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온 출판사 대표 김승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의 오랜 독재정치로 인한 인권침해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따돌림당하는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인권침해에 대한 내용들을 국제연합에서는 지속적으로 보고서 형식으로 공개해 왔고 2014년에는 책으로 간행되었다.
이 보고서를 일본의 고로카라 출판사에서 일본어로 번역 출판하여 일본 출판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이 보고서의 일본어판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의의에 대해 전해보고자 한다.
고로카라 출판사 대표 기세 타카요시(木瀬高吉) 씨가 이 보고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4년 3월 도쿄신문의 기사를 통해서였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했지만 방대한 자료들이 영문으로 되어 있어 읽기를 포기하고 일본 외무성 사이트에 게재된 번역판을 읽던 중 가장 중요한 탈북자들 인터뷰(3만 명)를 통한 증언이 빠져있는 것을 보고 아예 전문을 일본어로 번역 출판하기로 마음먹는다.
영어에 능통하고 또한 북한 사정에도 밝은 지인들에게 번역을 의뢰하였다. 일본인으로 외국계 특파원을 하는 친구와, 역시 일본인이며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한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번역을 도와준 친구의 아이디어로 제작비에 대해서는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하였다. 기세 씨가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해 본 것은 처음이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기금에 참여해 줄까 반신반의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모였다. 모집기간을 일본 외무성이 정한 “북한인권침해 문제 주간”에 맞추어 2015년 12월 중순부터 실시한 것이 적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금 한 달 만에 목표액인 60만 엔을 넘어섰고 최종적으로는 71만 엔에 달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모금에 참여한 사람들 면면을 보면, 헤이트 스피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나 미디어 관계자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고로카라 출판사는 가토 나오키 의 저작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 - 1923년 간토대지진 대량학살의 잔향”(한국어판은 갈무리출판사에서 간행)을 비롯하여 일본 내 마이노리티 문제에 대한 책들을 많이 내고 있다.
이 펀딩 정보는 심지어 산케이 신문에서도 자세하게 보도하였다.
<모금활동에 대해 다룬 산케이 신문>
입장이나 견해는 달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기운이 반갑다.
만약 이번에 이 책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국제연합의 ‘보고서’는 일본에서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일본 외무성 웹 사이트에 그 뒤 전문이 실렸으나 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심지어 일본인 납치문제 관련자들도 모른다고 하였다.)
고로카라에서 나온 초판 800부의 힘은 상당했다. 각종 신문에 소개가 되고 도서관 등에서 구입을 하여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직 종이책의 힘이 세긴 세다.
한 가지 유감인 것은 책값이 상당하여 (8,000엔) 개별 구입보다 다들 주변 도서관에 요청하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참, 이 보고서는 한국어로도 번역 출판되었다고 한다.(한국 통일 연구소 간행)
일본어판에 실린 편집자의 말 편에 실린 구절이 마음을 울린다.
-인권침해가 있는 나라가 북한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자명하다. 일본도 국제연합 인권차별 철폐위원회로부터 몇 번이나 주의를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보고된 인권침해는, 일본을 포함한 다른 여러 나라도 비켜갈 수 없는 문제다.
우리나라도 역시도 비켜갈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고로카라는 기세 씨 혼자서 운영하는 1인 출판사이다. 그의 굳은 뜻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힘든 일을 거뜬히 해냈다. 일본의 출판인들 사이에서도 기세 씨의 이 기개는 한동안 오르내릴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