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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리 Aug 17. 2022

믹스믹스믹스

조화로운/풍성한 맛 

'진이 빠진다'라는 말은 내가 육아를 하며서 가장 절실하게 쏟아내는 진심이다.


육아 잘하는 인싸 엄마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그녀들의 자식들은 '제자리, 제자리'도 그토록 잘하더만 내 자식은 어지르고 또 쏟고 또 헝크러뜨기만 한다. 

친절하게, 단호하게, 반복적으로 말해보지만 그녀는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 오직 어지르기만 한다. 


허리를 아무리 굽혀도 펴질 날이 아득하기만 한 일상은 모든 에너지를 빨아먹어버린다.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마치 금단현상 일어난 금연 3일차의 누군가마냥 허둥지둥 집 근처 커피숍으로 급하게 달려간다. 그리고는 달달한 바닐라라테 한잔을 깊이 들이킨다.

그 한잔이 뭐라고 신기하게도 다시 움직일 움폭이란 게 마음에 생기고 가라 앉았던 기분이 소생한다. 


과거엔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커피는 오직 아메리카노 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먹었고, 어쩌다 먹는 케이크도 달지 않는 케이크 전문점을 찾아가서 먹고, 심지어 초콜릿도 다크 초콜릿만 먹었건만 출산과 동시에 마딱드린 일상은 당 없이는 하루를 버티기가 힘들었다. 사실 과거 '쓰디쓴 커피만이 진정한 커피 맛이지 여기에 뭘 타고 그런건 아니지~' 라고 해대던 그 시절에 깜짝 놀란 미각 경험이 있긴 했었다.

어느 겨울 우연히 트럭에서 파는 붕어빵을 사게 되었는데 약속 장소가 커피숍이라 의도하지 않게 커피와 붕어빵을 함께 먹게 되었다. 


혹시 맛 본적이 있는가?


그것은 예상할 수 없는 맛의 향연이었다.

바삭/고속한 붕어빵과 몽글/달콤한 팥 사이로 쓴 커피가 밀고 들어와 믹스되어 느껴지는 그 절묘한 풍미는 정말 깜짝 놀랄 일이었다. 

전혀 어울림을 예상 못한 누군가와의 대화가 영혼을 오갈 정도의 케미를 발산했을 때 의외의 놀라움과 반가움 비슷한것이랄까? 아무튼 그때의 일은 맛의 고정관념을 깨는 상당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돌이켜보면 서로 상극일듯한 것들이 각자 고스란히 있을 때보다 서로 엉킬 때 비로소 그 풍성한 진가를 뿜어내는 것들이 있다.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말이다. 


기름에 튀긴 음식은 새콤한 식초 간장이나 칠리소스, 치킨무등과 함께 먹을 때라야 느끼함을 잊고 오래 먹을 수 있다. 시원한 냉면엔 뜨끈한 육수를 마셔주며 먹어야 제대로고, 담백한 죽과 함께 알싸한 동치미 국물은 환상의 궁합니다. 


인생은 쓰다 그리고 달다


혼자가 외로워 둘이 되니 버겁고, 아이를 보고 웃다가 아이 때문에 고단하다며 탄식한다. 

배가 너무 고파서 먹는 밥이 맛있고, 지칠 만큼 피곤해야 휴일이 달콤하다. 

모순 같은 인생의 희로애락은 그렇게 서로 어우러져야 진정한 삶이 되나 보다. 



아이를 위해 로제리조또를 만든다.

새콤, 달콤, 고소, 담백한 이 한 그릇을 통해 아이가 언젠가 다양한 감정을 대면할때 모든 감정은 그 각각 의미가 있으며, 그것들이 서로 어울릴때 조화롭고 풍성한 삶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그것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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