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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쌤 Nov 04. 2021

영화가 알려주는 '나' 사용설명서 (욕구와 결핍)

커리어 방향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내면아이

우리는 새로운 사람에게 호감을 건네는 표현으로 좋아하는 음식이나 영화, 여행지에 관해 물어보곤 한다. 짧은 몇 마디를 통해 상대방과 나의 공통분모를 찾아 ‘우리’라는 이름으로 안정감을 얻기도 하고, 중요한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데 단서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한 사람의 취향과 세계관, 관심사와 결핍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매체 중 하나이다.


나도 사람들로부터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인생 영화로 손꼽는 작품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조 라이트 감독의 「오만과 편견」과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라고 대답했었다. 두 편의 영화만 본다면 나를 해외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피가 낭자한 장면이나 귀신, 좀비가 나오는 영화는 예고도 못 보는 겁 많은 사람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나도 스스로 ‘나는 그런 사람’이라 오해했었다. 손으로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어 기록해 보기 전까진 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인생 영화’라 손꼽는 작품들을 모두 기록하고 영화들의 공통점들을 찾아보길 바란다. 나도 몰랐던 숨은 취향과 무의식에 숨어 있던 결핍과 어린 시절의 몇 개 조각들이 떠오를 것이다. 다음 영화는 나에게 오랜 시간, 잔잔한 울림과 잔상으로 남아 있는 작품들이다. 영화의 공통점이 보이는가.


수현쌤의 인생 영화 포스터


눈에 띄는 특징은 국내 작품보다 해외 작품의 비중이 크고 유독 ‘시간여행과 죽음’을 다루는 영화가 많았다. 나는 전공으로 일어학과를 고민할 만큼 일본에 관심이 많았는데, 정작 좋아하는 영화에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 작품만 남았다는 점이 의아하다. 국내 작품은 전반적으로 시대물과 역사극을 선호했고, 쓰고 보니 상당수 이준익 감독의 작품이었다. 「김씨표류기」와 「플랜맨」처럼 트라우마라는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고 신선하게 풀어내는 작품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나는 왜 ‘시간여행과 죽음’이라는 화두를 갖게 된 것일까. 상담학에서 사용되는 '내면아이'의 관점으로 나를 살펴보고자 한다.



내면아이

- 한 개인의 정신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하는 아이의 모습

- 어린 시절의 주관적인 경험을 설명하는 용어로서 한 개인의 인생에서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다. 뇌 속에 저장된 어린 시기의 기억은 개인의 정서에 관련된 기억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경험적 자원이다. 이미 성인이 된 각 개인의 내면에는 과거의 유아기적 모습이 모습이 남아 있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내용은 정신세계 속에 남아 현재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상담학 사전)



서른다섯 살 나에게는 몇 개의 생생한 어린 시절 기억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여섯 살 유치원에 찾아온 이모 손을 잡고 아빠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날의 기억이다. 그날 내 눈에 들어온 풍경, 대화, 감정들이 이십구 년이 흐름 지금까지 여전한 걸 보니 어린 나에게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였나 보다. 고모가 흑백 영정사진 앞에 앉아 훌쩍거리던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건네신 한 마디.


“이 어린 게, 지 아빠 죽은걸 아나 보네.”


그때부터 본능적으로 죽음이라는 사건과 시간의 유한함이 내 삶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 더 빠른 성공, 안정적인 생활, 효율적인 시간 관리에 목숨을 걸고 일에만 매달렸던 것이 여섯 살 꼬마가 겪은 경험으로 비춰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이렇게 앉아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글을 쓰고 전달하려는 노력 역시, 같은 맥락으로 충분히 해석된다. 어느새 이 일은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가진 소명과 사명이 되었다.



내가 ‘죽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 일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 조금 더 깊고 넓어졌다. 이런 점에서 나의 무의식 속에 숨은 나를 만나고, 생애 전반의 커리어 방향과 일을 대하는 태도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 글을 계기로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이제는 괜찮다’고 ‘지금까지 너무 잘했고 고생 많았다’고 진심을 다해 용서하고 위로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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