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통신기업의 임직원들을 모시고 일본 시코쿠에 있는 넷츠도요타난고쿠(참고문헌: 회사의 목적은 이익이 아니다) 라는 기업을 벤치마킹했을 때의 일이다.
조직문화와 고객만족을 테마로 한 벤치마킹이었는데 시코쿠에 있는 기업을 방문하기 위해 항공편이 있는 타카마츠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을 비롯한 안도타다오의 건축물을 둘러보는 인사이트 투어를 마련했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 작품들을 품은 나오시마는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여행전문지 트래블러에서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세계7대 명소로 꼽힌 장소인만큼 우리 기업의 임직원들에게도 커다란 인사이트를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의 건축물은 25년간 글로벌 우수기업에 대한 벤치마킹의 외길을 걸어온 나에게도 커다란 인사이트를 주었다. 그야말로 어둑어둑한 공간 속에서 모퉁이를 돌아나와 느닷없이 한 줄기 강렬한 빛다발을 마주했을 때의 바로 그런 깨달음이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과 건축물은 이성적 추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통해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신체를 통한 , 건축적 경험은 그 건축이 속한 역사, 문화, 풍토, 기후,지역성,도시성 등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구체적인 공간에서 더욱 더 분명해진다고 강조한다. 장소를 구체화시키는데 성공한 건축물은 신체의 기억 속에서 공간에 대한 경험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는 지각의 주체자로서의 인간의 신체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빛, 바람, 비와 같은 객체자로서의 자연의 움직임도 건축의 현상학적 경험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건축적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전개하려는 의도에서 지극히 단순화시킨 기하학적 건축 공간의 형태를 도입하고 복합적인 공간을 구성 하는 설계의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즉 자기 완결적이고 기하학적인 정적인 공간은 동적인 존재인 사람과 자연의 움직임이 개입될 때 비로서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 살아나서 유동적으로 변화되며 바로 이 때에 순회하는 관찰자의 눈에 다양한 관점들로 이미지가 중첩되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안도 타다오의 세계관은 벤치마킹의 세계관과 많이 닮았다. 이 책에서 다루려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란 측정의 기준이 되는 대상을 설정하고 그 대상과 비교 분석을 통해 장점을 따라배우는 행위를 말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업 경영 분야에서 어떤 기업이 다른 기업의 제품이나 조직의 특징을 비교 분석하여 그 장점을 보고 배우는 경영 전략 기법을 말한다. 남을 따라하는 행위에는 먼저 따라하려는 주체자로서의 나와 나의 의지가 존재한다. 그리고 또한 객체로서의 환경이나 경쟁사, 배우려는 기업의 움직임이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의지를 가지고 남의 것을 보고 배운다고 해서 늘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남의 것을 나에게 적용(application)하는 것만큼이나 그 새로운 어떤 것이 나와 우리 조직에 적응(adaptation)하는 상호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것을 보아도 해당기업과 구성원들의 의지와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이해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식이 된다. 흔히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은 이런 벤치마킹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인간들의 오랜 집단무의식을 잘 드러내는 속담이다.
안도 다다오 건축의 특징의 하나로 현대와 전통의 조화를 들 수 있다. 서양 현대건축의 언어 속에서도 일본 전통 건축의 특성을 잘 녹여 내고 전통적 건축의 특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독창적인 공간을 창조한다. 또 지형이나 문화적 환경을 고려하고 지역성을 띠는 재료를 이용하여 그 지역적 감성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 한다. 어디에 지어져도 무방한 보편적 건축이 아닌 그런 환경과 위치에 존재하기에 유일무이한 작품이 되고 그 지역에 있어야만 하는 정당성을 갖는 지역성과 장소성이 하나의 특징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노출 콘크리트와 빛이다. 건축 재료와 소재로 노출 콘크리트와 빛을 일관되게 사용하여 건축공간에 다양한 표정과 감성을 담아낸다. 구조적 성능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본연의 물성을 그대로 건물의 외피 마감재로서의 역할을 하는 노출 콘크리트는 자신의 특성은 변화 시키지 않고 모든 빛과 색채를 받아들여 건축적 현상을 자유롭게 변 화시키는 가변성을 가능하게 한다 즉 건축의 본질은 빛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데 무기적인 소재 콘크리트가 만들어내는 차갑고 조용하던 공간이 빛이 벽에 비치는 순간 부드러우면서도 투명한 공간으로 변화된다. 안도 다다오가 제일 처음 노출 콘크리트를 선택한 이유는 적은 건축 비용으로 큰 공간과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장점과 전통건축의 특성중 하나인 단순성을 가장 잘 표현 자연 속의 바위처럼 가장 자연과 닮은 소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 재료에 의해 자기 자신이 드러나기보다 자연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자연의 소재가 만들어낸 무색의 공간에 인간이 존재함으로써 창출되는 아름다움이 건축공간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고 생각하였다. 노출 콘크리트는 이런 그의 건축 이념과 건축공간을 형성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건축 재료이다. 또한 빛은 자연의 요소 중 가장 확실한 현상이며 건축공간을 충만 시키고 그림자를 만들어 대비적으로 형태를 강조하고 공간과 형태의 표정을 풍부하게 해주며 또한 건축 재료의 느낌과 가치를 깊게 한다. 그는 건축에 있어서 공간을 만드는 목적은 빛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안도 타다오의 말대로 건축이 인간의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하면 개념보다 경험이 중요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건축적 경험과 감성을 이끌어 내는 현상학적 경험 위주의 건축을 강조한다. 그의 건축은 한 공간만 국한해서 본다면 단순화된 형태와 재료 등에 의해 미니멀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대지 진입부터 시작해서 그 공간을 모두 경험하고 나오기까지 동선을 따라 일어나는 연속된 공간의 경험은 미니멀에 대한 반전의 연속으로,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공간을 계속적으로 만나고 급기야 신선한 충격과 경외감과 환희를 주는, 마치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경험하듯 강렬하고 극적인 공간을 만나게 한다. 안도 다다오의 건물은 마치 한편의 시나 드라마 작품처럼 기승전결 흐름과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그는 건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생활하고 경험하는 사람들 즉 지각적 주체자의 경험이 더해져 비로소 완성되는 현상학적 건축을 추구한다.
안도 타다오는 그런 세계관을 만들어 내고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우리 한국인들과 기업들도 아무 것도 없는 맨 땅에서 신생국의 일원으로 세계 경제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세계 10위권의 대국으로 성장하는 세계관을 만들어 내고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 놀라운 성공 스토리의 씨줄은 한국인이 그들의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획득한 근면성과 위기를 극복하려는 투지, 그리고 목표달성을 위한 근성이었다. 그리고 날줄은 바로 동시대에 가까이는 일본에서 시작하여 멀리는 유럽과 미국에 이르기까지 우리보다 앞서가는 존재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그들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배우고 분석한 뒤 우리기압과 조직에 적용(application)하려는 노력과 새로움이 생경함이 되지 않도록 적응(adaptation)시키는 상호작용, 즉 벤치마킹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내부의 주체적 역량과 외부의 객관적 상황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한 목표와 실천항목을 설정하고, 이를 실행하고 전파하는 프로세스를 통해서 세계 최빈국으로 출발하여 최근 7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성장사 속에는 그 안에서 생활하고 경험하는
사람들 즐 지각적 주체자의 '행복감'이라는 경험이 더해져 비로서 완성되는 아릉다움은 아직 느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선진국 경제의 뼈대 건축물은 완성한 듯 보이지만 '행복'이라는 경험과 감성을 이루어내는 미학적 쾌감과 클라이막스는 아직 '미래 어느 날'의 일로 남겨두었다고나 할까.
그 안에서 생활하고 경험하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경제와 기업과 조직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여정을 앞둔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추어 선 이 때에 우리를 우리이게 만든 '과거 어느 날'로 부터 시작하여 오는 길에서 무엇을 보았고(SEE), 무엇을 느꼈으며(FEEL), 무엇을 했는가(ACT)를 살펴보고 제대로 전진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방향을 확인하는 일은 앞으로의 속도를 냄에 있어서도 그 의미가 매우 클 것이다.
벤치마킹이라는 시공간의 망원경을 들고 경영의 변천, 기업의 혁신, 사람의 선택을 둘러보는 인사이트 투어를 시작하고자 한다.
Insight in sight.
아는만큼 보일 것이며, 보는만큼 알게 될 것이다.
※지중미술관 내의 월터 드 마리아의 '타임, 타임리스, 노타임'이다. 유리로 덮인 하늘에서 스며드는 빛에 따라 화강암 공이 달리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