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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훈 Jul 19. 2018

잊혀질 수 있는 용기

잊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준다. 어쩌면 잊혀짐의 또 다른 표현은 죽음일 것이다. 


그래서 잠시 한 철 피어나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다 때가 이르러 미련없이 지고 잊혀져야 하는 것이 아름다움인 꽃에게까지 'forget me not'이라는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이름을 붙여 자연스러움을 기어코 이겨내려 하는 것은 인간의 미련한 미련이 아닐까? 후손을 통해 자신의 흔적을 이 땅 위에 잊혀지지 않게 각인시키고 싶은 종족 유지의 본성은 인류를 이 땅 위에 창대하게 한 커다란 동력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나, 한편 그로 인해 역사 속에 일어난 수많은 종족들 간의 참혹한 갈등의 상흔들은 잊혀지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강력한 증거다. 이런 서글픈 상흔들은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모든 분야에서 반복해서 생겨나고 그렇게 인류의 생태계는 새로움과 변화 사이의 길목에서 빈번하게 균형과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 


만일 내가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내가 서 있는 이 곳에서 잊혀지지 않으려면 상대적으로 누군가의 자리와 존재가 희미해져야 한다. 그런데 내가 잊혀지고 누군가가 기억되어야 하는 그 시점에, 내가 잃고 누군가가 얻어야 할 시점에, 내가 죽고 누군가가 살아야 할 시점에, 내가 여전히 기억되고 내가 여전히 얻고 내가 여전히 살게 되면  정작 살아야 하고 기억되어야 하고 얻어야 할 누군가가 잊혀지고 사라진다. 명백한 '역류현상'이다. 

권력을 가진 이, 돈을 가진 이, 영향력을 가진 이의 각자의 삶의 길목에서 그 결단의 시간을 무시하고 지나쳐버린 망각자들의 횡포 속에서 삶의 풍요로운 강줄기는 그렇게 제자리를 맴돌아 표류하게 된다. 


꽃이 지지 않으면 여름 내내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워줄 푸른 잎사귀들이 제대로 자신을 뻗어낼 수 없다. 한 번 열매를 맺었던 포도나무 가지는 다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래서 그 가지를 가지치기 해주지 않으면 줄기 위로 새로운 열매를 맺을 새 가지가 뻗어나오지 못하고 오는 추수의 계절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문득 부자들이 모여 사는 H동 고급 주택가를 지나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높게 쌓여진 성벽 저 너머로 나같은 범인은 상상하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풍요로움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 다 흐르고 세상과 작별하게 될 때, 그가 잊혀지고 사라지고 죽어간 후 만나게 될 자기 존재 본연의 실재와 맞닥뜨리게 될 때 느끼는 충격적인 추락 혹은 무너짐을 과연 저들은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잊혀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 자신에서부터 시작되는 잊혀질 수 있는 작은 용기는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삶의 역류현상을 해소해 줄 것이다. 

이 땅을 구석구석 흐르며 살렸던 이 땅의 혈관과도 같은 강줄기들을 더러운 권력욕, 성공 지상주의로 틀어막아버렸던 용기없음, 비겁함이 마치 혈관막힘 증상처럼 이 땅의 생명력 전체를 위협했다는사실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점점 작아지고 희미해지고 사라지는 것..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잊혀지는 것에, 죽어가는 것에 너무 서러워하지 않기를.. 

잊혀질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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