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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an 10. 2021

어느게이의평범함

글 위버


나는 게이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커플이나 부부는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셰어 하우스이고, 하우스 메이트 중 한 명이 게이일 뿐이다. 그 이유 때문에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별로 쓸 말은 없다. 게이와 같이 사는 일이 뭐가 대수라고 .


게이와 함께 살고 있다고 별 다른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령, 호모포비아 성향을 갖고 있다가 게이와 같이 살면서 치료(?) 되었다거나, 갑자기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거나 하는 일따위는 없다. 사실 그렇다. 게이와 같이 사는 일이나, 이성애자 남자와 같이 사는 일에 별 다른 차이가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굳이 차이를 찾아보자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다. 무엇보다, 감각의 차이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경험한 게이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일반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 좁은 경험을 통해, 무엇보다 게이와 함께 살면서 나는 게이 특유의 감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게이 하우스 메이트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이 분이 게이라는 걸 짐작했다. 이 분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어느 단체의 활동가라고 말했는데, 그 단체가 LGBT와 연관이 있는 단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라는 의심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이 분의 패션 센스가 범상치 않았다. 당시 이 분은 초록색 반바지에, 민소매를 입고 있었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 분 손에는 우산이 하나 들려 있었는데, 분홍색이었다. 그것도 장우산. 분홍색의 장우산을 들고 다니는 남자라……. ‘혹시?’ 라는 의심이 ‘역시!’ 라는 확신으로 넘어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뭐랄까. 게이 특유의 패션 센스라는 것은 게이 특유의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할 테다 .


이성애자 남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게이 특유의 감각. 무엇보다 내가 게이 하우스 메이트와 함께 살면서 피부로 가장 느끼는 것은 청결에 대한 강박이다. 지나칠 정도로 깔끔하다. 거의 결벽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가 이 집에 처음 거주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도 남자 셋이서 사는 집 치고는 굉장히 깔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이나 주방의 청결은 물론이고,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신발을 보면서, ‘아, 여기 사시는 분들은 다 깔끔하신 모양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에 사는 이들이 다 깔끔한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유독 깔끔하여 집 전체가 깔끔했을 뿐이었다. 당연히도, 깔끔한 사람은 게이 하우스 메이트이다. 지금은 나와 게이 하우스 메이트 이렇게 둘이 살고 있지만, 사실 이 집에는 세 명이 살았다. 한 분은 얼마 전에 이 집에서 나가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나가게 된 이유가 감각 차이 때문이었다. 그분은 소위 ‘개저씨’였다. 감각이 아주 후진. 그분이 집을 나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면 대략 어떤 이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분은 강아지를 한 마리 키웠다. 어느 날, 그분이 마당에서 강아지 털을 깎았다.돈도 많이 버는 양반이 왜 굳이 강아지 털을 자기가 깎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점이야 상관없었다. 문제는, 강아지 털을 깎은 이후에 마당에 털을 흩뿌려 놨다는 것이다. 내가 털을 치우라고 말하자, 그분은 “그걸 왜 치워? 바람에 흩날릴텐데.”라고 대답했다. ‘뭐라고, 시옷비읍아?’ 욕이 혀끝까지 맴돌았지만, 나는 “그래요, 냅둬요.”라고 말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말한다고 그렇게 할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


이건 일례일 뿐이고, 이런 식으로 자기만 생각하여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냥저냥 넘어갔다. 굳이 충돌해봐야 좋을 게 없는 것도 그렇고, 나보다 더 오랫동안 그분과 같이 살았던 게이 하우스 메이트가 별 달리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눈에 거슬리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도 그걸 말하고 교정시키려 하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 될 걸 알아서 그랬는지 눈에 거슬리는 것은 그냥 본인이 직접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했던 생각은, 게이 특유의 감각이라는 것이 이성애자 남자의 감각에 비해 아무래도 더 선하고 부드러운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 점 때문에 본인의 내면은 썩어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 감각이 나에게는 더 옳은 감각이라 여겨졌다. 물론, 이 점은 게이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경험한 몇몇 게이들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그런 것 같았다. 이성애자 남자 특유의 후진 감각들보다 아무래도 게이들의 감각이 더 좋은 것 같았다. 나로서는 말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이렇게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너는?”


나? 글쎄. 나는 뭘까. 그걸 굳이 당신에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신이 알아서 생각해보시기를.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게이 특유의 감각이 아무래도 이성애자 남자의 감각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게 뭐 특별한 것은 아니긴 하다. 게이가 뭐 별 대수라고.


어느 게이의 평범함




위버는 문화연구라는 것을 공부하고 있다. 올해 석사학위 논문을 마쳤고, 지금은 놀(다가 일하다가 쉬)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문화평론을 쓰고, 어느 좌파 시민단체의 병설기관인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원고가 작성된 시점은 2016년 상반기로, 당시 필자 혹은 셰어하우스의 상황은 지금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북, 무지개와 함께 마을잡지「여기 우리 살誌」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성소수자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북구 성소수자 마을잡지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6년 마을미디어활성화 주민지원사업 지정공모분야(콘텐츠형)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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