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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an 16. 2021

성북동에 사는 독일청년 조나단

[14호]주민 인터뷰 | 인터뷰어 홍승완

인터뷰 및 글 홍승완



작년 여름, 성북동에 독일청년 조나단(Jonathan Yainishet)이 이사를 왔다. 인류학이 전공인 그는 연구를 위해 분단국가인 한국을 선택했다. 성북동은 거리에 만국기가 펄럭인다. 대사관저가 많고 글로벌주민센터도 있는 성북동은 외국인에게 친화적인 동네이다. 그와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은 단지 성북동에 사는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다. 그에게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한 인간으로서의 조나단을 소개하고 싶었다.




승완 :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거예요?


조나단 : 인류학을 공부하는 동기를 보면 주로 어떤 문화나 지역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인문, 사회학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대학원에 다니면서부터는 민족주의에 관심이 생겨 연구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분단국가에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고 있어요. 연구주제 덕분에 한국에 오게 됐어요.


승완 : 그럼 언제부터 한국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거예요?


조나단 : 2015년에 처음 한국에 왔었어요. 그때는 관악구에서 1년 정도 생활 했었어요. 독일에 돌아갔다가 2016년에도 다시 와서 판교에서도 6개월 정도 있었어요. 이번에 한국에 다시 온지는 1년 반 정도 되었죠.



조나단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한국에 두 번째 방문 했을 때였다. 성북동 청년들의 쉐어하우스 ‘따로 또 같이’에 낯선 얼굴들이 모였는데 독일 친구들도 있었다. 조나단은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진지하면서도 유머가 있었다. 사람들은 연말과 새해를 기념하며 함께 카운트다운을 했다. 파티가 끝나고도 2차로 몇몇이 모였다. 한국과 독일의 문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시간차로 독일의 새해를 기다리며 밤새 잔을 부딪쳤다.



승완 : 한국어는 어떻게 배우셨나요? 어렵지는 않았어요?


조나단 : 한국에 와서 어학원을 다녔어요. 대학원 친구들한테 배우기도 했고요. 그리고 의외로 술자리에서도 많이 배웠어요. 초반에는 카톡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잘 모를 때 천천히 사전을 찾아보고 답장할 수 있어서 공부하기 좋았어요.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했어용? ~아닌가용?” 라는 식의 카톡 메시지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냥 귀엽게 말한 거잖아요. 그때는 이게 무슨 문법일까 고민하다가 사전도 찾고 검색을 해도 안 나오고 알 수가 없어서 한참 고생한 기억이 있어요. 외국인한테 이러면 안 되죠!(웃음) 그리고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한국어로 대화를 하다보면 정말로 끝까지 들어봐야 의미가 전달이 될 때가 많아요.


승완 : 사투리는 어때요?


조나단 : 아직 사투리는 알아듣기 힘들어요. 하지만 저는 사투리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독일에도 사투리가 있어요. 스위스, 오스트리아 지역까지 합쳐서 약 30여개 정도 되요. 제가 살던 고향도 사투리를 쓰던 곳이에요. 독일 사투리는 독일 사람끼리도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어요.



조나단과 첫 인사를 나눈 사람들이 놀라면서 반가워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우리말을 아주 능청스럽게 잘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중에서 방송에 나오는 몇몇들을 제외하고, 한국어를 이 정도로 능숙하게 하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 대부분은 한국어를 몰라도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나단은 달랐다. 우리말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잘 이해한다. 이번 인터뷰도 오로지 한국어로 대화하며 작성했다. 조나단은 독일에서 직접 김장김치를 담가 보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며 Mein Kimchi(독일김치)라고 이름을 붙였다. 기회가 된다면 그와 막걸리를 빚어 볼 생각이다.



승완 : 서울의 그 많은 동네 중에서 어떻게 성북동에서 살게 되었나요?


조나단 :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주로 낙성대 근처에서 살았었어요. 그러다가 다른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어졌고 어디가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연구하기 좋은 지역, 교통이 좋은 지역을 생각했었죠. 서울대 근처부터 시작해서 대림, 망원, 당산, 애오개, 삼선동 등이 후보지로 떠올랐어요. 외국인 친구들은 이태원을 추천했었는데 그쪽은 저랑은 분위기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성북동은 서울의 중심에서 가까우면서도 조용한 동네예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서울 이미지 같지 않아서 좋아요. 한 동네에 오래 사신 분들도 많고, 오래된 집이나 가게들도 많아요. 무엇보다도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북악산, 북한산과 어우러진 마을 풍경이 좋았어요. 동네에서 문석, 승완, 정미, 사리 등 친구들과 편하게 만나기도 좋고요. 확실히 성북동은 분위기가 특별한 것 같아요. 뭐랄까 사람들이 좀 더 여유가 있고 친절해요. 예쁜 카페와 맛집들도 많고요. 그런데 의외로 외지에서는 성북동에 대해 모르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이름은 잘 아는데 위치는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바로 옆 동네인 대학로를 설명하면 더 쉽게 이해해요.


승완 : 성북동에 이사 왔을 때 무슨 초대장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조나단 : 글로벌주민센터에서 주민이 되신 걸 환영한다고 카드를 보내줬어요. 다른 지역에 살 때는 이런 게 없었어요, 게다가 센터장도 독일분이셔서 반가웠어요. 한국에서 30년 넘게 사셨더라고요. 그리고 독일 대사관저에도 초대 받아서 갔었어요. 1년에 한번 하는 여름파티였는데 신기하게도 고향 와인이 나왔어요. 그의 고향은 란다우(Landau in der Pfalz)다. 와인산지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한다. 성북동으로 이사 오기 전에 조나단과 함께 집을 알아보러 다녔었다. 다른 동네에서 더 넓고 편한 집을 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같은 값으로 성북동의 작은 원룸을 선택했다. 경치와 동네 분위기가 그의 선택 기준이었던 것 같다. 주로 카페에서 작업을 하고, 한가할 때는 동네 곳곳 산책을 한다. 이제는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는 이웃들도 많아졌다. 독일에서 친구들이 놀러오면 성북동부터 소개시켜준다.


승완 : 고향은 어디예요? 독일에서도 이웃들이 가깝게 지내나요?


조나단 : 제 고향은 독일 서남쪽의 작은 시골마을이에요. 저는 별로 시골에 살고 싶지 않았어요. 대학 때부터는 하이델베르크에서 생활했어요. 하이델베르크랑 성북동이랑 비슷한 점이 몇 가지 있어요.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학자들이나 학생, 관광객들도 많아요. 대학원은 괴팅엔(Göttingen)에서 다녔어요. 독일의 지리적인 중심지예요. 인구수는 12만 명 정도예요. 동네에서는 1~2년 정도만 살아도 사람들이 서로 알아봐요. 거기 있을 때부터 서울에 오기 시작했어요. 서울 살다가 괴팅엔 다시 가면 지루할 것 같아요.


승완 : 한국에는 언제까지 있을 예정이에요?


조나단 :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어요. 이번에 돌아가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몰라서요. 그래도 내년 3월 즈음에는 돌아가야 해요. 가기 전에 한국에서 전라도, 강원도, 경상도 등 여행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여수, 목포, 거제, 속초, 남해 같은 곳이요. 한국에 있는 동안 대만도 여행할 예정이에요.





조나단은 한국 지리도 빠삭하다. 그리고 한국의 인디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주로 음악 얘기를 하면서 친해졌다. 홍대 근처로 공연을 보러 다니기도 한다. 독일에 있을 때도 한국의 인디밴드 잠비나이 콘서트를 다녀와서 인증샷을 보내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나단은 한국이 좋아서나 어떤 기대를 가지고 오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불러도, 주변사람들에게 농담 삼아 그를 ‘한국사람’이라고 소개해도 어색하지가 않다. 한국의 민낯들이 조나단에게는 특별히 더 부끄럽지 않다. 가족끼리 집안 얘기하듯 편안하게 얘기 할 수 있다. 조나단의 매력은 그가 한국문화와 정서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인류애가 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조나단은 지금의 성북동의 모습을 좋아한다. 그래서 재개발이 많이 안됐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더 나은 삶을 위해 변화는 필요하겠지만, 그게 불가피 하더라도 성북동의 기존의 가치가 보존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와 새삼스럽게 인터뷰를 하고나니 우리 둘 다 그냥 성북동 주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북동에 사는 독일 청년 조나단



조나단은 성북동 집의 임대차계약 만료 후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상황을 보며 귀국을 미루고 서울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홍승완은 북악산을 돌다가 경치에 반해서 성북동으로 이사를 왔다. 동네에서 조지훈 시인과 관련된 퍼포먼스를 한 것을 시작으로 음악과 낭독극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북동 주민자치회 위원이 되었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4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9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9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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