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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동 나나 Feb 17. 2024

풍요로움을 되살리는 9cm

예술하고 있다. 


두바이는 화려한 도시다.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빌딩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식당이나 카페 쇼핑몰 어디를 가도 화려하고, 도로에는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처럼 반짝이는 조명이  설치되어있다. 금식하며 기도하는 라마단 기간에도 달 모양의 조명이 은은하게 설치된다. 풍요로운 도시로 만들어 돈이 많은 사람을 초대한다. 나도 두바이에 살면서 돈이 많은, 돈을 쓸 힘을 가진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 고급 호텔과 식당을 다니며 같이 쇼핑하다 보니 나도 내가 돈이 많은 줄 알았다. 


 한 번은 3박 4일 동안 일억을 쓰고 간 사람이 있었다. 세금 때문인지 현금 십만 불을 가져와 백팩에서 꺼내 나를 통해 지불했다. 영어를 못하는 분이어서 내 손을 통해 일억이 넘는 돈이 흘러갔다. 그분과 같이 일억을 쓰고 나니 내 스트레스가 풀렸다. 단 현금이라 돈을 세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 문제 이긴 했다.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가 중요하다. 당연한 말이다. 두바이의 아랍 여자들은 까만 아바야 속에 화려한 옷을 입고 화장을 짙게 하고 커다란 목걸이와 귀걸이 팔찌 그리고 명품가방이 기본이다. 분위기 탓인지 나도 화려한 색상의 옷이나 큰 액세서리, 높은 굽의 구두를 유행에 따라 입고 신고 살았다. 지금은 나이도 들었지만, 옷을 차려입고 나갈 일도 장소도 없다. 직장을 다니는 것이 전부인데 병원이라 유니폼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좋은 옷이라고 비싼 구두라고 가지고 있는 것들이 빛을 볼 일이 없다. 하지만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려고 맘먹고 차려입고 나간다. 아는 사람도 없고 좋은 식당도 없지만 나를 위해서다. 






 얼마 전엔 부츠를 샀다. 굽이 9cm이고 네모난 작은 벽돌을 붙여 놓은 예사롭지 않은 디자인이다. 사놓고 한 달 동안 신지 못하고 신장에만 있었다. 아니지 신어야지 하며 집안에서 신고 연습을 한다. 높은 굽과 익숙해지기 위해서이다. 남편은 연습하는 걸 보고 ‘괜찮네, 잘 걷네.’ 한다. 속으로는 기가 막힌 거겠지.


나에게 높은 굽의 부츠는 사치이고 낭비이다. 정신없는 짓이다. 할머니의 주책이다. 하지만 난 연습 끝에 그걸 신고 출근을 하고 동료들에게 웃음을 준다. 9cm 굽을 신을 수 있는 것은 3, 5, 7, 9cm의 굽을 신었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색하지 않다. 나를 제한하고 싶지 않고 한계를 넓히고 싶다. 나이로 환경으로 나를 움츠리게 하고 싶지 않다. 나를 움츠리게 하는 생각은 버리고 나를 찾아야 한다. 나를 만든 창조주가 주신 역할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9cm 굽을 신으라고 창조하신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두바이에서 이사를 하며 버렸던 3, 5, 7, 9cm의 구두들. 유리 보석이 박힌 화려한 구두는 작은딸 결혼식에 신었고, TOMS는 슬로건이 좋아서 샀지만 즐겨 신지는 못했다. 구두를 보며 신었던 날이 기억나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내 물건이 나를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그것은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하다. 주변을 의식해서 샀던 물건들은 오래 쓰지 못했다. 이번에 산 구두는 나를 나타내지만 즐겨 신지는 못할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 절약하며 살면서 두바이 생활이 낭비였다는 것을 알았다. 낭비란 절약하는 사람이 알 수 있는 감정이다. 소비 생활의 즐거움도 있다. 하지만 절약할 때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나에게 9cm 굽은 낭비다. 그냥 예술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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