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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은 Dec 30. 2019

책리뷰<수학귀신> 수학이 어렵고 쓸모없다고 믿는 너에게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수학귀신>

오늘의 주인공 로베르트는

수학이라면 징글징글하대.

너는 어때? 수학, 좋아해?

수학이 어렵고 쓸모없다고

믿는 사람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거든.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수학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거야.

우리 함께 로베르트와 수학귀신을 만나러 가보자!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지음

로트라우트 수잔네 베르너 그림

고영아 옮김 | 비룡소 펴냄




|작품 해설| 수학이 어렵고 쓸모없다고 믿는 너에게

매일 밤 꿈에서 수학귀신을 만나는 로베르트

수학이 어렵고 쓸모없다고? 오늘 소개할 책의 주인공 ‘수학귀신’이 네 말을 들으면 엄청나게 곤란할걸.

로베르트는 여느 날처럼 꿈을 꾸는 중이었어. 평소와 달리 기분 나쁜 물고기 꿈이 아니라 잔디밭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지. 거기에서 메뚜기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남자 하나를 만났어.

그 남자는 자기가 ‘수학귀신’이라고 했어. 로베르트는 어이가 없었지.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 “우선, 수학귀신이라는 건 없어.” “둘째로, 나는 수학이랑 관계있는 거라면 뭐든지 딱 질색이야.” 수학귀신이 물었어. “이유가 도대체 뭔데?” “빵 굽는 사람 두 명이 여섯 시간에 꽈배기 빵 444개를 구울 수 있다면 다섯 명이 88개를 굽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걸 수학에서는 풀라고 하잖아.”

로베르트는 수학귀신에게 이만 꺼지라고 하는데, 수학귀신은 이렇게 말해. “너희 선생님을 헐뜯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계산은 사실 수학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훌륭한 수학자들 중에는 계산을 전혀 못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거, 아니?”

그 이후로 로베르트는 열두 번의 밤 동안 수학귀신을 만나. 가끔은 짜증 나고, 가끔은 웃기고, 가끔은 무섭기도 한 수학귀신이지만 둘은 그동안 점점 친해지지. 수학이라면 질색이라던 로베르트는 열두 번의 밤 동안 수학귀신과 무슨 얘기를 했을까?

초등학생 때 이 책을 처음 읽었어. 와,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지?!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았어. 수학이 이렇게 재밌게 느껴지긴 처음이었어. 로베르트만큼은 아니었지만, 수학이 지루하던 참이었거든. 똑같은 문제를 숫자만 다르게 몇십 번을 풀라고 하니까 좋을 리가 있나. 수학 문제집을 푸는 건 정말 지옥 같았어. 너무 따분한 고역이었지.

그러던 내가 수학을 좋아하게 된 데는 수학귀신이 큰 역할을 했는데, 아주 오랫동안 옛 친구를 잊고 살았던 거야…. 그러다가 며칠 전 불현듯 수학귀신이 머릿속에 떠올랐지.

생각이 나자마자 너희에게 이 재미있는 열두 밤의 여정을 소개하고 싶어 졌어. 수학이 무섭고 딱딱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거든! 준비됐어? 지금부터 수학귀신과 로베르트의 꿈속에 들어가 보자.


만약 우리 학교 선생님이 수학귀신이라면?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를 보여주는 수학귀신

수학이 뭘까? 정답이 정해진 어려운 문제를 공식을 외워서 계산하는 것?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나는 수학은 상상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 눈에 안 보이는 ‘개념’을 배우잖아. 수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는 힘을 기르는 학문이지.

로베르트가 수학을 ‘극혐’하는 이유가 뭘까? 다른 건 몰라도 ‘보켈 박사’라는 형편없는 수학 선생님이 나쁜 영향을 미친 것만은 확실해. 뚱뚱한 보켈 박사는 매일 학생들에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쓸모없는 계산문제를 내주고 몰래 꽈배기 빵을 꺼내 먹곤 하거든.

보켈 박사는 수학이 뭐라고 생각했기에 학생들에게 지겹고 쓸모없는 계산만 주구장창 시키며 괴롭힌 걸까?(꽤나 맛있는 꽈배기였나 봐.)

반대로 수학귀신은 로베르트와 어떤 상상을 펼치며 수학을 얘기했는지 슬쩍 살펴보자고.


첫날밤 이야기야. 수학귀신은 껌을 하나 꺼냈지. 그리고 그 껌을 반으로 쪼개서 로베르트에게 하나 줬어. 그건 2분의 1이지.

“이제 너희 반 아이들 중에도 껌을 조금 얻고 싶어 하는 애들이 당연히 있을 거야.” “알베르트와 베티나.” “누구라도 상관없어, 알베르트는 너에게 가고 베티나는 나에게 오고. 그러면 우리는 각자 껌을 쪼개야 하겠지. 이제는 한 사람이 4분의 1씩 가지게 돼.”

(…)

“지구 상의 70억 인구가 조금이라도 껌 조각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껌을 나눈단 말이야. 그러고 나면 이제는 7000억 마리의 쥐 차례가 되지. 쥐들도 다들 조금이라도 껌 맛을 보려고 할 테니까. 이런 식으로 하면 결국 껌 한 개를 나누는 일이 한없이 계속된다는 걸 알겠지?”

아기를 낳는 토끼들의 이야기, 오각형 변의 길이의 신기한 법칙, 교실에 여러 명이 있을 때 어떻게 자리를 바꿔 앉을지…. 둘은 열두 밤 동안 온통 재미있는 얘기들을 나눠.

가장 멋진 부분이 뭔지 알아? 수학귀신의 설명을 외울 필요가 없다는 거야! 듣고 이해하면 그걸로 충분해. 수학귀신은 로베르트랑 숫자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거든. 수학귀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기만 하면 이 수업은 ‘낙제’할 일이 결코 없어. 지난 시험에서 20점을 맞았든, 벌써 중3인데 초등학교 6학년 수학밖에 못하든,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만약 수학귀신이 선생님이라면 어떨까? 적어도 수학 시간이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 물론 우리의 수학선생님들도 아주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을 거야. 수업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교과서 내용은 다 가르쳐야 하지, 학생마다 성적도 관심도 다르지…. 그러니 내일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왜 수학귀신처럼 재밌게 알려주지 않아요?”라고 말하려고 했다면 그만두는 게 좋을걸. 아마 상처를 받을 텐데, 애써 잔인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잖아?


나는 이미 ‘수포자’인데…

숫자 계산을 하려면 '1'만 있으면 돼!

수학 성적이 잘 안 나와서, 학교 수업이 지루해서, 재미없어서, 수학적 사고가 어려워서, 이런저런 이유로 수학을 포기해서 스스로 ‘수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

수학귀신은 숫자가 너무나도 간단하다고 말하거든. 숫자 계산을 하려면 ‘1’만 있으면 된대. 1만 있으면 거의 뭐든지 할 수 있는 거야. 신기한 문제를 한 번 풀어볼래? 수학귀신이 알려준 대로, 1만 가지고 1~9의 모든 숫자를 만드는 법을 보여줄게! 핸드폰에서 계산기를 열어봐.

1x1=?

11x11=?

111x111=?

1111x1111=?

...

111111111x111111111=?

1~9까지의 숫자가 모두 나올 뿐만 아니라, ‘ANNA’나 ‘OTTO’처럼 앞뒤 어떻게 읽어도 같은 모양인 숫자가 나오지. 사실 ‘1’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너는 역사에 길이 남을 수학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1’을 발견한 사람은 수학귀신들의 나라 ‘수학천국/지옥(사실 둘은 같은 거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거든. ‘1’의 개념을 이해했다면 대장 수학귀신의 수업을 따라간 셈이니까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도 좋아.

수학귀신과 만난 열한 번째 밤, 로베르트는 이런 질문을 해. “하지만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 난 모르겠어. 숫자들이 왜 하필이면 네가 말한 대로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거냐고. (…) 그리고 네가 말하는 건 왜 항상 틀림이 없는 거지?” 이 말을 듣고 나도 ‘맞아!’라고 끄덕였어. 수학이 신기한 것도, 재미있는 것도 알겠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되는 걸까? 이렇게 어떤 수학적 원칙을 참이라고 밝히는 걸 우리는 ‘증명’이라고 하지. 아래는 ‘증명’에 대한 수학귀신의 설명이야.

“너는 물살이 센 강을 건너가려 한 적이 있니? 헤엄을 쳐서 건널 순 없어. 물살이 세어서 네가 떠내려갈 테니까. 그런데 강 한가운데 커다란 돌덩이가 몇 개 놓여 있어. (…) 강에는 네가 마음 놓고 디뎌도 되는 안전한 돌들이 수없이 많이 놓여 있어. 너에게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그러니까 어떤 추측을 하게 되면 네가 다음에 밟아도 괜찮은 안전한 돌이 어디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아야 해. 그걸 찾으면 거기로 건너뛰는 거야. 강 건너편의 안전지대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식으로 계속해야 해.”

나는 이 징검다리 이야기가 수학 공부를 설명하는 데 딱 알맞다고 생각해. 수학 공부는 일부러 학생을 괴롭히려고 쓸모없이 느껴지는 계산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야. 우리는 수학이라는 물살이 센 강을 건너는 거지. 내가 아는 여러 지식(ex. 1+1=2)을 활용해서 정답이라는 안전지대에 도착할 때까지 징검다리를 건너는 거야. 만약 건너지 못한다면? 걱정 마. 조심조심 다시 돌아오면 돼. 안전지대에 도착하는 것보다, 징검다리를 디뎌보는 게 중요한 거니까.

책 서평에 이런 글이 있더라. “수학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영리한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마틴 가드너, 수학자·과학 저술가) 혹시 네가 수학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면 이 책을 읽고 수학귀신을 한 번 만나보는 건 어때?

아참, 그리고 부탁이 있어. 오늘 밤 수학귀신이 너를 찾아오면, 내가 많이 고마워하고 있더라고 꼭 전해줘!

end.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1929. 11. 11~

독일 카우프보이렌에서 태어난 작가로 《수학귀신》을 비롯해 《로베르트 너 어디 있었니?》 《달과 달팽이》 《타이타닉의 침몰》 등의 작품을 썼다. 소설뿐만 아니라 시, 에세이,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2010년 유럽 문화 발달에 많은 기여를 했음을 인정받아 ‘소닝 상’을 받았다.



* 이 글은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34호(2020.0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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