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아(서울 홍릉초 교사,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대표)
서울교대 학보사 후배들과 진행했던 인터뷰가 학보 511호 학술 기획 지면에 실렸습니다. 어찌나 기사를 알차게 썼는지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박수빈 부편집국장, 부준희 기자 두 후배에게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꼭꼭 새겨 읽어요, 교실 속 온 책 읽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책을 멀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빽빽한 일상 속, 책 한 권 읽는 여유가 어딨겠냐고 답하곤 할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진정 독서를 막고 있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일 것이다. 마냥 어렵고 정복할 큰 산처 럼 느껴지는 책, 이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온 책 읽기는 단순한 독 서의 개념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가까이 독자에게 다가갈 것이다. 책과 독자가 함께 호흡하며, 진정한 독서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온 책 읽기는 ‘한 학기 한 권읽기’라는 이름으로 우리 교실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들어가기 전
교실 속 온 책 읽기 수업 법인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활용방안을 제시하기에 앞서, 본지는 이 글이 일정한 형식과 제한된 틀로서 다 가오지 않길 소망한다. 긴 호흡으로 독서가 이루어지는 만큼 학생과 교사 간의 상호교류 및 유동적 수업 진행이 요구된다. 학교와 학 급 환경, 교사가 추구하는 방향성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책 선정부터 독서 후 활동까지 다양한 수업이 진행될 수 있다. 즉, 교사가 학급 교육과정에 맞게 유동성을 발휘할 수 있기에 과정과 방식에 정석이 없다. 따라서 본 기사가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다양한 수업 방식 중 일부를 제시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온 책 읽기란?
온 책 읽기란, 한 권의 책에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깊게 읽는 것이다. 이는 ‘슬로리딩’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중학교 국어교사 인 하시모토 다케시에 의해 처음 도입됐다. 다케시는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책 한 권을 선정해 천천히 반복해 읽고, 소설에 등장하는 놀이나 책에 나오는 시 100가지를 카드로 만들어 맞추기 놀이를 하는 등 배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그 후, 책에 대한 ‘연구 노트’를 제작해 이해되지 않은 단어와 인상 깊은 문장을 적고, 학생 간 토의를 통해 책에 궁금증을 자아낸 내용을 조사해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 등 학생 주도적 수업을 진행했다. 이는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학생이 주체가 돼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도모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교실로 들어온 온 책 읽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현 국어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됐다. 교과서 속 분량 제한으로 인해 작품은 단편적인 부분만 실리게 돼 원작의 유기성이 훼손됐다. 또한, 전달 위주의 수업으로 학생들은 지식 교과의 관점으로 국어를 접하게 됐다. 이러한 목소 리를 담아 교육부는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도입했다. 한 학기에 한 권을 온전히 읽음으로써, 토막글이 나 요약글에 치우친 국어 수업의 한계를 넘어 생각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이는 2017년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시작해 2018 년도에 3-4학년과 중·고등학교 1학년까지 확대됐다. 2020학년도에는 초·중·고 전 학년이 교과서에 실린 짧은 글이 아닌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어떤 장르를 활용할 수 있을까?
#동시
동시는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함축적 언어를 통해 운율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한 글이 다.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바탕으로 한 글이기에 자 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상상력과 감정 세계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언어, 정서, 인지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운율이 있다는 점에서 음악교육과의 연계 활동도 계획할 수 있다.
#옛이야기
옛이야기는 신화, 전설, 설화 등을 포 괄한다. 이는 ▲선과 악이 대비되는 인 물 ▲사건 중심의 이야기 구성 ▲현실과 환상이 공존 가능한 배 경 ▲삶의 지혜가 담긴 특성을 지닌다. 또한, 우리 조상들이 겪어 온 삶, 가치관 등이 녹아 있기 때문에 한국적 정서와 가치관을 함양할 수 있다. 이야기를 직접 바꿔보거나 다른 옛이야기와 연 결해 새로운 내용을 구성하는 활동도 가능하다. 또한, 이는 구전 이 바탕이 된다는 점을 반영해 직접 이야기판을 만들어 보는 활 동을 구상해 볼 수 있다.
#동화
동화는 어린이 독자를 염두해 창작된 서사 문학의 한 갈래이다. 동화를 통한 언어교육은 이야기 전개 중 발생하는 흥미를 살려 언어 표현 방법을 자유롭 게 수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인물을 파악하는 과정에 서 인성·도덕 교육적 기능과 상상력 증진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개인마다 인물에 대한 평가, 관심을 보이는 지점들이 다르기에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고 공유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면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림책
그림과 더불어 글이나 기호가 어우러져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감동을 전달하는 책을 말한다. 그림이 책의 주된 요소이기 때문에 그림을 언어로 표현하는 활동도 해볼 수 있다. 글이 없거나 적은 그림책을 보 며 그 내용을 글 혹은 말로 바꾸는 활동이다. 글로 표현하기 위 해 그림을 더 몰입해서 관찰하고, 그림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하 고 해석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독서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다
앞서 살펴본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한 권의 책을 깊이 읽으며 작가가 쓴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야기를 자 신의 경험에 적용해 보면서 생각과 느낌을 재해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나아가 독서를 통해 아이들이 주체적 창작자가 되도록 돕는 모임이 있다. 이현아(홍릉초) 교사(이하 이 교사)가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이다.
이 교사는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통해 온 책 읽기를 기반으로 학생들이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든다. 그는 독서 활 동에 있어 읽기는 ‘들숨’, 표현은 ‘날숨’으로 비유한다. 이어, 책과 올바른 호흡을 하기 위해서는 교실에서 책과 학생 간 소통이 이뤄져야 함을 강조한다.
Q.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자기표현의 기쁨’을 깨닫고 이를 학생들에게도 느끼게 해주 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계기였다.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던 중, 나이프 유화를 배우게 됐다. 평소 손이 섬세하지 못해 그림 실력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프 유화는 칼로 작업하기 때문에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내 특징이 오히 려 장점이 됐다.
하지만 문득 취미와 내 교실이 분리됐다는 생각이 들며 공허함을 느끼게 됐다. 이 취미를 가지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기쁨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것인지 깨달았기에, 어떠한 성과를 도출해 내는 것에서 벗어나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의 기쁨을 아이들에게 흘려보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표현활동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나아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스토리 보드를 짜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활동으로 확장했다.
Q. 프로젝트는 어떤 과정으로
구성되나요?
‘창작 선순환 독서교육’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이는 ▲읽기 ▲토론 ▲쓰기 ▲감상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저자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 과정으로는, 먼저 온 책 읽기와 상응하는 ‘통(通)그림책 감상법’으로 그림책을 읽는다. 미술관에서 걸작을 보면 감당하지 못 할 정도의 큰 감흥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을 느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심취해 최대한 많은 작품을 보는 것을 목표로 하면 정 작 남는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수많은 작품 중 내 가슴을 움직이게 한 작품이나 작가에 주목해 감상하는 것이 훨씬 기억에 많이 남는다.
책도 마찬가지다. 아이들과 많은 책을 읽고 전체 이야기를 살피는 것도 좋지만, 진정한 감상은 나와 마음이 통한 그림책 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먼저 아이들에게 마음을 움직인 장면들을 선택하게 한 후, 선택한 계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다. 같은 장면을 택한 아이들 간에도 선정 이유가 다르다. 그 후, 이와 관련된 주제를 발제한 후 토론을 진행하고, 창작 활동을 한다.
Q. 창작은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
구체적 진행과정은 어떠한가요?
‘창작 선순환 교육’의 토론과 쓰기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찾은 이야기는 창작의 기반이 된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소개할 「돌 씹어먹는 아이」를 통한 ‘통(通) 그림책 감상법’을 통해, ‘가족 구성원에게 말 못했던 고민을 어떻게 털어놓아야 할까?’라는 주제로 토의를 진행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 주제를 확 장해, ‘내가 지닌 나만의 비밀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털어놓을 것인가?’라는 창작 소스를 만들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도도 소재가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느낌과 성정을 가지고 있다. ‘은유 거울’이라는 활동은 ‘나는00다. 그 이유는----다’라는 자신에 대한 간단한 비유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고, 나와 공통점을 지닌 하나의 사물을 연상할 수 있다. 그 속에는 아이만이 짚어낼 수 있는 생각과 감정이 담겨있다. 이는 자연스레 이야기의 소재로서 자리한다.
Q. 프로젝트 진행 후 이전과 비교해
변화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선생님은 제게 자신을 열어보는 기회를 주셨어요” 3권의 동화책을 창작한 학생이 건넸던 말이다. 1년 동안 아이들을 만나면서 정작 아이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지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 마다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본 프로젝트를 통해 비로소 아이들 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내가 교사로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도 작용했다. 아이들에게 학 교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데, 이를 단순히 머무르다 가 는 시간으로만 여기게 된다면 그 긴 시간은 무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1년이라도 나의 이야기를 꺼내보고, 이를 소 중히 여기는 경험을 한다면, 그 공간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잠재력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이 향후 어떤 길을 걷든 자신 의 ‘서사’를 써내려 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본 프로젝트는 그 첫 단추를 끼우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Q.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비롯한
원활한 독서교육을 위해
요구되는 교사의 역량은 무엇인가요?
▲ 2015년 첫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에서 창작한 책 「여우의 꿈」(정근우 글·그림)
창작 작품「솎아내기」(이혜빈 글·그림),「학사모의 질문」(이혜승 글·그림)
QR코드를 통해 본 책뿐 아니라 다양한 학생 작가의 창작물을 감상할 수 있다.
이현아 선생님이 추천하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도서 「돌 씹어먹는 아이」
돌을 먹는 아이가 이를 가족에게 고백하는 내용의 이 책에는 다름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동화책으로 출간된 후, 독자와 서평단으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아 어린이 희곡과 그림책으로도 연이어 발간됐다. 동화, 그림책, 희곡 세 가지의 다양 한 갈래로 표현된 작품인 만큼 교실에서도 교육연극 등 활용 가치가 무한하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537025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623559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054102
참고문헌
*‘한 학기 한 권 읽기 길라잡이’ 신헌재 외 5인 저
*어서 와한 학기 한 권은 처음이지? 강석순 외 14인 저
*양미자, 동시 짓기를 통한 노랫말 바꾸기 활동이 유아의 언어능력 및 음악능력에 미치는 효과, 2008
*장선이, 동화 학습 활동이 유아의 사회성에 미치는 효과, 2002
*이현아, 시각적 문해력 증진을 위한 그림책 창작 수업에 대한 실행 연구, 2017
사진 출처 및 제공│네이버 책 정보 이미지
이현아 선생님
박수빈 부편집국장 press_edit@snue.ac.kr
부준희 기자 press_aca@s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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