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ris Eau de Parfum
잔잔한 바람이 부는 꽃밭을 지나가는 듯하다. 내 앞을 지나가는 여인에게서 나는 향기다. 어디선가 맡아본 기억이 있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고요함이다. 두바이에서 나를 가르쳤던 영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버터 냄새 같기도 한 이 냄새는 아이리스꽃 향기이다.
보통은 우리 집으로 와서 공부했는데 가끔은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었다. 어느 집이나 현관문을 열면 그 집만의 독특한 냄새가 있다. 그 집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버터 냄새와 꽃향기가 섞인 냄새가 났다. 영국인으로 넉넉한 체격의 선생님은 환영한다는 수선스러운 인사를 하고 차와 케이크를 내어 놓는다. 영어를 못해서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고소한 버터와 빵이 탄 냄새가 나는 이 집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냄새가 배어있는 한국 집의 냄새와 다르다.
인사를 하며 가까이 오는 그 분에게서 났던 향이 아이리스 향이었다. 향이 아주 약해서 언뜻 냄새가 난 듯하다가 사라져 버렸다. 그때는 아이리스 향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저 꽃향기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향기는 고급스러웠고 아랍 향의 강한 것과는 달리 품격이 있었다.
클로드 모네: 아이리스가 있는 정원
사람에게서 이런 향이 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향수를 하루 종일 뿌리기는 어려울 테고 아이리스 향초를 피우고, 아이리스 샴푸와 린스를 쓰고, 같은 향의 비누, 로션, 방향제를 쓰면 하루 종일 아이리스 냄새가 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을 나왔다는 나를 수준 높게 생각해서 BBC와 신문을 위주로 가르쳐서 재미도 없고 어려워 짧은 기간 밖에 배울 수 없었다. 또 하나 선생님은 한국 문화와 음식에 대한 무지 아니 무시하는 말을 영국식으로 점잖게 이야기한다. 25년 전이라 K-pop도 K- food도 없을 때라 자존심이 상했다.영어로 반박할 능력이 없는 나는 비싼 돈 주고 무시를 당하고 싶지 않아 그 선생님과 이별했다. 선생님과의 이별은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지만 아이리스 향과 헤어지는 것은 아쉬웠다. 그 후로는 아이리스 향을 잊어버렸다.
그 아이리스 향을 오늘 다시 만난 것이다. 옛 기억을 소환한 여인은 점잖고 부드러운 향을 풍기며 내 앞을 지나 내과로 가더니 얼마 후 큰 소리로 이 병원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느냐 직원들이 불친절하다며 심한 이야기를 하였다.
아, 내가 좋아하는 아이리스 향이 또 이렇게 무너졌다. 이제 내가 나서야겠다. 직접 아이리스 향을 쓰며 고급스럽게 품격있는 말과 행동을 하며 살아보아야겠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향을 쓰기 전에 내 속에 나를 죽여야 한다. 남을 무시해서는 안 되고 불편하다고 소리치고 불평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아이리스 향이 다시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아이리스 향처럼 은근하고 품격있는 진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