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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니 Jul 25. 2019

갑과 을의 상생관계

직장인 일기 2장,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것은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것은,
갑과 을의 상생관계속에 치고박고를 반복하며 돌아가는 시스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어느 한 편은 갑이 있고 또 다른 한 편에는 을이 있다.
어느 순간 나는 갑이 되고, 또 어느 순간 나는 을이 되기도 한다.
만나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서,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을 필요한가에 따라서 갑과 을의 위치는 정해진다.



으레 돈을 쥐고 있는 자가 갑이되곤한다.

자본주의의 논리속에 '돈'은 서열을 단박에 정해버리는 유일무이한 잣대가 되어버린다.
누가 돈을 대서, 그 비즈니스를 만드는가. 그 돈으로 각종 영업이익을 만들어내면서, 
최대한 회사의 기여를 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업이익이 회사에선 다음 해에
승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하고, 연봉협상의 근거가 되기도하니까.
점점 직장인의 삶에 녹아들면서 나는 진지하게 갑과 을의 상생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 성격상, 나는 갑질하는거에 익숙지 않다는 사실을 얼마전에 깨달았다.
여기서 갑질이란 정말 얼토당토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것도 아니며,
사회적 윤리와 규범을 벗어나는 행동도 아니며, 
그저 돈을 쥐고있는 '갑'의 위치에서 '갑'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끌어가는 것을 뜻한다. 사실 갑의 위치에서 행동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단어로 표현하는게 좋을지 모르겠다.

이미 '갑질한다'라는 용어는 사회 통념상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



갑질 말고 갑으로 행동하는 법



나는 회사에서 마케팅 직무를 맡고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어쩌다보니 마케팅 대행사를 써서 같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계약서를 쓰기 직전 몇가지 문제에 부딪혔다. 직접 업체를 컨텍하고, 계약서를 쓰고, 내가 직접 뺄껀 빼고 주도해 나가는 일을 처음 맡게 되었다. 어쩌면 그 전 회사에서 전혀 그런일을 해보지 않아서일수도 있겠다.




첫 번째 회사에 다닐때는, 그저 시키는 일만 했다. 거기서는 내게 무언가 선택을 하고, 배울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키는 일이란 정말, 몇일이면 충분한 단순작업에 불과했다.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었지만, 그 때 그 부서 분위기상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이 회사에서는 시키는 일보다, 내가 직접 만들어서 일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이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이전까지는 분명 시키는 일만 했는데, 왜 일을 만들어서 해야하는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더 문제는 무슨 일을 만들어서 해야할지 몰랐다는 것이다.
내가 맡은 업무의 프로세스, 즉 전 과정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는 무슨 일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게 맞는건지 헷갈렸다. 그래서 나는 일을 벌려놓고, 바로 위 선임에게 물어보기를 반복했다.






이번에도 스스로 일을 만들고, 진행해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처음에 업체와 미팅했던대로 가는게 아니라, 중간에 예산이 변경되어 기존 예산보다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을 회사의 명분을 들어 조리있게 말해야 하는데, 명분있게 말하는 스킬이 없었다.
트리플 A형의 성격 탓인지, 그냥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도 싫고, 그 상황에 내가 있기도 싫었나보다.
그래서 갑자기 바뀐 환경에 화가 났다. 그리고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여 내가 담당자로 진행해야 한다는것도 큰 부담이고 스트레스였다.



그 때, 처음에 받았던 견적에서 5번이 넘게 수정이 들어갔다. 

첫 미팅 때는 나와 선임이 같이 참석했다. 

"2억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제품 출시 마케팅 플랜을 만들어 오세요."

그 때, 우리 팀은 신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할당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왜 예산도 없는데, 2억을 부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2억짜리 플랜을 받고나서는, 1억 5천을 불렀다.

그리고 나서 다시 1억, 5천, 3천 이렇게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확정된 3천짜리 예산으로 진행하였는데, 그 때 처음으로 항목을 하나씩 비교하며 단가를 낮추는 법을 배웠다. 무엇이 중복되고, 어떤 것이 뺄 수 있는 비용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선임이 갑질한다고 생각했다.

한번에 일을 처리하면 되지, 두세번 헛일 시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번의 견적 수정을 받고나니 처음 가져왔던 2억 예산의 플랜에 터무니없이 책정되어 들어가있는 항목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그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마케터라 그렇게 준 것일수도 있겠다.

그래서 갑과 을 사이에도 서로 밀고 땡기는 협상이 필요한 것 같다.








회사에서는 사실 '명분'있게 말하고 행동하는게 참 중요하다.

그 명분이란, 그렇게 행동할만한 적당하고 논리적인 이유를 뜻한다.
애초 사업계획의 영업이익 목표를 줄인다고 하면, 지금 시장상황이 이렇게 나쁘기 때문에
이정도로 사업계획을 수정한다는 구체적인 근거와 논리가 필요하다.
그냥 "이거 해주세요."라는 투정이 아니라, 현재 상황이 이러하니 방향을 이렇게 바꾸겠습니다.
상대방도 인정할만한 명분. 그게 있어야 서로간에 협의가 된다.





비즈니스는 각자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각자 누군가에게는 갑이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을이 되기도한다.
그리고 갑과 을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지만, 
각자 원하는 이익과 목표치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함께 일을 할 수 없다.





일을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항상 내가 생각하는것과 회사가 생각하는 부분은 다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때론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여야 할 때도 많다.
회사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상대편과 계약서 몇 몇 조항을 근거로 바꾸고 빼는 협의과정이 필요하며
정해진 예산에 맞추어, 치열하게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유두리있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단련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P.S. 이 글은 2017년 3월 기록을 재구성하였습니다.

Photo by dylan nolt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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