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은 어떤 기준으로 이직을 해야 될까
이직을 고민한 건 벌써 1년 전이다.
퇴사할까 말까를 진지하게 고민한 건 지금이 세 번째인 것 같다.
물론 소소하게 다른 회사를 가면 어떨까, 지금 이직을 하면 어떨까
좋은 자리가 있다면 이직을 해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필요에 의해서 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다.
사실 나는 경력을 가지고 이직을 해본 적이 없다.
총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이 회사가 두 번째 회사이며 3번째로 겪는 조직이다.
이직을 하기 위한 비교 대상이 전 직장, 혹은 전 부서였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직을 결심해야만 하는지 아직도 혼란스럽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세 번 이상 한다는 것은,
지금 이직을 해야 된다는 시기이고, 지속적으로 드는 이 감정을 그대로 무시해버린다면
훗날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혼자서 모든 결정을 내려도 좋은 시기일 때,
취업 시장에서 3년 차. 5년 차가 이직하기 좋은 시기이니까.
한 번쯤은 도전해봐도 좋지 않을까.
앞으로의 미래가 두려워 가만히 있는다면,
몇 년 후 가만히 있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나지 않을까.
그래서 이직을 해야 되는 나만의 이유를 정리해 보았다.
1.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전부터 새롭게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가지 시도하고 일을 벌이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일이 없어서 노는 것보다 바쁘더라도 이것저것 배워가면서 한 단계씩 계단을 밟아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지금은 성장하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일을 벌이고 싶은데 마케팅 예산이 없고, 신사업이라 수익이 얼마큼 나기 전까지는 회사에서 그만큼 예산을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소극적으로 해왔던 종류의 마케팅만 하게 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2. 방향성이 없다.
마케팅을 하려면 한 가지 방향성이 있어야 되는데,
자꾸만 위에서 방향이 바뀐다.
앱 마케팅은 전담 개발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얼마 전 팀에 개발자 티오가 사라지면서
기획하고 개발해야 하는 선순환 과정이 깨져버렸다.
이제 개발을 하려면 다른 부서에 협업을 요청해야 하는데, 회사에 팀이 많아서 개발 요건을 정의하고
실제로 진행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장 머릿속으로 그려놓은 마케팅 방안을 실현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자꾸만 위에서 사업의 방향성이 바뀐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A : 간편 결제 기능을 붙이기로 하자.
B : 그건 개발 리소스와 시간이 많이 들어서 지금 할 수는 없어.
A : 추천인 제도를 만들어 마케팅 활성화를 해보는 건 어떨까?
B : 그건 마케팅 예산이 부족하고, 회사에서 그만큼 예산 지원이 안 되니까 보류하기로 하자.
방향이 없어서 도돌이표만 계속 찍는 기분이다.
3. 이전 업무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사실 나는 신사업 서비스의 마케팅을 하기 이전에,
다른 서비스의 마케팅 업무와 일부 운영 업무를 담당하였다.
처음 들어올 때는 마케팅 업무로 들어왔지만, 운영 업무가 생각보다 많아서 겸직하듯이
다른 운영자가 메인으로 일을 하고 나는 서브로 지원을 했다.
처음 일할 때는 저 연차라서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업무를 경험하고, 운영도 해보면서 시스템을 익혀두는 것이 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 있는 팀에서 장기 근속자가 되었고(4년 차)
이전 운영 담당자가 나가고, 팀이 확장되면서 운영 전담 2인을 뽑게 되었는데
문제는 바로 기존 운영 업무를 경험해본 사람이 나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타 부서에서도, 우리 부서에서도 뭔가 어려운 일이 나오면 내게 물어본다.
물론 직무가 바뀌어도 이전 담당자로써,
어떻게 풀어나갈지 방법을 얘기해주는 역할까지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데
자꾸만 그 문제를 내가 해결하게끔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운영 담당자가 모른다고 하면, 봐줘야 하고.
재무팀에서 문의가 들어오면, 모른 체할 수도 없고.
가끔 나도 모른다고 소리치고 싶지만, 회사에 오래다닌 사람은 모든 걸 알아야만 한다는 것처럼
무슨 일만 생기면 "OO씨에게 물어봐." 라고 하는게 지긋지긋하다.
내가 지식인도 아니고, 가끔은 "저도 자세히 봐야 알아요."
그건 "고객사와 협의를 해야하는 문제에요."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결과론적으로,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저기요, 그 업무는 제가 담당자가 아닌데요."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스멀스멀 들어오는 일들을 뿌리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요청을 하면 매몰차게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4. 피드백을 얻을 대상이 없다.
일을 하다 보면, 이 방향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딱히 물어볼 사람이 없다.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해서, 사수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쑥쑥 커가고 싶은데 그걸 봐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서비스의 마케터 선임분이 계시고 조언을 들을 수는 있지만
같은 업무를 하지 않는 상황이라 실제 하는 업무에 대해서 같이 협의를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업무에 갈증이 생긴다.
내가 하는 게 맞는 건지 보고 배우고 싶은데
이 길이 맞는지 틀린 지 피드백 대상이 없다는 건 참 답답한 일이다.
물론 장점이라면 내가 기획한 일을 자유롭게(다만 예산과 시스템이 허용하는 선에서만)
실행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가끔은 같은 조직이지만, 개인 사업자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내가 누군가의 선배로써 조언을 해 줄 나이가 되기 전에
얼른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고 경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5. 자꾸만 이직 생각이 떠오른다.
위의 논리적인 이유를 제외하고서, 그냥 문득 이직 생각이 떠오른다.
이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다.
이전에는 이렇게 들려오는 소리를 애써 참아냈다.
"그래! 3년 차 이후에 승진을 하게 되면 그때서야 이직을 생각해보자."
"여름휴가는 지나고 옮기는 게 나을 거야."
"명절은 지나고 옮겨야지."
"벌써, 연말이라 정신없는데 내년에 생각하자."
"연말정산은 끝내야겠지."
"곧 연봉 협상하는데 올리고 나가는 게 이득이지."
그러다 보니, 고민하는데 1년이 지나갔다.
몇 번 이직을 할 뻔한 계기가 있었다.
업무 R&R이 엉망이라 일에 지쳐 폭발했던 작년 11월의 어느 가을날.
후임과 부딪히고 사표 내려고 마음먹었던 올해 2월.
(결국 코로나 때문에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렇게, 그냥 시간은 흘러만 갔고. 2020년의 상반기는 코로나와 함께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하반기를 준비하는 이 시점,
다시금 이직 생각이 떠오른다.
이제는 더 이상 마음의 소리를 눌러버릴 수가 없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이력서를 구직사이트에 올려 헤드헌터의 제안도 받고
내가 가보고 싶었던 회사, 도전해보고 싶었던 직무에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보려고 한다.
일단, 고민은 붙고 나서 하련다.
원하는 곳이 나올 때까지 움직여 봐야겠다.
지금이 경력직으로써 이직해야만 하는 시기인 것 같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 보자. 그러다 보면 다시 길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