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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0초 리뷰

[도을단상] 엄마 남극 갔다 왔어 잘 지냈니

사람은 온혈동물이다

by 도을 임해성

[도을단상] 엄마 남극 갔다 왔어 잘 지냈니

친구의 여사친이 지은 책입니다.

엔지니어가 쓴 글이 딱딱하다면,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글은 차갑고 건조하군요.
사람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냉철하게 무언가를 판단하고 능숙하게 무언가를 실행해야 하는 사람이 다루는 문장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이 보여 주는 표정을 따라 그 의미를 캐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찰흙 덩어리를 잘 베어내고 도려내듯이 감정을 배제하고 도려낸 글이 아니라, 정교한 금형으로 찍어낸 것처럼 애초에 군더거기나 뭉툭한 부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함과 차가움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간결하고 건조한 데 비해, 사물이나 위치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치밀하고 정교합니다. 누군가가 다가오기를 꺼리면서도 누군가가 다가와 주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엿보이는 것일까요.

남극을 갔다 왔다는,
그것도 여성이 남극을 갔다 왔다는,
나아가 아이를 둔 엄마가 남극을 갔다 왔다는, 사실에 대한 값싼 호기심으로 시작된 독서였습니다만, 그 냉랭함과 건조함 속에 싹트는, 혹은 원래 거기 심겨져 있던 씨앗과도 같은 믿음, 소망, 사랑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고 할까요.

떠남은 언제나 돌아옴을 위한 것이라는 제 여행관과 맞닿는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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