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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프레소 Oct 21. 2023

세 자녀 죽인 母 쫓던 男, 범죄자 인권 얘기에 분노

영화 <셔터 아일랜드> 리뷰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평생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고민해 온 질문이다. ‘택시 드라이버’(1976)에서 본인이 악한지조차 모르는 채 세상의 추악함을 욕하는 택시 기사를 통해 자기 인식의 어려움을 보여줬다면, ‘코메디의 왕’(1983)에서는 모두에게 환호받고 싶어 하면서 정작 자신은 누구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코미디언을 통해 관객의 폐부를 찔렀다.  

미국 연방보안관 테디(가운데)는 특수 교도소에서 발생한 탈출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파트너 척(오른쪽)과 함께 셔터 아일랜드에 입도한다. /사진 제공=CJ ENM

‘셔터 아일랜드’(2010)에서는 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정신 이상이 있는 범죄자를 수감한 섬에 한 보안관을 떨어뜨리면서다. 정신 이상자들을 쫓아다니는 동안 그는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칫하면 정신 이상이 있는 범죄자로 몰려 뇌 수술을 받게 될지도 모를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비정상의 낙인이 난무하고, 정상이 비정상을 억압하는 게 당연시되는 그 섬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정상성을 어떻게 증명할까.  

테디는 섬에서 여러 정신 이상자를 만난다. 테디는 그들을 기본적으로 치료받아야 할 환자보다는 처벌 대상인 흉악범으로 간주한다. /사진 제공=CJ ENM

자식을 셋이나 죽인 여자를 잡아야 하는 보안관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주인공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내 잃은 슬픔을 안고 사는 인물이다. 그의 아내는 방화범에게 살해당했으나 아직 남편 머릿속에 살아 있다. 그가 업무에 집중할 때면 아내는 몇 번이고 죽던 당시의 모습으로 나타나 남편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아내에게 남편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자신이 부재했다는 사실은 그를 일평생 괴롭힐 죄책감이다.  

방화범에 살해당한 테디의 아내는 그에게 죄책감을 남겼다. 아내에게 자신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정작 부재했다는 사실에 그는 괴로워했다. /사진 제공=CJ ENM

미국 연방보안관인 그는 어느 날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에서 일어난 탈출 사건을 해결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정신 질환이 있는 흉악범을 교정하는 공간인 그 ‘감옥 섬’에서 여자 수감자가 사라진 일이다. 그녀는 자기 자식을 셋이나 죽이고 섬에 잡혀 왔다고 한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 있는 정신 이상자를 잡아 와야 하기에, 다소 위험할 수 있는데도 남자는 기꺼이 임무를 맡는다.

수감 시설은 멀쩡한 사람도 정신 이상자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삭막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CJ ENM

그건 단순히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그 섬에 자기 아내를 죽인 남자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다. 그렇기에 테디에게 셔터 아일랜드에서 두 정신 이상자를 잡는 건 자기 삶을 바로잡는 과정이다. 아내를 죽인 방화범과 대면하는 게 사적 영역에서 스스로를 되찾으려는 작업이라면, 아이들을 죽인 여자 수감자를 잡는 건 공적 영역에서 인생을 계속하게 하는 작업이다.  

초기 필모그래피에서 스코세이지 페르소나가 로버트 드 니로였다면, 근작에서는 디카프리오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디파티드’ 등에 출연했다. /사진 제공=CJ ENM

독일군을 사살하며 생긴 남자의 트라우마


사실 테디는 아내가 죽기 전부터 내면이 복잡한 인물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임무 수행 과정에서 정신적 외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독일에 맞서 싸웠던 테디는 나치가 운영하던 유대인 수용소에서 독일군 포로를 몰살했다. 반인륜적인 나치를 죽인 일에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애써 도닥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자신이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꼈다. 비무장 상태였던 그들에게 총을 난사하지 않고도 벌을 줄 방법은 많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범인을 쫓고 있는 그의 모습은 한편으론 어딘가에서 달아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 제공=CJ ENM

참전 중 생긴 테디의 트라우마는 윤리 의식이라는 차원에서 그와 두 범죄자를 구분 짓는다. 테디가 전범국인 나치 독일의 군사들을 죽이고도 죄책감을 느끼는 인물이라면, 섬에서 그가 추적하는 두 범죄자는 아무런 죄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반인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도 살기 위해 도망 다니는 존재다. 필연적이었던 살상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는 테디가 볼 때,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두 범죄자는 ‘인간 실격’이다.

한 사람이 갖는 망상과 트라우마를 감각적으로 표현해 낸 작품이다. /이미지 제공=CJ ENM

그렇기에 범죄자를 대하는 셔터 아일랜드 교도소의 연구소장 존 코리(벤 킹슬리)의 태도가 탐탁지 않다. 정신과의사인 코리는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하면 정신병이 자연스럽게 치유된다고 믿는다. 정신 이상자를 대상으로 한 전두엽 절제술(로보토미) 등 당시 유행하던 극단적 치료법에 반대한다. “완치에 실패해도 평온한 여생을 누리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이 같은 코리의 믿음에 테디는 즉각 반발한다. “흉악한 범죄자를 도와요? 사람을 죽였잖아요. 그럼 놈들이라면 평온한 여생은 개나 주시죠”  

연구소장(오른쪽)은 대화에 의한 치료를 지지한다. 수감자들에게 평안한 여생을 보장해 주려는 그의 생각을 테디(왼쪽)는 이해할 수 없다. /사진 제공=CJ ENM

아내를 죽인 건 방화범이 아닌 남편이었다


그러나 테디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정신병자로 몰아 전두엽 절제술을 받게 하려는 음모였다는 제보를 받게 된다. 로보토미는 19세기말 폭력성이 지나쳐 통제가 불가한 중증 정신 이상자를 치료하는 수단으로 많이 쓰였는데, 이 수술을 받게 되면 사고 기능과 지각력까지 상당 부분 잃는다. 사실상 좀비가 되는 것이다. 테디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과 동료 보안관(마크 러팔로)을 구하기 위해 전두엽 절제술이 시행된다는 등대의 꼭대기로 직접 올라간다.  

섬을 둘러싼 물(바다)은 정신 이상자를 일반 세계로부터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정신 이상증’을 상징하기도 한다. 반대로, 섬 안쪽에서 보면 죽음의 상징일 수 있다.

그는 여기서 연구소장 코리를 다시 만나 충격적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실 자식을 셋이나 죽이고 탈출한 수감자는 없었단 것이다. 그러나 테디의 인생에 자식을 셋이나 죽인 여인은 실존했다. 바로 우울증이 있던 그의 아내다. 이에 더해 그런 아내를 죽인 건 방화범이 아니었고, 바로 테디 자신이었다. 

자식을 죽인 여인은 자기 아내였다. 테디는 그런 아내를 죽였고, 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상상 속 캐릭터들을 만들어 그들에게 자기 역사를 떠넘겼다. /사진 제공=CJ ENM

아내 살인범으로 셔터 아일랜드로 오게 된 테디는 자신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가공의 캐릭터들에게 자신의 역사를 떠넘겨버린 것이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그가 독일군 포로를 몰살한 일 역시 실제로는 발생하지 않았다. 아내가 자식들을 죽인 사건을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치환하고, 자신은 그런 나치(아내)를 처단했다는 이야기로 바꿈으로써 진실을 ‘받아들일 만한’ 형태로 바꾼 것이다. 

테디는 흉악범 인권을 보호하려는 연구소장을 이해 못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를 통해 보호받고 있었던 건 자신이었다. 본인이 배려의 주체인지, 대상인지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자기 객관화를 위해선, 서로를 위한 거울이 돼주는 수밖에 없다


인간의 자기 객관화를 다룬 마틴 스코세이지의 여러 작품 중 가장 절망적인 내용을 담은 듯한 이 영화는 사실 가장 희망적이기도 하다. 주변 사람의 헌신이 있다면, 잠시라도 자기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구소장 코리와 실제로는 테디의 담당의사는 그의 모든 망상을 사실로 인정해 주면서 연기를 펼쳤다.

https://tv.kakao.com/v/21158020

직접 체험시켜 주는 방법이 아니고서는 테디가 자기 망상의 비논리성을 깨닫게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도소의 결정권자들은 당장이라도 테디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실시하려고 했고, 코리와 담당의는 그런 극단적 수술보단 대화에 의한 치료를 지지하며 맞섰다. 테디가 좀비 아닌 인간으로 계속 살아가길 원했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역할극까지 수행한 것이다. 테디가 자기 객관화에 성공한다면, 전두엽 절제술을 받을 위기에 처한 다른 많은 환자에게도 대화 치료를 적용해 볼 근거가 될 것이다.

테디의 보안관 동료(가운데)는 사실 그를 담당하는 의사였다. 그를 망상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보안관 연기를 펼쳤던 것이다. /사진 제공=CJ ENM

우리는 때로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친구와 가족을 보며 답답해한다. 그러나 그들의 착각과 망상을 자꾸 끄집어내는 건 이 영화에서의 전두엽 절제술과 마찬가지로 상대의 거부감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어쩌다 성공한다고 치더라도, 그런 폭력적인 방법으로는 상대와 멀어질 뿐이다. 그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그저 옆에서 목소리를 경청하며 서로를 위한 거울이 돼주는 수밖에 없음을 영화는 이야기한다.

‘셔터 아일랜드’ 포스터. /사진 제공=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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