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북 Jan 19. 2021

십년을 살고서 비로소

[14호]주민 기고 | 글 박윤희

글 박윤희

사진 17717 김선문



2009년 봄 성북동으로 이사와 이곳에 살게 된 지 올해로 11년째 이다. 집안 사정으로 2년 동안 서울을 벗어나 살다가 다시 돌아 올 터전을 성북동에 잡게 된 데는 대학로와 가까운 이곳이 연극배우가 직업인 우리 부부에게 지리적으로 편리했던 점과 옛 것에 대한 향수가 남달랐고 옛 마을의 정취가 남아있는 동네를 좋아했던 아내의 취향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딱히 의도하지 않았지만 10년 동안 성북동 안에서 두 번의 이사를 했다. 우리 가족은 점점 더 성북동의 안쪽 골목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교통이 편리한 역세권을 선호하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이 집에 살게 되면서부터 성북동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급한 일이 있어 외출하거나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할 때에는 집까지 오는 피할 수 없는 언덕길이 버겁기도 하고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은 마을버스가 운행을 안 할까 걱정도 되지만 집에 머무는 동안은 낯선 오지에라도 와 있는 것처럼 고요한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성북동에 살게 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솔직히 제대로 된 성북동 주민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도 이 마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공연 준비나 그 밖의 일 관계로 불규칙한 생활을 할 때도, 일이 없고 한가한 시간에 주로 집안에서 밀린 일들을 할 때도, 바쁘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돌아볼 여유를 만들지 않았다. 이따금씩 산책하는 동안에 내가 사는 동네가 참 좋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 아름다운 동네의 주민으로서 대단한 소속감을 느끼기에는 내가 그동안 이곳에 발을 붙이고 살지는 못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새삼 깨닫고 있다.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나에 견주어 월등히 많은 시간을 주부로서 아이들의 학부모로서 시간을 채워야 하는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성북동 사람’이다. 성북동 토박이 주민들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우리 가족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보다 제법 달라진 동네 풍경에 여러 감정이 든다. 어릴 적 뛰어 놀던 모습의 낡은 골목과 거리는 크고 작은 손질로 세련되고 편리해지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배려가 새로 들어선 번듯한 건물과 거리 뒤로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스러운 대화를 아내와 나누기도 한다. 성북동에 살게 된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 잡게 된 이유와 그 첫인상은 저 마다 다르겠지만 성북동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사랑에 빠지게 만든 어떤 ‘가치’는 대체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딱히 한마디 말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지만 한 번 사라지고 나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가치일 것임은 분명할 것이다. 십년을 살고서 비로소 사랑을 느끼게 된 나는 성북동이 앞으로도 더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 될 수 있도록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더 발을 붙이고 살아 보아야겠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연극인들이 극장이 몰려있는 대학로와 가까운 이곳에 살고 있듯이 성북동 주민들도 가까운 곳에 공연장이 있다는 혜택을 충분히 누려 보시길 하고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날, 극장까지 산책하듯 걸어서 좋은 연극 한 편을 볼 수 있다면 제법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박윤희는 배우다. 여느 연극인들처럼 대학로에 가까운 성북동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했고 이제는 비로소 성북동에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4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9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9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