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는 길기도 하지만 일본과 바로 연결되어 있고 방언들이 많아서 번역하기가 참 어려울 텐데.... 김승복 씨의 뜻이 깊어 보이니 저는 허락을 합니다만.....”
박경리 선생의 따님이신 김영주 선생으로부터 “토지” 일본어판 번역 허락을 받았다.
메일과 전화로 타진을 하다가 직접 강원도 원주 박경리 문화관에서 지내시는 김영주 문화관 이사장을 찾아뵙고 얻어낸 회답이었다. 2년 걸려 받은 허락이었다.
기쁜 마음에 가장 먼저 장정가 가츠라가와 준 씨에게 전화를 하였다. 한국 출장을 가기 전 실은 카츠라가와씨를 만나 토지 프로젝트를 상의하였기 때문이다.
작가가 1969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1994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25년간 여러 문예지를 통해 연재가 되었고 완결판 단행본도 여러 차례 출판사가 바뀌어 판본이 여럿 있다. 게다가 토지는 청소년 판이며 만화판도 있고, 청소년 판은 일본에서 고단사에서 번역이 되었고 1980년대에는 토지 1부만이 후쿠다케에서 번역 출판된 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완전판 토지 일본어판의 장정이며 사양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내게는 엄청난 부담이기도 했다. 그래서 카츠라가와씨에게 한국에서 나온 토지의 장정들을 보여드리며 어드바이스를 구했던 것이다. 솔직하게 더 말하면 김영주 이사장이 면담 중에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물어오셨을 때를 대비한 것이기도 하였다.
카츠라가와씨는 늘 쿠온의 든든한 응원군이었다. “한국 조선의 지를 읽다”를 시작하여 쿠온 인문 사회 시리즈를 맡아 주셨다. 쿠온이 진보초로 이전하자 진보초에 올 때마다 슬쩍 들러 책을 사 가곤 하는 책거리 손님이기도 하였다.
번역출판 허락에 가츠라가와씨도 많이 기뻐해 주셨다. 출장에서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여러 버전의 토지 사양을 디자인하여 보여주었다. 나는 한국인들에게 토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국인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모양새여야 한다는 것을 말했는데, 그는 일본인에게 이 작품이 어떻게 다가가야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카츠라가와씨의 이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우리는 일본어권 독자들에게 토지를 보이는 것이다.
카츠라가와씨는 보이고 싶은 것 이전에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아는 분이셨다.
여러 차례 디자인 안을 만들어 보여주셨고 그때마다 번역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토의 어느 절에 있는 불경 속의 글자를 차용하여 “토지”라는 글자를 만든 안이 모두에게 호평을 얻었다. 토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안이 결정되자 전 20권을 각권 별로 디자인을 만들어 보내 주셨다. 토지라는 글자는 고풍스럽고 힘이 있지만 글자 색에 바리에이션을 주어 현대적 감각이 묻어났다.
이런 과정을 통해 2016년 일본어판 토지 완전판 1,2권이 무사히 나왔다. 그 누구보다도 카츠라가와씨가 기뻐하셨다. 그는 여러 출판사의 책을 디자인하고 (1년에 100권 이상을 한다고 하였다) 디자인에 관한 글을 잡지에 연재를 하고 종종 책을 내기도 한다. 그런 분이 매번 쿠온의 망년회며 책거리의 이벤트에도 종종 참가하시곤 하였다.
토지 14권이 나와 발송을 한 지 이틀이 지났을까. 책거리 6주년 기념 이벤트 중에 우리에게 카츠라가와씨를 소개해 주었던 편집자 쿠로다 씨가 전화를 해왔다.
카츠라가와씨가 죽었어요.
지병이 있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우리 곁은 떠나가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