, 때로 멋진 기회를 주는 시장의 묘미다.

나는 그렇게 적은 돈으로 시장의 흐름을 타며 살아간다.

이것도 나름 좋다.




5. 자연이 주는 기회

이제 슬슬 정리해보자.

제철이란 무엇인가?

시장에서 품질이 좋은 물건을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럼 제철의 반대는 무엇일까?

시장에서 품질이 나쁜 물건을 비싸게 구매해야 하는 시기이다.


요즘은 기술이 많이 발달하여, 제철과 제철이 아닌 것의 기준이 모호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제철은 돛단배의 순풍처럼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 정반대의 사실은 제철이 아닌 상황에서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그만큼 많은 비용과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설명하던 경제논리로 적용하면, 자연이 줄 때 받아먹으면 값싸게 즐길 수 있고, 자연이 주지 않을 때 찾아먹으려면 비싸게 누려야 한다.

같은 행위라도 타인이 원하는 바를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돈을 벌고, 내가 원하는 바를 타인에게 피력하면 돈을 지불하는 원리와 너무나 같다.


우리나라처럼 잘 사는 나라에선 한창 더울 때 쉴 새 없이 에어컨을 켜고, 추울 때는 난방을 켜고 산다.

그렇게 자연이 주는 더위와 추위라는 환경을 극복하는 데는 여러모로 비용이 든다.

또한 우리나라에선 겨울에 온실 딸기가 출하되고, 더운 지방에서 자랄 커피와 망고가 온실에서 재배되고 있다.

역시 자연이 주는 기회와 상관없이, 우리가 원하는 때를 얻기 위해 사회가 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열심인 것은 좋으나, 이런 일이 반복되면 우리 모두가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그러니 다들 덜 피곤하고, 돈을 벌고 싶다면, 혹은 덜 쓰고 싶다면, 꼭 제철을 잡길 바란다.(한창 더울 때 수박 한 덩이 더 사 드시라)

제철은 자연이 그대에게 값 없이 주는 선물이다.


-끝,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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