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일기 4장, 여직원의 시선에서 본 남성 조직문화
원하든 간에, 원치 않았든 간에 나는 우리 부서의 홍일점이 되고 말았다.
입사 후 1년이 지나기까지, 여직원이 한 명도 안 들어올 줄은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직원이 들어와 삼삼오오 짝을 이루며 커피 한 잔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의 난, 삼삼오오 짝을 이루며 술을 마신다.
남자들만 있는 조직에 1년간 몸담고 있다 보니, 이 세계가 꽤나 흥미롭다는 걸 느꼈다.
그건 여자들만 있는 세계에서 지낼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도 있듯이,
여자와 남자는 근본부터 다르며, 여자의 조직과 남자의 조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가끔, 이 집단에 있다 보면 내가 점점 남성화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든다.
부서 특성상 남자들이 많은 조직이고, 거기다 신입은 나 혼자다.
다들 팀장급에 높은 계급장을 달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팀장이라고 권위의식을 가진 일명 "꼰대"는 없다.
적어도 여자 팀원인 내게는 잘해주는 편이다.
하여튼 이 역피라미드 조직에서 나는 어떻게, 반년이 넘도록 잘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내가 그동안 느낀 남자들의 조직문화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맨날 술이야
아니, 무슨. 맨날 술이다.
별 시답잖은 이유를 붙여 맨날 술이다.
다 같이 같이 가는 회식을 제외하고도, 가끔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시러 가는데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어쩌다 보니, 나도 하루 건너 술이다.
지난주에는 월, 수, 금 모두 술. 술. 술로 일주일을 마무리했다.
다시 말하겠지만, 이 술자리 또한 강압적인 분위기였다면 나는 못 버텼을 것이다.
다행인 건, 사람들이 좋은 편이라 술자리가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삼삼오오 모여도 너무 잘 모인다.
사실 여자들은 아무리 친해도, 회사 끝나고 그리 자주 모여 술잔을 기울이지 않는다.
술을 정말 좋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저녁 한 끼에 커피 한 잔 정도?
그래서 여자들의 가계부엔 only '술'을 위해 지출해야만 하는 계정이 없다.
어쩌다 한 번, 술을 마시고 돈을 낼 수는 있지만 그 계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여자들 중에서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제외한다.)
반면, 화장품이나 옷에 사용하는 계정은 굉장히 여유로운 편이다.
사실 거기에 지출하는 돈은 그리 아깝다고 여기지 않는다. 근데, 이상하게 술에 쓰는 돈은 아깝다.
저번 주는 영업부에서 계약을 했다는 이유로,
중국과 축구를 한다는 명목으로,
한 팀장의 기분이 우울하다는 이유로,
갖가지 독특한 사유로 술을 마셨다.
가끔은 술을 마시기 위해 없는 이유를 일부러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늘어나는 술자리에 주요 선택권은 삼겹살, 족발, 전집. 어딜 가든 지방 한가득 들어간 음식.
술자리가 많이 생기다 보니, 점점 맞던 옷도 꽉 끼여가는 듯하다.
매번 월요일마다 다이어트를 결심하는데, 월요일마다 술자리가 생기니 작심삼일도 못가 하루로 끝난다.
회사 워크숍으로 캠핑이라
"다들 캠핑 좋아하나?"
"네 좋아합니다."
본부장이 물었다. 각 팀의 남자 팀장들은 다들 좋아한다고 말했고,
나도 마지못해 "한 번도 안 해보긴 했지만 재밌어 보이네요. 하하" 하고 대답했다.
설마, 인원도 몇 안되는데 캠핑을 갈 줄 몰랐다.
점심시간에 툭 던진 본부장의 질문이 시초가 되어, 그 해 단합 워크숍은 인천 국제공항 옆 무의도로 정해졌다. 무의도가 무인도로 느껴질 만큼, 가기 전부터 혼자 뚝 떨어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단언컨대, 1박 2일을 가장한 여행은 모름지기 가족과 혹은 친한 친구와 가는 게 맞다.
아무리 편하게 하자는 회사 워크숍이라도, 일단 계급이 들어있는 조직에서 워크숍을 간다는 건 그 자체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일 뿐이다. 어쩌면 돈 내고 워크숍을 가서 스탭을 자처하는 꼴이랄까.
게다가 아까도 언급했지만 나는 부서의 유일한 홍일점이라,
혼자 캠핑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불편했다.
그건 남자가 혼자 여자들만 있는 집단에서 어디 놀러 가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좋아하려나?)
아무튼, 이상하게 어느 순간 기 빨리는 게 있다. 그냥 그 분위기, 묘한 남자들만의 기싸움도 있고,
그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하는데, 그것도 굉장히 어렵다.
어쨌거나 워크숍 날짜는 다가왔고, 금요일 오후 우리는 무의도로 떠났다.
다행인 것은, 팀 워크숍이었지만 부부동반 플러스 아이 동반이 가능하여 본부장님과 팀장님 몇몇은 가족을 데려오셨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자칭 캠핑장비 수집가셨던 본부장님은 집을 한 채 지을 정도의 캠핑장비를 차 한 대에 빵빵하게 실어 가져오셨는데 문제는 그 누구도 본인의 장비에 손을 못 대게 하셨다.
그 덕분에, 캠핑 장비를 치는데만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렸고 캠핑을 위한 집을 짓는데만 꼬박 반나절이 지나가고 말았다.
저녁 한 끼를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어디서 자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다행히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1인 텐트를 마련해주셔서 거기에 들어가 잤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아침, 다시 아침을 해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는데
역시 캠핑은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단란하고 오붓하게 보내야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낯설다.
단적인 예로 남자들의 문화란 은연중에 자존심과 기싸움이 있다.
특히 우리 부서는 최 상급자의 나이가 바로 밑 팀장보다 나이가 어린 경우라 그런지,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직장은 나이순이 아니라 직급 순이다 보니 은근 기싸움이 많다.
정말 남자들만 있는 집단에선 말을 좀 세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군대를 다녀온 경험이 다들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상급자가 하급자를 혼낼 때, 회의실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도 그냥 소소한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나눌 수 있는 동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본 드라마는 어떻고, 어제 본 영화는 어떤지를 조잘조잘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했다. 남직원들은 중간중간 옥상에 올라가 담배도 피우며 얘기를 나누는데, 그것도 거의 20분 넘게 자리를 비운다.
그렇다고 담배를 안 피우는 내가 옥상에 쫄래쫄래 따라가기도 참 뭣하다.
하지만 왠지 내가 20분 넘게 자리를 비우면 그건 또 이상한 행동처럼 보인다.
결과로 따지면 똑같은 건데. 근데 남자들은 담배를 피우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술자리와 담배를 피우는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는데, 가끔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진다.
타 부서 동기들과 같이 공유할 수 없으니, 가끔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남자 친구한테 쏟아놓는데
위로는 해줘도 구체적인 상황을 모르니 백 퍼센트 공감할 순 없다.
그렇다고 팀장급 되는 분들과 나의 고민을 오롯이 내놓을 수도 없다.
나이차가 안나는 다른 직원과 얘기하기도 뭣하고. 이런 얘기는 절대 다른 직급의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가 없다. 같은 팀의 나이차가 안나는 팀원과 할 수 있는 얘기가 따로 있는 법이다.
그래서 가끔은 답답하다. 대나무 숲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막 소리 지르고 나면 다 사라질 수 있게.
16년 8월의 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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