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雜썰]조선시대에 길 위에서 공연을?

종묘에서 광화문까지 펼쳐진 다채로운 향연

by 잽이

해외여행에 갔을 때, 혹은 놀이공원에 방문했을 때 퍼레이드를 본 적 있는가? 아름답게 꾸며 놓은 행진 차량들, 춤추며 사람들을 반기는 연기자들. 이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새로운 볼거리를 우리 눈에 담을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심지어 조선시대에 퍼레이드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


조선시대에는 ‘부묘’라고 하는 의례가 있었다. 죽은 선왕과 왕후의 신위를 종묘에 모시는 의식이다. 쉽게 말하면, 차기 국왕이 삼년상을 마치고 선왕(보통은 아버지이다)의 신위를 다른 조상님들이 계신 종묘로 옮긴다고 보면 된다. ‘효(孝)’를 중요한 덕목으로 삼은 조선에서 중요시되는 행사 중 하나이다.

종묘 정전. 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이러한 부묘의는 국가에서 정한 다섯 가지 의례, 즉 ‘오례(五禮)’ 가운데 ‘흉례(凶禮)’의 맨 마지막 절차이다. 흉례는 곧 임금의 죽음부터 종묘 합사까지의 모든 상장례를 포함한다. 이때, 마지막 순서인 부묘의까지 무사히 마쳐야 비로소 삼년상과 흉례 절차가 마무리된다.

조선시대 다섯 가지 중요 의례인 ‘오례’를 기록한 <국조오례의>. 출처: e뮤지엄 / 소장: 국립민속박물관

생각해보자, 왕과 왕후의 삼년상을 치를 동안 새로운 왕을 포함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고생했겠는가. 그러니 마지막 부묘의까지 마치면 삼 년 간의 고생을 축하하고 새로운 국왕을 축하하는 공연이 펼쳐지는 셈이다. 이제 선왕의 시대는 가고 젊고 정력적인 왕을 맞이하며 태평성대를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왕을 맞는 공연은 종묘 밖에서부터 임금이 거주하는 궁궐의 정문까지 연행된다. 임금이 종묘를 나서자마자 마주치는 건 우리가 지금 ‘연희’라고 부르는 갖가지 기예들이다. 아쉽게도 당시에 구체적인 종목들은 알 수 없지만, 고려와 조선시대 비슷한 상황을 기록한 고문헌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그 종목을 살펴보면, 불토하기, 솟대(장대)타기, 저글링, 줄타기 같이 서양의 서커스에서 볼 수 있었던 것부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종목까지 다양하다.

광복 이후 추정, <감로탱화> 중 ‘줄타기’. 출처: e뮤지엄 / 소장: 국립민속박물관

두 번째는 성균관의 유생, 교방(관립기생교육소)의 여기(女妓), 나이 든 고관들이 모여있는 기로소(耆老所)의 신하들이 차례로 가요, 즉 노래를 바친다. 유생들은 종루 앞, 지금의 종각 부근에서 올린다. 여기들은 혜정교에서 올리는 데, 현재 광화문 우체국과 동아일보 사옥 일대이다. 기로소는 호조, 말하자면 기획재정부 역할을 했던 관청 앞에서 가요를 부르며, 현재 세종문화회관에서 바로 옆 공원이 그 자리이다. 특히, 여기들은 ‘교방가요’라고 하여 노래뿐만 아니라 최소 세 가지 정재(呈才, 궁중무용)를 추며, 이동식 산 모양 구조물을 설치했다.

<악학궤범> 중 ‘교방가요’. 여기 100명과 악공 50명 등 대규모 인력과 구조물이 동원되는 공연이다. 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마지막은 궁궐 정문 앞에 산대(山臺)라는 거대한 산 모양 구조물을 세워 놓고 그 앞에서 다시 기예를 공연하는 과정이다. 산대는 실제 산 같이 꾸미는 것이 관건인데, 스님 형상의 잡상과 절 모형, 온갖 산짐승 잡상을 만들어 장식한다. 이 산대는 동양 전설의 봉래산을 형성화 한 것으로, 태평성대의 상징이다. 무사히 선왕의 장래를 치른 새 임금이 다스리는 이 나라가 국태민안(국가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다)이기를 기원하는 동시에 그것을 형상화한 구조물이다.


이렇게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막대한 돈과 물자를 동원해 새 임금을 맞으며 축하하는 과정이 조선의 퍼레이드였다. 물론 이런 점 때문에 일부 왕들은 이를 금지시키기도 하며, 가뭄 등 나라가 어려울 때면 축소하기도 했다. 또한, 국고를 걱정하는 한편, 번잡한 놀이를 구경하느라 임금이 딴마음을 먹을까 신하들이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성종실록>에도 나왔듯이, 이러한 영접 행사는 새로운 임금이 가장 큰 첫 번째 미션을 무사히 끝낸 동시에 비탄에 잠겼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벌였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정치적인 효과도 톡톡이 누렸을 테다. 전설 속 산을 형상화한 거대한 산대, 그리고 유생과 늙은 신하들이 임금을 칭송하는 노래, 여러 진귀한 기예들을 ‘길 위에서’ 펼쳤다는 것. 이는 임금을 둘러싼 화려한 의장들을 눈으로 목격하며, 이 나라가 얼마나 굳건하고 평화로운지 백성들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그런지 때때로는 중요한 제례 의식이나 지방 순행, 역대 임금의 능을 방문하고 나서도 이러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일생에 얼마 없었던 거대하고 화려한 길 위의 공연. 임금을 위한 영접 행사 성격이 짙었지만, 그 주인공인 임금은 유교적 도리 때문에 오랫동안 관람하지 못했다. 대신, 수많은 한양의 백성들은 임금을 직접 볼 수 있는 동시에 진귀한 볼거리를 눈 앞에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임금과 백성이 ‘길’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특이한 조선의 문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