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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니 Aug 02. 2019

퇴사 후 6개월,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무엇을 하였나

직장인 일기 3장, 누군가는 공백기라 말했지만 내게는 휴식기였다

첫 회사를 1년 남짓이 지나고서야 그만두었다. 회사를 그만둬야 생각했던 건, 6개월이 지나서였다.  회사에서의 첫 3개월은 인턴으로 지내며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정직원이 되자, 이왕 처음 시작한 사회생활 1년은 무조건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맞던 안 맞던, 버티는 게 사회생활이지!"라고 생각했다. "회사 들어간 지 몇 달 안돼서 그만두고 나오면 앞으로 사회생활 제대로 못한다"라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 갇혀있었던 걸까.

남들이 그러듯이, 그냥 버티는 게 사회생활의 시작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버텼다. 1년 2개월!



위로금 같은 퇴직금을 받고 날이 화창한 가을 퇴사를 했는데,

정말 플랜 B 없이 무작정 퇴사해서 다시 직업을 찾기까지는 약 6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은 6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퇴사 후 100일간의 기록
(2015. 10 ~ 2015.12)



퇴사를 하고 가장 좋았던 건 내가 번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눈치 보지 않고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거였다. 회사 다닐 때도 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땐 저축을 해야 된다는 생각 아래 쉽게 돈을 쓰진 않았는데 퇴사를 하고 나선 나 자신에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20대를 더 값지게 보내고 싶었다.



적금을 깼다.


이렇게 빨리 적금을 깰 줄은 몰랐다. 퇴사하고 한 달 남짓이 지나자, 적금을 깨고 말았다.

더 이상 돈이 들어올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퇴사를 하면 으레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한 때 미래를 꿈꾸며 통장을 만들던 그 순간을 생각하니 살짝 가슴이 아려왔다.

적금을 붓기 시작한 건, 취업 후 6개월이 지나서였다. 초반 6개월 동안은 가족과 친구를 위해 쓰고 휴가를 내고 여행도 다녔다. 그러다 1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6개월 차부터 붓기 시작했다. 많음 금액은 아니었으나 3년 정도 모으면 어느 정도 스스로 시집갈 밑천은 마련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돈이 나가도 흡족했다. 통장을 만들 땐,  이 회사에 2년은 다겠지 라는 생각에 "1년 말고 2년이요"를 불렀건만. 결국 7개월 후에 깨질 돈이었다니. 역시 사람의 앞날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적금을 깨고 나니, 수중에 돈이 참 많았다.

그동안은 일하느라 정신없이 살아서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쓰기로 했다.

참 오랜만이었다. 나를 꾸미고, 나의 취향을 반영한 물건을 마음대로 사는 게.

사실 당장의 눈앞에 보이는 미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은 나를 좀 더 사랑하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 과감히 투자하기로 했다.



사랑을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말을 아끼고 점점 작아져만 갔다. 내 인생에서 그때만큼 자존감이 낮아졌던 시기가 또 있었을까. 처음 겪었던 사회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다. 그 길을 위태롭게 걸어가는 동안 아무도 나를 잡아주지 않았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밤, 텅 빈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데 왈칵 울음이 나왔다.

그래서 회의실로 들어가 조용히 숨을 죽이고 울었다.

"이대로 일만 하다가 조용히 관에 갇혀 죽을 것만 같아."

한 번도 그렇게 지독한 외로움을 겪어본 적이 없었는데, 너무 무서웠고 두려웠다.

일만 하다 죽을 것만 같은 기분. 그건 해본 사람만이 안다.



사실 나는 꾸미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보통의 여자들이 머리 모양을 바꾸고, 네일 아트를 하고, 피부관리숍에서 관리를 받을 때

"아 그렇구나. 그런 것도 있구나." 그저 남일처럼 여겼다.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하루를 지탱하기보다는 비교적 발이 편한 운동화를 택했다.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출근길을 버티기 위해, 굳이 피곤함을 감수하고 나 자신을 예쁘게 치장할 생각을 못했다.



문득 돌아보니, 나 자신을 꾸미지 않고 이대로 20대 중반이 흘러가버리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며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을 했다.

네일아트도 받고, 머리도 바꾸고, 피티도 받아 살도 빼고, 그에 걸맞은 옷과 신발도 샀다.

통장 잔고는 줄어들었지만, 퇴사를 결심하면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이상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길 바랬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야."

 - 책 어린 왕자 중에서



기적인 줄 알면서,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무슨 떼돈 버는 것도 아닌데, 일만 하다가 관에 묻히기 싫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래서 퇴사를 했고, 10월의 어느 가을날. 기적을 만났다.

그 해 가을은 떨어지는 낙엽조차 아름다웠고, 가만히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것조차 행복했다. 사랑을 하면서, 한없이 떨어져 있던 자존감도 회복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꾸미고 아낄수록 자신감도 생기고, 다른 사람도 나를 좋아해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부를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학생일 땐 얼른 일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직장인이 되니 다시 배움의 열망이 생겼다. 그동안 배워보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했다.

정부 지원으로 내일 배움 카드를 만들고, 컴퓨터학원을 등록해 포토샵과 프리미어를 배웠다.

쉬면서 앞으로 무얼 하며 먹고살지 고민을 했다.

요즘은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학교에서 배웠던 영어와 중국어를 쓸 수 있는 회사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12월이 될 무렵, 몇 군데 이력서를 냈다.

운이 좋아 서류 합격이 되고, 면접의 기회가 생겨 3개월 만에 다시 직장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는 떨어졌고, 그냥 한번 넣어본 회사는 붙었다.

그런데 지난번처럼 그냥 넣어본 회사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역시나 다시 보니,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달랐다. 그래서 3개월이 지나고, 나는 다시 돌취생이 되었다. (돌취생=돌아온 취준생)


Photo by Liam Burnett-Blue on Unsplash





 퇴사 후 100일이 지나고
(2016.01~2016.04)


지금 와서 고백하건대, 퇴사 후 100일이 지나자 지난 3개월 간이 아득해지는 것처럼

다시 취준생이 되어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경력 없이, 다시 신입으로 취업 준비를 한다는 건 역시나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1년 2개월은, 역시나 이력서에 쓰기에는 뭣한 '그깟 1년'일뿐이었다.



시험을 쳤다.


한 해의 시작을 토익책과 함께 시작했다. 토익의 유효기간은 2년. 처음 회사를 들어갔을 때, 토익은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문제집도 버렸건만. 다시 빨강이와 파랑이를 안고 강남 한복판을 거닐었다. 강의실은 각자 저만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아침 일찍 모여 북적거렸다. 꽉 찬 강의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고, 대학생과 취준생이 섞이는 그 해 겨울의 강남 거리는 유난히 큰 배낭을 메고 있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그렇게 1달은 바짝 토익 점수를 만들고, 나머지 1달은 HSK 6급 자격증을 갱신했다. 그리고 마지막 2주는 오픽 시험을 쳤다.




내가 가고 싶은 회사에 서류라도 넣어보기 위해,

"내가 어떤 사람이에요"라고 알리는 글을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관문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어학점수였다.

내가 누군지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득 찬 빈칸을 채워야만 했다.



경험을 팝니다.


지나온 세월이 짧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자소서를 쓰기에 내가 경험해 온 것들이 그저 보잘것없이 가벼워만 보였다. 자소서 항목을 그럴듯하게 채우기 위해서,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어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첫 번째 문제, 인생을 살면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노력한 경험을 쓰시오.

그나마 이 정도는 무난한 문항이었다. 굳이 내가 히말라야를 올라갔다거나 하는 극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공모전이나 조별 프로젝트에 적당한 양념을 친다면 그럴듯해 보이는 이야기가 나왔다.



자소서를 쓰기 위해 나는 경험 노트라는 걸 따로 만들어 두었다. 이 경험 노트는 내가 그동안 살아온 인생 중 회사가 원하는 가치, 이를테면 도전과 협업, 정직, 나눔 등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내 경험을 녹이는 작업이었다. 도전이라는 항목이 나올 때면 중국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소수민족을 만난 한 달간의 중국 여행기를 적곤 했다.



두 번째 문제,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쓰시오.

독창성을 평가하는 문제였다. 나만의 창의성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

하지만 어떤 경험을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혀 남이 쓴 자소서를 슬쩍 엿봤다.

"저는 OO매장 매니저로 근무했는데, 유독 우리 지점의 수익이 낮다는 걸 알고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서 대안을 제시했어요. 그 결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바로 매장 매출이 2배가 늘어났다구요!"

어떤 액션을 취했는는 모르겠지만, 다들 자기가. 매출을 늘렸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생이 늘려봐야 얼마나 늘렸을까. 왜 모두들 이런 스토리를 하나쯤 가지고 있는 걸까.



자소서를 쓰는 동안에는 없던 경험이라도 만들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남들처럼 창업을 하거나, 온라인에서 물건이라도 팔아야 할까.

자소서를 쓰기 위해 경험이라도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은 취준생의 감정을 다시 느끼며,

취업을 하기 위해 경험을 만들어내야 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Photo by Nick Morrison on Unsplash



조급함이라는 감정


시험을 치고, 자소서를 쓰고, 인적성을 보았다.

하나의 관문을 지나면 다른 관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지원한 곳 중 어떤 곳에서 나를 불러줄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회사를 다닐 때, 재 취업한 사람이 있었다. 그땐 정말 이해가 안 됐다.

"아니, 싫다고 뛰쳐나간 회사를 뭐하러 다시 들어와?"

그러나 퇴사 후 6개월이 지난 후, 약간은 그분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아무리 회사가 뭣 같아도 막상 나와서 준비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경력직이면 갈 데가 많았겠지만, 다시 신입의 위치에서 시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는 자꾸 기회비용이라는 걸 생각했다.

"내가 만약 취업준비를 미루고, 더 경력을 쌓으면 어땠을까?"

결국 그 순간이 되었어도 '퇴사'라는 카드를 선택했을 테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감정에 쉽게 휩쓸린다.

조급함은 금세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하루를 열심히 사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 방황하기도 한다. 그래서 취준생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될 때까지 도전해야 한다.

회사원일 때는 마냥 백수가 부러웠는데, 막상 백수가 되고 시간이 흐르면 회사원이 부러워지는 순간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쓴다. 회사원일때의 기록과 백수였을 때의 기록을 보며,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록만이 잊혀진 기억을 붙잡아 줄 수 있으니까.



그렇게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재 취업 전 마지막으로 일주일간의 여행을 다녀온 뒤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그때 써놓은 일기장을 보며, 4년이 지난 지금. 한없이 어렸던 신입사원인 내 모습을 기록해 보았다. 그때 만약 내가 3년 차 정도의 경력직이었다면, 굳이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부터 시작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원으로 일한 그 1년은 긴 인고와 배움의 시간이었지만,

다시 취업을 준비하는 그 6개월은 누가 보기에 그저 공백기일 뿐이었다.

그 시간은 내게 의미 없는 공백기가 아니었다.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던 휴식기였고,

다시 도전해볼 수 있게 만들어준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때 퇴사를 한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앞길은 분명 불투명했지만,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시기였다.

인생에 한 번쯤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방황할 수 있는 시간들이 필요다고 본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들과 노력들이 쌓여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니까.



누구나 선택의 순간이 온다.

중요한 건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고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도전해보는 것.

시간이 지나고보면 그때의 선택들이 하나의 점이 되어 결국 하나의 선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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