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다잠든 나무 Jun 06. 2024

너를 보면 꼭 다시 소환되는 기억

마당에 핀 안개꽃 

잠깐이라도 머리를 쉬고 긴장을 풀고 쉴 요량으로 세종시 근교 찻집을 찾았다. 막간에 잠깐 차 마시면서 눈도 몸도 릴랙스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찻집에서는 의례 좀 더 편안한 의자를 찾는다. 좀 더 몸도 늘어뜨려지고 싶고 눈에도 힘을 뺀 채 좀 더 편안함을 갖고 싶어 진다. 


그러자고 찻집에 들어가 편안한 의자를 찾아 앉은 순간 힘을 뺀 눈에 들어오는 창밖의 모습은 곧장 다시 몸을 세우고 눈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몸은 자동적으로 일으켜 세워 눈을 따라 움직인다. 그 눈 끝에는 5월에 하얀 눈이 가득 내려져 있었다. 바로 마당에 펼쳐진 하얀 안개꽃이다. 


안개꽃은 너무도 흔한 꽃이다. 그 시절엔 장미꽃 한 다발과 안개꽃 두 다발은 국룰이었다. 꽃 중의 꽃은 장미였고, 장미 중의 장미는 붉은 장미였다. 또 그뿐인가 붉은 장미에는 반드시 함께 가는 안개꽃이 있었다. 좋은 일이나, 축하할 일이나 언제나 장미꽃 한 다발에는 안개꽃 두 다발이 함께 했었다. 


© fluke132, 출처 Unsplash


지금 생각하면 아름다움 조차도 참 단조로웠다. 수많은 꽃들이 있을 텐데 어찌 붉은 장미꽃과 하얀 안개꽃만 이 선택되었단 말인가 말이다. 그 시절 참 행복한 꽃이다. 받아도 보고 주어도 본 꽃이 바로 장미와 안개꽃이다. 이렇듯 너무나도 익숙한 꽃 중의 꽃이 안개꽃이다. 


특이하게도 엄마는 안개꽃만 있는 꽃다발을 좋아하셨다. 장미꽃과 안개꽃을 넣어서 커다란 꽃다발로 집에 꽂아두면 장미꽃은 어느새 없어지고 안개꽃만 남아 있다. 장미의 수명이 안개꽃 보다 짧았기에 시든 장미를 거두어 내고 안개꽃 만을 두고 보신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을 안개꽃만 바라보던 엄마는 어느 순간 장미 없는 안개꽃 커다란 다발을 좋아하셨다. 하얀 순백의 싱싱한 안개꽃 다발을 보면 엄마는 너무도 아름다운 미소로 너무도 순백의 표정으로 좋아하셨다. 그 후로 어느 순간부터 엄마에게 갈 때는 늘 장미 뺀 하얀 안개꽃 다발이었다.



© fsmurrayphoto, 출처 Unsplash



그렇게 안개꽃을 좋아했던 엄마가 요양병원에 있었다. 엄마가 요양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안개꽃을 가지고 갔다. 그때 엄마는 그렇게 좋아하던 안개꽃을 보고 맑고 환한 미소도 어린아이 같이 밝은 표정도 없이 힘없이 풀린 눈동자만 천천히 돌릴 뿐이었다. 그것이 엄마가 표현하는 최고의 기쁨과 행복과 감사의 표현이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우리는 간호사와 간병인의 표정을 살펴야 했다. 엄중한 코로나 시절, 모든 것은 조심스러웠고 모든 것은 분리되어 있었기에  꽃을 꽂거나, 비우거나, 치우거나 모두 다 간호사나 간병인 몫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안개꽃을 건네주고 돌아 나오는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간병인의 부질없는 목소리는 비수처럼 꽂혀 병실을 나와서 병원 마당에서 한참을 울었다.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데 꽃은 무슨.."

1시간을 본다 한들, 아니 1분을 본다 한들 엄마한테 갈 때 안개꽃을 가지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요양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더불어 간병인과 간호사들의 테이블에까지 안개꽃을 챙겨 꽃아 두게 했다. 


그렇게 약 8개월 정도를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엄마는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안개꽃을 사지 않았다. 벌써 2년이 지났다.


© after_exposure, 출처 Unsplash



그렇게 안개꽃을 내 기억에서 지워낼 즈음 마당에 있는 화단에 탐스럽게 피어있는 안개꽃을 본 것이다. 안개꽃은 늘 화원과 꽃집 커다란 화병에 담겨 있었다. 화원의 온도 조절기 안 커다란 화병에만 있는 것인 줄 알았던 안개꽃이 뿌리를 내리고 마당에 피어있다니. 땅에  뿌리를 내린 활 짝 핀 안개꽃을 보다니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다. 만개한 활짝 핀 안개꽃의 정수를 보고 말았다. 저절로 탄성이 나왔고 다가가 코를 대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마당에 피어있는 안개꽃은 처음 본 것이다. 어쩜 이렇게 싱싱하고 아름답고 예쁠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멀리 보내고 지우려 했던 안개꽃과 엄마를 떠올렸다.  

다시금 엄마를 소환했다. 안개꽃을 보니 엄마가 다시 떠오른다.

향기도 좋다 은은한 그 순백의 향기가 퍼져나간다. 

다시 안개꽃을 꽂아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