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칠드런 오브 맨> 리뷰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세상에는 0에 가까워질수록 반가운 지표들이 있다. 범죄율, 응원하는 투수의 방어율 등이다. 반대로 0에 가까워지면 절대 반갑지 않은 것도 있으니, 대학생의 학점이나, 직장인의 연봉 상승률 등이 대표적이다.
요즘 0으로 수렴하면서 우리를 무섭게 하는 숫자는 한국의 출산율이다. 올해 2분기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떨어졌다는 소식을 국내외 미디어가 대대적으로 다뤘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은 출산율이 말 그대로 0명이 돼버린 세상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인류의 아이들(Children of Men)이 한 명도 태어나지 않게 된 2027년을 그렸다. 우리는 출산율 저하를 보며 부양 인구 감소라는 경제적 측면을 걱정하지만, 쿠아론 감독은 오히려 정서적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에선 인류 차원의 우울증을 겪을 수도 있단 것이다.
테러와 허무로 뒤덮인 세상, 문제는 출산율
영화 속 세계를 먼저 살펴보자. 2027년 세상은 허무로 뒤덮인다. 서울, 도쿄, 워싱턴 할 것 없이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며 테러범이 활개 친다. 왜 인간은 밝고 건강한 미래를 상상하는 대신 남의 것을 약탈해서라도 자기 목숨을 건지길 바라게 됐을까. 영화는 약 20년 동안 신생아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으며 줄곧 0이었던 출산율을 가리킨다. 극 중 등장인물들은 부채 의식을 가질 미래 후손이 없기에 되는 대로 뺏고, 방화하고, 파괴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치어를 풀어주고, ‘지속 가능한 개발’ ‘ESG’ 등 용어를 만들어서 환경 보호를 할 땐, 우리에게 지구를 빌려준 후손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류는 누구에게 세상을 빌려 쓴다는 의식이 없으니 지금이 지구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간다. 현재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서 물려줄 후대가 없으니, 공부와 연구도 하지 않는다. 세상은 정체를 넘어 퇴보 상태에 빠지고 만다.
왜 출산율이 0명이 됐는지 영화 속 사람들도 잘 모른다. 그저 어느 순간 인류가 불임 상태에 빠졌다. 영화엔 ‘노키즈존’이라고 써 붙인 사업장이 없다. ‘노키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어린 사람들은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사느냐면 그렇지 않다. 인류가 마지막으로 낳은 사람들은 영웅으로 받들어지는데, 이런 과도한 관심이 그들에게 부담이 된다.
일례로 극 중 제일 어린 사람인 디에고란 젊은이는 18년 4개월을 살다가 죽임을 당한다. 팬의 사인 요청을 거절하고 침을 뱉었던 게 화근이 됐다. 디에고가 얼마나 건방진 사람이었는지 드러내는 에피소드인 동시에 그가 평생 느낀 압박감을 짐작하게 만드는 일화다.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돌의 지위에 올라 세상 모든 사람이 알아보는 상황도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자식 잃은 슬픔 극복 못한 주인공
극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테오도르 패런(클라이브 오웬)이란 남성이다. 테오는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흘려보낸다. 2008년 독감이 유행했을 때, 자식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다.
침잠하는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전처(줄리안 무어)가 다가온다. 불법 이민자 권익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는 전처는 한 이민자 여성의 탈출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키라는 이름을 지닌 이 여성은 테오에게 가려뒀던 복부를 보여주며 자신이 탈출해야만 하는 상황임을 강조한다. 그녀는 임신 8개월 차였다. 대혼란 상황에 있는 영국에서 아이를 그대로 낳게 되면, 보호받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제발 안전지대로 피신시켜 달란 것이다.
전 세계가 대혼란인 와중에도 일부 사람들은 인류 멸종을 막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인류 프로젝트’라는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학자들이 운항 중인 ‘내일호’에 올라타면 키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것이라 믿는다. 두 사람은 ‘인류의 미래’를 ‘내일호’에 승선시키기 위해, 아기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해 보려는 세력을 피해 질주한다.
저출산 대책도 좋지만 … ‘사람에 대한 존중’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연출자인 알폰소 쿠아론은 저출산의 문제에 정서적 차원으로 다가간다. ‘그래비티’에서 중력 없이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라이언 박사(산드라 블록)를 통해 인간의 태생적 고독을 사유하게 했던 감독이다. 우주적 스케일 속에서 한 사람 내면의 디테일을 잡아내는 그는, 무출산의 위기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무기력증을 관객이 체감하게 한다. 우리가 저출생 속에서 가장 심각하게 겪을 문제는 이제 세상이 여기서 끝날지도 모른다는 데서 오는 허무와 무력감, 절망 등 감정적 어려움일지도 모른단 것이다.
어떤 영화는 개봉 후 시간이 흐를수록 외려 생명력을 얻는데 ‘칠드런 오브 맨’이 바로 그런 류에 속한다. 2006년 이 작품을 최초로 보던 관객, 그리고 1992년 원작 소설 출간 당시의 독자보다 외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이를 감상하는 지금의 우리가 더 공감할 수도 있는 것이다. 2006년 우리나라 출산율은 최소한 1명대는 깨지지 않았지만, 최근엔 발표 때마다 0명에 점점 다가가면서 영화가 그리는 세상도 보다 피부에 와닿게 느껴지는 것이다.
https://tv.kakao.com/v/78745338
감독은 ‘인간에 대한 존중’을 얘기하기도 한다. 그토록 인간이 귀한 시대에 사는 영화 속 사람들은 그 안에서 이민자를 차별하고, 철저하게 계급을 나누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이 이민자를 차별하는 모습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정상적 범주를 넘어서 착취와 폭력의 형태를 띤다. 우리 또한 출산율 제고를 위해 이민 정책과 부모 지원 정책을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고민해야 하는 건 우리 안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 충분한지가 아닐지, 영화는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