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2015년 7월부터 도쿄 진보초에 한국책 전문 북카페를 열어 지금도 절찬 영업 중이다. 한 달에 두 번씩 한국에서 DHL로 책을 사입하여 한국의 여느 서점들과 시간차 없이 진열하여 파는 로드샵이다. 일본에서 오프라인 한국서점은 우리 책거리가 유일하여 한국어 원서를 원하는 고객들에게 지대한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북카페 책거리-15평 규모. 재고 도서-한국원서 3천5백 권, 한국 관련 일본어 도서 500권>
그러던 지난해 여름 일본 신문에 일본의 내셔널체인점 키노쿠니야 서점이 한국의 교보문고와 제휴하여 한국어 원서를 판매할 것이라는 뉴스가 실렸다. 키노쿠니야 서점은 일본 전국에 71개의 점포가 있는 대형서점이다. 게다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하여 싱가포르, 두바이 등 해외 판매점도 30개나 된다.
뉴스를 보면서 몇 년 전 대만 여행 때 들렀던 타이베이 키노쿠니야 서점을 떠올렸다. 단독으로 일본의 원서를 취급하는 서점이었다. 그때 아, 일본은 이렇게 세구나! 하며 많이 부러워했었다. 한국의 웹진에 대만에서 보고 온 타이베이 키노쿠니야 서점에 대한 소감을 쓰면서 왜 우리는 다른 나라에 한국 서점 하나 내지 못하나 하는 원고를 쓰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런 생각 끝에 도쿄에 책방을 차린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나는 4년 전에 세계적인 책방거리 진보초에 한국책을 전문으로 파는 책방을 차려 신나게 일하고 있다.
신나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도 경쟁상대가 없어 가격이나 상품에서 눈치 보는 일 없이 오로지 우리가 고민을 조금 하여 GO!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리 앞에 공룡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키노쿠니야와 교보문고와의 제휴라니 어떤 형태일까.
일본 전국 키노쿠니야 서점에 한국어 원서 코너가 다 들어가는 걸까.
아니면 대만의 키노쿠니야처럼 단독 서점이 생기는 것일까.
그들은 인터넷으로도 판매를 할까.
가격대는 어떻게 매길까…….
이런 상상으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침에 책방 나가는 것이 신나고 손님들 만나는 게 즐거웠는데,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서점을 혼자서 공룡으로 만들어 놓고 마음고생을 사서 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왜 우리는 다른 나라에 서점 하나 내지 못하는가 했던 자신이 말이다.
2주일을 이렇게 고민하다가, 출판계 인사를 통해 키노쿠니야 신주쿠 본점 본부장의 연락처를 받았다. 다음 날 바로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키노쿠니야에서 우리 책방으로 연락이 왔다. 책거리에 와서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신주쿠 본부 본부장님과 총본부 해외사업부 총괄자와 한국원서 담당자가 책거리를 찾아왔다.
한국어 원서는 신주쿠 본점 1층 특설 코너에 약 2000권 정도를 들여놓고 팔 것이고 책거리와 경쟁을 하지 않고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것이라는 선비 같은 고마운 말씀을 하셨다. 책거리의 활약상은 이미 알고 있으며 선배에게 인사를 온 셈이니 잘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꼭 흉내 내고 싶은 멋진 대사였다.
키노쿠니야 서점은 1927년에 설립되어 일본 전국에 71개 점포(올 3월에는 오사카 텐노지점을 오픈)를 운영하며 지속적으로 서점 수를 늘려가는 중이다.
해외점포는 1969년 샌프란시스코점을 오픈하여 현재 30 점포, 올 6월에 미국 텍사스점도 오픈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도 매출액은 1,031억 엔(1조 310억 원)이다.
키노쿠니야 서점 대표인 다카이 마사시 씨가 한국방문 차 교보문고 내의 일본서적 코너를 보고 그 자리에서 키노쿠니야 서점 내에 한국원서 코너 유치를 제안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을 수 있었다. 다카이 사장은 일본 출판계에서 결단력이 빠르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다.
대형서점이 하는 서비스와 우리 책거리가 손님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물론 다를 것이지만 상품은 냄새도 같고 사이즈도 같고 글씨 하나도 다르지 않은 책이니 아무리 경쟁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올 무렵 2018년 11월 말에 신주쿠 키노쿠니야 본점에 드디어 한국원서 코너가 들어섰다.
<신주쿠 본점의 키노쿠니아 한국어 원서 코너. 1층 특설 매장. 재고도서-약 2천여 권. 이 사진은 2019년 4월 5일 촬영함)
오픈행사를 하거나 오픈을 알리는 장식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마치 100년 전부터 그 자리에서 판매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온 한글로 쓰인 무라마키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마스다 미리와 학습만화들, 총 균쇠, 팀장 리더십, 사피엔스, 자존감 수업, 박민규, 한강, 김애란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토지, 태백산맥 등의 대하소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김수영시인의 “거대한 뿌리”를 기념으로 샀다. 우리 서점에는 없었던 책이었다.
이곳은 구매층을 한국에서 온 유학생, 주재원 등으로 상정한 셀렉션 같았다.
책거리의 셀렉션과는 크게 차이가 났다. 우리는 한국어를 학습하는 일본어권자에게 중심을 두어 그들이 즐길 수 있는 그림책, 에세이, 인문서, 역사, 문학, 한국어 학습서 위주로 구성을 한다. 물론 이 구성은 처음부터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손님이 붙고 나서 팔려나가는 데이터를 보면서 천천히 바꾸어 온 것이다.
키노쿠니야 서점이 유학생, 주재원을 타깃으로 한 것은 그들도 오랜 시간 양서들을 팔면서 모은 데이터를 통해 구축된 것임을 이번 취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신주쿠 본점에도 양서 코너(영어권)가 있지만 신주쿠 남쪽 타카시마야 백화점 쪽에 2016년 새로 정비한 300평 규모의 BOOK KINOKUNIYA TOKYO 에는 영어 외에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의 유럽 언어 중심과 중국어, 베트남어 원서들이 약 12만 권 정도 진열되어 있다.
<일본 최대급의 양서 매장- BOOK KINOKUNIYA TOKYO. 300평 재고도서 12만 권. 2016년 신주쿠 미나미점이 폐점되면서 6층 부분만 양서 코너로 남음)
< BOOK KINOKUNIYA TOKYO매장 맵>
이 서점의 이용자들 대다수는 이 원서들의 네이티브 스피커라고 한다. 베트남 원서는 최근 베트남 유학생들이 늘어난 것을 계기로 취급하기 시작했는데 매출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다고 하였다. 한국어 원서가 본점에 자리를 잡게 된 일등공신이 실은 이 베트남 원서였다고 한다. 한국어 원서를 들여오겠다는 대표의 결단이 있기는 했지만 실무자 차원에서 실행 판단 근거는 이 베트남 원서의 실적이었다고 한다. 기업의 생리는 이윤추구이니 두말할 나위 없겠다. 일본의 기업은 한국과 달리 톱다운 스타일이 아니다. 어쩌다 톱다운일지라도 실무진들의 GO사인 없이는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다.
<베트남 원서 코너. 베트남어 배우는 학습서는 극히 적다>
키노쿠니야 대표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서점을 극장에 대비한 것인데,
“서점이 무대이고 책은 주역이며 서점원은 연출가. 고객들에게 갈채를 받으면 그 서점(연극)은 성공한 것이다” 이 말은 키노쿠니야 서점원뿐만 아니라 나 같은 작은 책방 주인도 알만큼 유명하다.
가게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긴요하게 잘 맞물려야 잘 돌아간다는 말이겠다. 어찌 서점뿐만일까. 나는 이 말을 듣고 우리 스태프들에게 연출가가 지시를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동작 그만 상태가 된다고 한 술 더 뜬다. 키노쿠니야 대표 역시 서점원들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만들어 낸 게 아닐까 싶다.
키노쿠니야 한국원서 코너는 오픈한 지 4개월 여가 지난 지금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일본어권 독자들이 많이 찾는 책들로 책장이 바뀌었으며 (그러니까 우리 책거리랑 비슷한 라인업)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 책들이 원서와 함께 손님들을 맞는다. 베트남이나 다른 언어권의 네이티브들과 달리 한국어 네이티브들은 한국의 인터넷 서점에서 직접 구입한다. 배송료를 포함해도 키노쿠니야 서점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책거리도 같은 사정이라 한국어권자를 구매타깃으로 보지 않는다.
키노쿠니야 서점은 4개월 만에 이를 간파한 것 같다.
한편 한국 매스컴에도 일본어판 “82년생 김지영”이며 “나는 나대로 살기로 했다”의 히트 소식이 연일 소개되는 것처럼 한국문학 번역서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키노쿠니야 본점의 해외 문학코너나 1층의 메인 매대에도 이 책들이 당당하게 쌓여 있다. 물론 키노쿠니야 서점만이 아니라 동네 작은 작은 서점에도 “82년생 김지영”과 “나는 나대로 살기로 했다” 가 놓여 있다. 며칠 전 시즈오카라는 지방 도시에 출장을 갔는데 그 지역 서점 해외문학 코너에 가서 깜짝 놀랐다. J.M쿳체, 가즈구로 이시이 등 작가명 표지판 옆에 박민규 표지판이 있고 여러 군데에서 나온 “카스텔라”,”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핑퐁”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한국문학이라는 표지판도 없었던 시절을 경험한 나로서는 실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키노쿠니야의 변화는 최근 들어 한국 관련 저자들의 이벤트가 많아졌다는 것도 들 수 있겠다. 조남주 작가가 독자들과의 만남을 400석 홀에서 열었고 심지어 좌석이 모자라 모니터로 보는 티켓까지 매진된 것은 지금까지 일본 작가들 때도 없었던 진기한 풍경이었다.
물론 한국어 학습서며 한국 관련 인문서 저자들의 이벤트도 키노쿠니야 서점 내에서 인기다. 큰 서점에서 여는 저자 이벤트는 독자들 뿐만이 아니라 저자들도 기뻐한다. 출판사 권유가 아니라 서점에서 직접 권유해 오는 이벤트는 저자들이 참으로 좋아한다.
이런 저자 이벤트를 꾸준하게 해온 책거리로서는 사실 긴장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책거리 저자 이벤트보다 더 센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키노쿠니야 서점일 테니 말이다. 아직까지 책거리 이벤트 횟수가 준 것은 아니지만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공룡이 나타나서 책거리는 매출이 줄어 울상을 짓고 있는가.
아니다.
꾸준히 매출은 늘고 있으며 (책거리는 오픈 이래 아주 소폭이기는 하지만 계속 매출이 늘고 있다) 미디어 노출도도 많아지고 있다. 지방에서 오시는 손님들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책거리 인터넷 판매가 이 4개월 사이에 부쩍 늘었다.
특별히 프로모션을 한 적이 없으니 책거리의 자발적인 노력 덕으로 볼 수밖에 없다, 는 결론을 내릴 뻔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키노쿠니야 한국 원서팀 SNS에 선배 된 입장에서 응원 차 열심히 좋아요를 누르고 코멘트를 단 것이 책거리를 몰랐던 고객들에게 책거리를 알린 셈이 되었고 구매로 이어진 것이다. 쉽게 말하면 공룡의 덕으로 시장이 커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니시네 본부장이 말했던 “경쟁이 아니라 공생으로 가는 길”이란 어쩌면 이런 것을 염두에 두셨구나 싶었다. (물론 책거리 고객들이 교통이 좋은 키노쿠니야에서 구입을 한다는 것도 안다)
일본에서는 지금 정치적인 것만 빼고 한국의 모든 콘텐츠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 젊은 층들만이 K-POP에 빠진 것이 아니다. 뮤지컬, 웹툰, 패션, 한국음식, 코스메, 한국어, 한국문학……. 스마트 폰에 이어 노트북까지도 한 국세가 강하다. 고교나 대학에서 제2 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 키노쿠니야 신주쿠 본점 7층의 한국어 학습서 코너는 다른 그 어떤 학습서들 코너보다 크고 깊고 넓다.
이런 시점에 도쿄에서 K-BOOK 페스티벌을 크게 열어보는 것도 시장을 확대하는 좋은 계기가 될 거 같아 기획서를 들고 키노쿠니야 서점을 찾았다. 책거리와 키노쿠니야가 중심이 되어 페스티벌을 열어보자는, 공생하는 길을 적극적으로 함께 만들어 독자들을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니시네 본부장은 이런 빅 프로젝트는 신주쿠 지점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키노쿠니아 본체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마침 4월 1일 자로 자신이 본부에 발령을 받아 모든 매장을 총괄하는 본부장이 되었으니 본부에 제안을 해보겠다는 포부를 들려주셨다. 브라보!
K-BOOK 페스티벌을 가을에 열고 싶다. 가능하면 이 공룡의 힘을 빌리고 싶다! 아직 니시네 본부장으로부터 연락은 없지만 우리들 마음은 이미 햇볕 좋은 가을날 넓은 터에 한국 책들을 늘어놓고 수많은 독자들을 만날 준비로 정말 바쁘다. 한국에서 작가들도 초대하고, 한국문학 퀴즈대회도 열어보고.
키노쿠니아 신주쿠 본점에 생긴 한국 원서 코너로 많은 독자들이 기뻐하셨겠지만 가장 덕을 본 사람은 나를 비롯한 우리 책거리 스태프들임을 여러분들은 눈치채셨을 것이다. 공룡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공룡과 함께 갈 수 있는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