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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May 19. 2024

그리움을 달래주는 향이 있으신가요?

향기 에세이 - 미니린. 노하 작가


산자락이 내려다 보이는 조금 높은 곳에 자리 잡은 00 다원에 도착한 건 낮 12시쯤이었다. 우리 사조직을 위한 다회가 예약된 이곳은 출국 전에 꼭! 한 번은 들르고 싶었던 곳이다.


그동안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그냥 찻집이 아닐 거라 예상은 했다. 그저 나이 좀 지긋하고 고풍스러운 한복을 입은 중년의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나무 테이블이 곳곳에 차를 마시는 다른 손님들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흠, 뭐지?? 예상과 다른 전개는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흰색의 말끔한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은 젊은이가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살짝 놀랐다. '이 낮에 젊은 남자 직원이 있네.' 산 중턱의 다원 건물에 우리 4명이 유일한 손님이란 사실을 깨닫고는, 조금 더 놀랐다. '유명한 곳일 줄 알았는데 손님이 많이 없네.' 


우리는 큰 창을 마주 보고 나란히 줄을 지어 앉았다. 조금 후, 다회를 진행하는 사회자라며 우리를 맞이했던 젊은 그 남자가 우리 앞에 다시 섰다. 지금 이 시간, 오직 우리의 다회를 위해 다원이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 시간이 특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팟캐스트에 나올 법한 목소리로 세계 각국의 잎차를 설명해 주고, 직접 만들었다는 전통 수제 디저트를 내어 주었다. 우리는 설명에 빠져서 주로 들었고, 그에게 질문을 다시 쏟아 냈다. 그가 왜 이 자리에서 다회를 진행하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물어보지 않을 사람이 없을 듯했다. 오랜만에 만나 밀려있는 우리 사조직의 수다는 약속한 듯 미뤄졌다.


게다가 이건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다원의 공간은 마치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Frognerseteren *프로그네르센터 카페를 연상시켰다. 프로그네르센터는 한국에서 손님이 오시면 꼭 모시고 가는 곳인데, 오랜 연식의 목조 건물 안에서 피요르를 내려다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한국의 산자락에 지어진 이곳 다원도 그랬다. 노르웨이식 굵은 선을 가진 목조 건물 안에서 한국스런 산자락이 내려다 보였다. 노르웨이에 사는 나에게는 다원의 목조 건물이 주는 편안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우리는 귀하게 구했다는 차의 향과 맛, 그림 같이 예쁘게 빚어낸 전통 디저트의 모양과 맛에 취했다. 우리 앞에 가느다란 향의 연기까지 피어올랐다. 오감이 가득 예민해지는 시간을 즐겼다. 


차를 마시는 동안 향내음이 실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절에 갔을 때 맡았던 향과 뭐가 다를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로마 테라피에도 사용된다는 천연 침향을 즐겨 보라고 했다. 그 젊은 사회자가 말이다. “깊이 들이마시면 코가 뚫리고 머리가 맑아지실 거예요. 심신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향입니다.”  

'이 순간이 정말 그리울 것 같아. 친구들, 맛, 그리고 향'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엄마가 생각났다. 노르웨이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리운 엄마다. 엄마와 경주에 여행 갔을 때, 경리단 길에서 인센스 스틱 매장에 갔었다. 엄마는 이런 향, 저런 향을 맡으며 좋다고 하셨다. 아빠의 담배 냄새를 수십 년간 맡아온 엄마에게 나는 꽃을 가끔 선물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오래전의 일이다. 노르웨이에 엄마가 왔을 땐, 향초가 좋다면서 향초를 가득 사기도 했던 엄마다. 엄마에게 향은 어떤 의미일까. 향을 맡는 엄마의 손이 민망하지 않게 해드리고 싶었다. 모녀 여행 기념 선물로 인센스 스틱과 향 받침대를 사 드렸다. 친정 집에서 그 향이 퍼질 때, 지구 반대편 타국에 살고 있는 나를 떠올려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내 차례인가. 나도 그리운 사람을 향으로 기억하고 싶어졌다. 다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침향을 하나 샀다.  향 냄새를 맡으면 자연스럽게 엄마 곁이 느껴질 것같았다. 


노르웨이 우리 집에서는 향냄새가 퍼진다. 가끔 향을 피운다. 차가운 저녁 공기로 환기를 시키고 향을 조금만 잘라 모래에 꽂는다. 가족들이 깨어 있으면 집이 또 절이 되었다며 분위기를 한풀 꺾어 버리기 때문에 주로 늦은 밤, 글을 쓸 때 피운다. 따뜻한 차도 괜히 마시게 된다.


그리움을 향으로 달랜다. 친구도 엄마도 향과 함께 찾아온다. 이 먼 타국. 노르웨이까지.



- 당신에게도 그리움을 달래줄 향이 있으신가요? 이 글을 쓰면서 행복했습니다. 오늘 밤 향 하나 피워야 겠어요. 


작가 소개

미니린 (노하Kim)

노르웨이와 한국,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어요. 어떤 일을 새롭게 기획하고, 함께 도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엄마, 작가, 샘으로 살았고 작가 크리에이터로 살고자 합니다.


뉴아티 글쓰기 북클럽 : https://naver.me/xuiQO8GZ

블로그 : https://blog.naver.com/norwayfriend

책 : 노르웨이 엄마의 힘(황소북스, 2017)

      초보자도 전자책 작가로 만드는 글쓰기 셀프코칭(전자책, 202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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