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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복 Feb 20. 2023

+BOOK 이 필요할 때

한국에 동네 책방들이 많이 생기는 것이 참 반갑다. 도쿄에서 한국전문 책방을 준비하려고 2013년부터 출장길에 나설 때면 서울은 물론 부산까지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처음부터, 책이 중심이 되지만 다른 어떤 것과 콜라보를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그런 콜라보를 잘하는 곳을 찾아다녔다. 

서촌의 길담서원도 그중의 하나다. 일본에서 가장 핫한 젊은 건축가인 고우시마 유스케 씨 소개로 박성준 선생님을 소개받아 2014년 아주 더운 여름날에 길담서원을 찾았다. 박성준 선생님은 여름 감기로 많이 힘들어 보였지만 인문동아리들의 모임이 왜 필요한지, 책방이 왜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지 3시간 정도 아주 열정적으로 알려주셨다. 마침 선생님도 책방을 하면서 출판사를 하고자 하셨기에 출판사를 직접 하고 있는 입장에서 나 역시 열심히 출판활동의 재미에 대해 말씀드렸다. 나는 박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보고 책방을 차렸는데 선생님도 그 뒤 출판사를 차리셨는지 연락을 드려보아야겠다.

부산 보수동에서 고서점을 하는 양수성 씨와는 2011년 파주 북소리에서 만나 부산에 갈 때마다 보수동을 찾게 된다. 파주북소리에서는 여러 나라의 고서점들을 초대해 그야말로 책의 축제를 프로그래밍했었다. 마침 일본 도쿄의 진보초 고서점협회가 한국의 고서전문점들이 어떻게 유통을 하고 특히 도서관이나 기관들이 고서적을 어떤 형식으로 구입을 하는지, 인터넷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등을 직접 보고자 하여 서울 투어를 기획하던 중이었다. 일본의 기업이나 단체들이 그렇듯 지난 서울투어 실시 1년 전부터 참가자들은 한국의 출판상황부터 고서의 유통 흐름 등을 틈틈이 공부해 왔다. 일종의 사전학습모임인데 심지어 한국어를 맹렬히 공부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이 학습모임의 코디네이터를 하면서 반대로 일본의 고서점을 운영하는 분들의 생리를 조금 알게 되었다. 마침 서울 투어에 참가하는 분들은 2대, 3대로 가업을 이은 분들이 많아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상당했다. 고서점들이 함께 공동 웹사이트를 만들고 협회지를 컬러풀하고 캐주얼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북디렉터로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중에 [책의 역습]을 쓴 20대의 우치 누마 신타로 씨를 코디네이터로 모시고 정말이지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보았다. 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기억이 났는데 2011년은 어떤 해였나.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 일본 경제가, 일본 사회가  잠시 멈춤의 시간이었던 것을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당연히 이들의 서울투어는 무산되는 줄 알았는데 이 젊은 힘들이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기어코 감행하는 게 아닌가. 이들의 투지를 보고 나는 나대로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 일이 있다. 일본서 출판사를 차려 한국문학을 브랜드화하겠다는 포부로 그 첫 책(한강의 채식주의자)을 인쇄소에 막 입고한 상태에서 대지진을 맞은 것이었다. 나 역시 일단 멈춤, 잠시 멈춤, 멈춤, 기약 없는 멈춤의 시간을 보냈다. 지진으로 쓰나미로 원전피해로 세상이 아수라장이었던 그 시간에 나는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식주의자를 생각하며, 먹구름에 싸인 나의 미래가 불안해 참으로 우울했다. (그때는 출판사 초기단계라 책이 나오면 햇살을 가득 받고 세상이 다 환해질 것이라는 환상이 아직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그래도 위안되는 것은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이러한 시간을  이겨낼 힘을 얻지 않았나 싶다) 인쇄소에 데이터를 입고한 지 두 달여 만에 한국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일본어로 세상에 태어났다!

전적으로 도쿄 고서점협회 회원들 덕인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파주 북소리에는 부산 고수동의 젊은 피 양수성 씨가 동글동글한 몸으로 맞아 주었다. 양수성 씨는 일본의 고서들을 보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여기서 다 팔고 남은 책들을 부산 보수동에 가서 팔아보겠다,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서울 출장길에 일부러 부산을 끼워 넣어 보수동을 찾곤 했던 것이다.

어느 날은 일본의 평론가 가라 다니 고진 선생을 모시고 부산강연을 기획하여 갔다가 인디고 서원 박영준 씨를 만나게 된다. 세계의 석학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영문판으로 책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하고, 또한 인디고 서원이라는 책방을 만들어 책을 팔며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모임을 하는 등 그들의 책방정신에 대해 들을 기회도 있었다. 한 가지 인디고 서원의 멋진 건물을 보면서 든 생각은 파주 출판도시의 큰 건물들이 오버랩되었다. 이 멋진 건물을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책을 팔아야 할까. 팔기만을 위한 장소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깝다, 나는 내가 열 책방에 대해 막연하지만 책을 팔면서 다시 책을 만들 어떤 소스를 만들어내는 場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를 궁리하던 참이었다. 그러려면 그 장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장이라는 것은 물론 자금도 들어있다. 장이 크면 그것을 유지할 자금도 커져야 할 것이고 자금을 크게 하면 내가 컨트롤하지 못할 자금도 들어오기 마련. 그런 점에서 작지만 스스로가 장악할 사이즈이면서 그 장을 마음껏 즐길 책과 함께 또 다른 콘텐츠가 필요했다.


길담서원과 인디고서원은 돌아본 여러 책방들 중에서 내가 책방을 낼 때 가장 많이 참조한 책방이기도 하다. 


문제는 일본서 책방을 하는데 어떻게 책을 공급받을 것인가. 출판사와 함께 책방 공간을 고려해 22평의 공간을 확보한 후에 본격적으로 책을 어떻게 공급받을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한국어 책과 한국에 관한 일본어 책을 반반씩 구비하여 한국전문 책방으로 소문을 내고 싶었다. 2015년 2월부터 책을 수소문했는데 한국에서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한국 내에 소매점업을 하는 사업자만이 책을 저렴하게 사들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도리츠기(取次)라 하여 한국 출판계 분들도 다 잘 아시는 닛판이나 토한과 계좌를 터야 하는 점이 있었다. 이미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이들과 거래를 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책을 공급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책을 사들일 때는 별도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별도의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매장 규모가 이들이 원하는 크기인가도 중요하였으며  12개월 이상의 매상에 버금가는 여신을 필요로 하였다. 나처럼 소규모 책방을 단독으로 열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높은 벽이다.

 여기서 일본의 서적 유통구조를 좀 들여다보자. 우선 출판사의 입장에서.

토한과 닛판은 일본 전체 서적 유통의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이 두 곳 중 어느 한 곳과 거래를 트면 사실 대부분의 서점에 책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출판사를 차렸다고 하여 바로 이 두 곳과 거래를 틀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어렵다. 도한의 경우 신규계약이 연간 2-3사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작은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이 두 유통사를 연결해 주기도 하면서 직거래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유통사가 있다. 지방소출판유통센터가 그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 쿠온도 초기에는 이곳의 신세를 많이 졌다. 출판사와 이 지방소가 계약을 하고 다시 지방소와 토한, 닛산이 계약을 함으로써 사실상 전국의 서점에 책을 공급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렇지만 공급률이 다르고 지방소의 경우 반품 시 꼭 서점이 출판사에 반품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 서점원들이 주문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실지로 한류상품인 [시크릿 가든 영상북]을 유통할 때 대형 체인점인 츠타야 서점으로부터 30,000세트인 90,000권을 주문받았지만 각 서점별로 반품 시에는 반품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지방소의 일침에 츠타야에 납품을 하지 못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츠타야는 닛산을 통해 거래가 되는데 당시 우리는 지방소를 통해 닛산 거래 서점에 책을 공급하고 있었다)

한편 서점과 출판사가 직거래하는 경우도 많이 늘고 있다. 트랜스뷰라는 출판사는 초기 단계부터 서점이 원하는 거래 방식, 즉 유통사를 통할 것인가 직거래를 할 것인가를 서점이 결정하게 하여 점차적으로 직거래를 하는 서점 수를 늘려왔다. 최근에 트랜스뷰는 자신들의 노하우를 살려 작은 출판사들을 모아 각 서점들이나 도서관에 공동 DM을 만들어 주문을 받는 스타일을 개발하여 서점과 출판사 간의 거리를 좁히고 있기도 하다. 직거래 출판사로 유명한 곳은 트래스뷰를 비롯하여 이와나미 쇼텐, 디스커버 21 , 미시 마사 등을 들 수 있다. 다들 직거래를 하면 되지 않겠나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유통사와 거래를 하면 역할 중 수금과 배송문제가 해결된다. 우리 출판사의 경우도 약 700여 서점으로부터 주문을 받는데 만약 직거래를 한다고 했을 때 그 서류 정리를 직접 한다고 생각하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일본의 서점 수는 2004년 18,000 점포에서 2014년 12,793점 포로 점점 줄고 있다) 


    총서점수/총 평수 추이표(2004-2014년 각 연도별 집계표)


위와 달리 역순의 경우 서점> 유통사> 출판사라고 보면 되겠다. 서점은 규모에 따라 취급하는 서적의 종류가 달라진다. 한국처럼 일본 역시 개성 있는 동네 책방들이 많이 늘고 있으며 이 책방들은 책방 오너의 취향에 따른 책들이 진열되고 그 진열방식은 그 책방의 방침, 정체성을 보여준다. 거개의 정체성이 강한 작은 책방들은 유통사의 배본시스템으로 움직이지 않고 자신들의 선별로 책장을 채워간다. 그렇지만 앞서 내가 책방을 낼 때 겪었던 것처럼 이런 작은 책방들이 처음부터 유통사와 계약하여 책장을 채우기는 참 어려웠다. 

작년부터 이런 소규모 책방 혹은 다른 전문점에서 책을 플러스하여 취급하고 싶을 때 공급을 하겠다는 작은 유통사가 생겼다. 교열전문회사를 운영하다 직접 책을 파는 북카페 [카모메 북스]를 연 야마시타 교헤이 사장이 제안한 코토리츠기 [小取次;작은 유통사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책방을 열고 나서(2014년) 책이 더 자연스럽게 다양한 장소에서 사고 팔리는 환경을 제안하고자 작은 유통사 개념을 일본사회에 던졌다. 일테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자전거 전문점에 자전거에 관한 책, 자전거 산책길에 대한 책을 함께 두어 생활 속에서 책을 더 가깝게 하자는 제안이다. 잡화점에서도 판매하는 잡화 아이템에 맞는 책이 있으면 그 잡화 옆에 해당 책을 진열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인데, 앞서 말한 대형 유통사는 이런 작은 책방이나 잡화점을 상대해 주지 않는다. 종종 출판사에 직접 연락을 하여 공급받는 경우도 있지만 출판사 역시 지속적인 거래망이 아닐 확률이 커 썩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출판사가 큰 경우 특히 그렇다. 

야마시타 씨는 자신이 책을 좋아해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책을 가깝게 해야 책을 더 많이 열심히 만들고 팔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일상 속에 책을 플러스해보자! 는 의미를 담은  +BOOK은 그가 일본사회에 던진 커다란 제안이다. 이 사업은 현재까지 테스트 단계에 있지만 한국의 출판정책을 하는 분들에게도 출판관계 일을 하는 분들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야마시타 교헤이 사장이 표방하는 +BOOK 공식 웹사이트


(일본이나 한국이나) 책을 읽지 않네, 점점 책방이 줄어드네, 출판은 사양산업이네 하는 자조적인 발언들이 많은데 정작 책방을 해보겠다는 젊은 피들에게 쉽게 책을 구매할 유통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정책도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


나의 경우는 일본에 법인체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도소매 사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의 출판사나 유통사로부터 서점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한 건 있을까 말까 한 경우의 수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실제로 존재하는 경우의 수이니 선처를 바란다는 진정에도 아직 선처를 받지 못한다.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서울을 비롯하여 각 지방에서도 특색 있는 책방들이 많이 생겨나고 책방을 해보려는 친구들이 일본 구석구석을 돌며 책방 벤치마킹을 하는 경우도 여럿 보았다. 심지어 오픈 한 지 일 년이 채 안된 우리 책방에도 찾아와 자문을 구한다. 나 자신이 책을 만들고 책을 파는 일을 하고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어린 친구들이 다른 업종이 아닌 책을 선택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고 그래서 더 선배 입장에서 그들이 보다 더 합리적으로 일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한국에서 일본 책을 취급해 보려는 분들이 계시다면 기꺼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합리적으로 책을 공급하는 일을 주선하는 일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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